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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 어른들끼리는 경험하기 힘든 낯선 일들을 겪습니다. 오직 육아하는 이때만, 부딪칠 수 있습니다. 애 키우는 동안 나를 흘려보내는 것 같아 좌절감에 글을 씁니다. '너희만 크냐? 엄마도 같이 크자'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육아일상 속 메시지를 담아 글을 씁니다. [편집자말]
저희 윗분은 정말이지 퇴근을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저희 윗분은 정말이지 퇴근을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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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 할 곳이 없어, 온라인 공간을 빌립니다. 가족들에게 고민을 얘기해도 그저 웃기만 할 뿐,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한 직장이니 참으라고 합니다.

저는 4년차 직장인입니다. 입사만 시켜 준다면, 정말 잘 해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일을 시작했을 때와 달리 지금은 몹시 피곤합니다. 눈치 없는 상사 때문입니다. 선배들 말이 상사가 퇴근을 안 하면 부하 직원도 자리를 못 뜬다 하더니, 사실이었어요. 저희 윗분은 정말이지 퇴근을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퇴근을 미루는 이유도 갖가지입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슬슬 하루 일과를 접으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물을 마셔야 겠답니다. 아니, 10분 전에 마신 물을 왜 또 마시겠다는 걸까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방금 물을 마셨는데... 내일 마시면 안 될까요?"
"싫어."

더 실랑이를 벌였다간, 상사의 기분이 매우 안 좋아질 것 같았습니다. 경험상, 그녀가 화내기 시작하면 퇴근은 물건너 갑니다. 아쉬운 사람이 한 발 물러서야지 별 수 있나요. 머리 위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났지만, 참을 인(忍), 마음에 꾹꾹 새기며 물을 떠다 드립니다.

'이제 퇴근할 수 있겠지?'

내심 기대했는데, 아니 글쎄 저더러 노래를 부르랍니다.

"직접 불러보는 것은 어때요? "

라고 말해보지만,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부르는 노래만 된다시니, 어쩔 수 있나요. 목청을 가다듬고 최대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수박', '곰 세 마리', '개구쟁이', '기차', '올챙이와 개구리'를 부릅니다.

포인트는 마지막 노래를 부를 즈음, 피곤한 티를 팍팍 내야합니다. 혼신의 연기가 필요해요. 빨리 퇴근하고 싶다면 말이죠!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며, 가사도 뚝뚝 끊어줘야 합니다. 발음이 흐려지기 시작하면 바로 피드백 들어옵니다.

"안 돼~ 엄마, 자지마."
"어... 어? 응... 그래그래. 어디까지 불렀더라? 개울가에... 올챙이 한... 한...마리... ㄲ...꼬...무...울...... "

이쯤되면 성공입니다.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못 하고 잠든 (척하는) 저를 그냥 둡니다. 그리고 퇴근 직전 의식을 치룹니다. 제 몸을 이리저리 타넘고, 얼굴을 몇 번 찔러보고, 침대를 데굴데굴 구릅니다. 이 순간, 절대 반응하면 안 됩니다. 자신을 나무라 생각하며 어둠 속에 고요히 누워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나무다. 나는 나무다. 아무리 눈을 찔려도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나무다.'

속으로 몇 번 되뇌다보면 드디어 퇴근하십니다! 아... 육아 퇴근. 꿀 같은 육아 퇴근! 조용히 방 문을 닫고 나오면, 엄마에서 내가 되는 시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숨죽여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감춰뒀던 과자도 먹습니다. 아이 잠든 방문 너머에서 카메라에 담아 둔 아이 모습을 보며 미소짓기도 합니다.

잘 때가 제일 예쁜 꽃 같은 우리 집 상사(라 부르고 딸이라 읽습니다), 어서 무럭무럭 자라 베개에 머리만 대면 쿨쿨 자면 좋겠습니다.

피곤하지만 빛나는 순간들의 합, 육아
 피곤하지만 빛나는 순간들의 합, 육아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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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육아퇴근, #주간애미,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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