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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묻는다. 당신은 어느별에서 왔나요?
▲ 황제펭귄 내게 묻는다. 당신은 어느별에서 왔나요?
ⓒ 김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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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은 가장 특별한 여행이었다. 하얀 빙원, 눈 폭풍 블리자드, 혹독한 환경에 살아가는 펭귄들,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여운이 오래 남는다. '남극에서 살아보기' 수첩 한켠에 적어놓은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웠다. 2015년 - 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김진홍 대원]의 남극탐사, 극지의 일상으로 초대한다-기자 말

 얼음이 녹아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 해빙기 남극바다 얼음이 녹아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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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남극까지 잇는 끈이 있었다. 엉킨 실타래지만 풀어내면 하나로 연결되었다. 파르밧의 산, 바다 그리고 여행이다. 나는 대학시절 산악부에서 산을 배웠다. 해군 해난 구조대(SSU) 심해잠수사로 바다를 경험했다. 오지의 사람들과 자연을 만나는 여행일을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여행은 삶의 방향을 알려주었다.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는 신들이 거처하는 성지이다. 강고트리 강물이 시작되는 곳이다. 6,000m의 고봉들이 즐비한 협곡의 마을은 연중 순례자들로 가득 찬다. '파괴의 신 쉬바' 가 거쳐하는 성산 쉬블링(6,543m)에서 성자를 만났다. 그는 돌 움막에서 3년 동안 묵언수행 중이었다.

 쉬바가 거처하는 쉬블링에서 수행하는 성자
▲ 가르왈 히말라야 쉬바가 거처하는 쉬블링에서 수행하는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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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인도 이름을 지어줄 수 있나요?"

성자는 "라자(힌디어로 왕의 의미)가 어떤가?" 라고 말했다.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인도를 사랑하고픈 한 여행자일 뿐입니다. 나는 산을 좋아합니다."

그는 나에게 파르밧이란 이름을 주었다.

산중의 왕. 파르밧은 산이라는 의미다. 히말라야를 관장하는 여신 파르바티에서 유래한다.
작명이 중요하다. 파르밧에게는 산을 오르고 걷는 트레킹이 업이 되었다. 세상의 오지를 다니며 발도장을 찍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티베트 카일라시 코라에서 1,200km를 오체투지하던 티벳여인. 히말라야 5,000m 토랑패스 고개를 슬리퍼 하나로 넘는 포터.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희로애락을 배운다.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정상을 향한 마지막 캠프다. 눈보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텐트는 날아갈 듯 요란하다. 신의 가호로 무사히 등반을 마쳤다. 랜딩 포인트에서 경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사(LISA)라는 아가씨(데날리 레인저)가 축하해준다. 산이 좋아 레인저가 된 리사는 정상에 몇 번을 올랐다.

 정상을 향해 등반중인 필자
▲ 북미 최고봉 데날리 정상을 향해 등반중인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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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하는 게 두렵지 않아?" 그녀에게 물었다.

"데날리 정상의 신선한 공기가 너무 좋아요" "내가 다시 정상에 오르는 이유죠!"

나는 왜 오르는 것일까?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온 내게 묻는다.

'휘리릭~ 내 삶의 작전타임!'

한번쯤 삶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온다. 일상의 여행이 지쳐올 때 '쉼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극 극지안전요원 모집' 공고를 보았다. '끌림'보다 '떨림'이 먼저 전해졌다.

안전요원에 선발되었다. 산과 바다에서 아웃도어 경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 귀여운 펭귄들의 고향. 다큐멘터리에서 본 영상들을 직접 볼 수 있다니 기대가 된다.

 사람을 보면 신기한듯 모여든다 (사진제공 극지연구소)
▲ 호기심 많은 펭귄 사람을 보면 신기한듯 모여든다 (사진제공 극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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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 환경에서 안전요원들의 임무는 중요하다. 남극에 가기 전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미국에서 강사가 초빙되었다. 응급처치부터 인명구조까지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교육이다. 극지안전 규정의 필수과정(WFR. TRRO)을 이수해야 한다.

안전요원들은 산악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거실에 필요한 물품들을 정리했다. 안전요원으로서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등반장비에서부터 극저온에 견딜 수 있는 의류까지 원정대 수준의 짐이다.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바라 본 남극 내륙의 모습
▲ 남극 설원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바라 본 남극 내륙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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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모든 생명체는 얼음의 지배를 받는다. 한반도의 62배, 지구 얼음의 90%를 차지하며 평균 2,000m가 넘는 두께다. 극저온으로 수분이 공기 중으로 증발되지 않는 '하얀 사막' 이다.

극지는 낮과 밤이 구분된다. 3월 하순부터 9월까지는 밤이다. 이후 낮만 계속되는 백야다. 남극에 여름이 오면 다양한 연구 활동이 진행된다. 극지연구소(KOPRI)에서 지질, 운석, 빙하, 화산 등 연구원들을 파견한다.

"남극에 간다고? 남미 칠레에서 가겠네?"

30여명의 하계 탐사 대원들은 호주 시드니를 거쳐 호바트로 이동한다. 호바트는 호주 남단 천혜의 섬 태즈매니아에 있는 항구도시다. 태평양을 건너온 아라온호가 대기하고 있다. 장보고기지까지 10여일 이상 항해를 해야한다.

아라온호는 우리나라 최초 쇄빙연구선이다. 2009년 6월 11일 국내기술로 진수되었다. 바다라는 '아라'와 전부라는 '온'의 의미로 전세계 바다를 누비는 소망의 의미가 있다. 얼음을 깨며 항해한다. 1미터 두께의 얼음을 깨면서 3노트 속력으로 전진할 수 있다. 첨단장비를 탑재하여 해양 연구가 가능하다. 남, 북극 기지에 대한 보급과 수송, 탐사지원을 한다.

장보고 과학기지는 1988년 세종기지 이후 남극에 건설된 두 번째 기지이다. 내륙탐사 목적으로 2014년 준공되었다. 아문젠과 스콧이 남극점 탐험을 위해 정박했던 테라노바베이(Terranova bay)에 위치한다. 혹독한 추위와 강풍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월동대원들은 1년 동안 기지에 상주하게 된다. 정규 보급선의 지원 외에는 고립된 생활이다. 대원들간의 가족애와 팀워크가 중요하다. 밤이 계속되는 극야기는 대외 활동이 제한되기에 심리적으로 민감해지기도 한다. 뉴질랜드 크라이처치에서 미공군 수송기를 이용할 경우 7시간 후 얼음바다에 도착할 수 있다.

 뉴질랜드 크라이처치에서 7시간 비행하여 남극 테라노바베이 얼음 바다에 착륙한다
▲ C-130 수송기 뉴질랜드 크라이처치에서 7시간 비행하여 남극 테라노바베이 얼음 바다에 착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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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오지개념이 무색한 시대다. 일반인들의 남극여행도 가능하다. 남미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와 우슈아이아에서 크루즈 또는 전세기를 이용한다. 남극의 빙하와 펭귄마을을 방문하고 하얀 설원을 걸어볼 수 있다. 하지만 내륙탐사는 다르다. 탐험가나 탐사대원들이 아니면 어렵다. 기지를 벗어난 탐사활동에는 위험에 대비해야한다.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다.

탐험과 사람들 

남극 탐험의 시대가 열리고 각국은 영유권을 주장했다. 1959년 남극에 기지를 세운 12개 나라가 워싱턴에 모였다. 평화적인 과학탐사 교류를 위한 남극조약을 체결했다. 총 43개국이 가입되어 18개국이 상주기지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9년 회원국이 되어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남극에 2개 기지를 가지고 있는 10번째 나라다.

 우리나라 두번째 남극기지이다
▲ 장보고 과학기지 우리나라 두번째 남극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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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진정한 여행 중에서 (나짐 히크메트)

혹독한 환경속에서 순환하는 생명들. 먹고 먹히는 처절함 속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이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생태계는 유지된다. 남극은 인류 미래의 보고다. 탐험의 중심에 있는 나라가 세상을 움직인다. 다국적 대원들과 함께 보낸 남극에서의 일상들. 때묻지 않은 신선한 공기가 그립다. 삶의 특별한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 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김진홍 대원)의 탐사경험, 남극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태그:#남극, #남극탐사, #장보고기지, #황제펭귄, #남극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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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트레킹 / 남극 장보고기지 안전요원. 해난구조대(SSU)대위 전역 / 산. 바다. 여행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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