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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아사히비정규직지회 1000일의 투쟁
 구미아사히비정규직지회 1000일의 투쟁
ⓒ 손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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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의 투쟁, 구미공단 들꽃미사가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 곁에 머물다.

'한 번만 했으면 좋겠다'는 미사는 일 년을 넘어섰다. '한 번만 했으면 좋겠다'는 그는 일년이 넘는 동안 낯설기만 했던 천주교미사의 자리를 지켰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낯선 종교의식의 당혹스러움이 사라졌다. 천주교미사는 '구미공단 들꽃미사'가 되었다.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친숙한 이웃이 되고, 아픔을 공감하고 어루만져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도 이제 '구미공단 들꽃미사'가 있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아 경건한 몸짓으로 기도한다.

경북 구미공단에 위치한 일본외투기업인 아사히글라스 화인테크노코리아(아래 아사히글라스) 공장 정문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저녁 7시에 '구미공단 들꽃미사'가 열린다. 2018년 3월 26일 3월의 마지막 월요일은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내쫓긴 지 1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아사히글라스의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면서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문자 한 통에 178명의 노동자가 쫓겨났다. 구미공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음으로 만든 노조였다(관련 기사 : 아사히글라스 집단해고 1000일 "꼭 일터로 돌아가자").

대량해고 사태가 터졌을 때만 해도 그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싸울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대량해고 당한 노동자들의 작업복과 개인소지품은 여전히 아사히글라스 탈의실 사물함에 보관돼 있었다. '내 물건이 공장에 있는데, 어딜 가란 말이냐'며 노동자들은 투쟁을 시작했다. 노동조합으로 똘똘 뭉쳐 잘 싸우면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거리에서 라면을 먹고, 잠을 자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공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싸움을 벌여야했다. 전국으로 투쟁하는 노동자가 있는 곳이면 연대를 다녔다.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였지만, 다른 이들의 고통을 읽어야했다.

그들은 평생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할 처지였지만, 그들이 일할 때는 알지 못했던 노동자의 노동과 삶에 대해 보고 듣고 깨우치는 시간들이었다. 긴 인생 중의 아주 짧은 순간이기도 한 1000일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인간다운 시간이었을지도.

구미공단 들꽃미사
 구미공단 들꽃미사
ⓒ 손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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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동자는 이제 스물세 명 남았다. 1000일 동안 178명의 대량해고를 당해 스물세 명이 남을 때까지의 긴긴 이야기를 다 쓰려고 한다면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장편소설 한편은 나오지 않을까?

1000일 동안 투쟁하며 맺어진 낯선 종교의식이지만, 이젠 소중한 인연이자 연대의 장이 된 '구미공단 들꽃미사'. 금속노조 구미아사히비정규직지회 투쟁한 지 1000일 되던 날에도 구미공단의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 대로변에서 들꽃미사가 열렸다.

"공장에서 내쫓긴 1000일은 가혹한 내쫓김의 시간이었고, 더욱 분개할 일은 1100억 원의 배당금이 일본 본사에 송금될 예정이라는 참담한 소식이 들립니다. 언제까지 약자의 희생이 강요되어야 하는지 특별히 주님의 수난이 다가온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책무, 참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 절절히 반성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형제자매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시대를 반성합시다."


천주교 미사를 주관하는 고이삭 신부님의 들꽃미사를 여는 말씀을 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사회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은 척박한 땅 구미공단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의 연대가 바로 미사를 하는 것이었다. 천주교인들이 이 땅의 비정규직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 

이 땅에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언론보도를 통해서 익히 들어왔다. 천주교신자들이 현실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을 돌아보면서 몸과 마음으로 느끼기를 바랐다.

구미공단 들꽃미사
 구미공단 들꽃미사
ⓒ 손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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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공단의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겪은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 <들꽃, 공단에 피다>가 세상에 나오자, 빛을 볼 수 있도록 출판기념 미사를 열어준 사람들이 바로 천주교 종교인들이었다. 그리고 천주교 미사는 '구미공단 들꽃미사'가 됐다. 이들은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난의 길에 조금이라도 곁을 지켜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구미공단의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달리 무수히 많은 짓밟힘으로 자신이 아름답다고 자각하지 못하는 공단의 '들꽃 노동자들'은 여전히 많다. 공단의 비정규직 노동자 들꽃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지켜주고 싶은 하느님의 마음을 이곳 구미공단에서 실천한다.

1000일의 싸움을 이끌어온 차헌호 지회장은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우리 동지들이 자랑스럽다. 아사히 투쟁이 1000일을 올 수 있도록 지지하고 후원해준 연대 동지들에게 고맙다"


우리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들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밝혀내는 1000일의 싸움이어서 자랑스럽다. 그리고 또 앞으로 수많은 고개를 넘을 때마다 또 다른 나와 연결되어 가는 고난의 길에 함께 하는 들꽃미사가 존경스러운 이유다.


태그:#아사히비정규직, #아사히글라스, #금속노조, #들꽃, #구미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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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담대한 순간을 만나고 싶어서 취재하고 노동자를 편들고 싶어서 기록한다. 제30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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