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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강릉을 다녀왔다. 충남 태안에서 강원도 강릉은 무척 먼 곳이다. 태안은 서쪽 끝이고 강릉은 동쪽 끝이다. 한반도의 허리 부분을 가로지르는 셈이다.

강릉이라는 동네를 구경하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청년 시절 성당 친구들과 함께 처음 한 번 강릉을 구경한 적이 있다. 오죽헌을 둘러본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 뒤로 40년가량의 세월이 흘렀지 싶다.

강릉을 가기로 한 것은 패럴림픽 때문이었다. 지난달의 동계 올림픽 기간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길도 복잡할 것 같고, 관람권 비용도 부담스러웠다. 올림픽은 그냥 넘겼지만 패럴림픽은 한번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 모두 우리나라가 개최국이었다. 내 평생에 다시 없을 기회였다.

올림픽보다도 패럴림픽을 보는 것이 더욱 뜻이 있는 일일 것 같았다. 신체의 장애를 안고서도 운동 경기를 하는 사람들, 운동 쪽으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는 장애인들에게 그 현장에서 박수를 쳐주는 것은 값진 일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나 역시 장애인이었다. 사지(四肢) 쪽의 장애는 없지만, 신장 기능을 잃어 복막투석을 하며 살고 있는 나는 국가보훈차로부터 3급(일반 행정에서는 2급) 장애인으로 지정받은 사람이었다. 같은 장애인 처지에서 장애인들의 극복의 의지와 분투를 패럴림픽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은 정말 뜻있는 일일 것 같았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가로지르는 여정

미국 대 체코 경기 1피리어드가 끝나고 2피리어드가 시작될 뿐이다.
▲ 강릉 올림픽파크 아이스하키 센터 미국 대 체코 경기 1피리어드가 끝나고 2피리어드가 시작될 뿐이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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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피하기로 하고 주초를 선택했다. 월요일 오후의 아이스하키, 미국 대 체코 경기를 관람하기로 했다. 아내와 딸이 동행하기로 해서 3만 원을 들여 입장권(B석) 3매를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며칠 전까지 내 승용차를 이용할지 대중교통을 이용할지를 놓고 잠시 고심을 하기도 했다. 딸과 운전 교대를 하기로 했지만, 승용차로 갔다 오기는 너무 힘이 들 것 같았다.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고 버스 승차권을 예매했다. 그리고 아침 6시 30분발 강남 고속터미널 행 버스에 올랐다.

태안에서 월요일 오전에 서울엘 가려면 반드시 며칠 전에 예매를 해야 한다. 예매를 하지 않으면 서너 곳을 거쳐 가는 남부터미널 행 버스를 타거나, 서산터미널에 가서 고속터미널 행 버스를 타야 한다.

8시 30분쯤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딸이 사가지고 온 김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호남선 터미널에서 경부선·영동선 터미널로 이동한 다음 9시에 출발하는 강릉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서울에서 강릉까지는 2시간 50분이 걸렸다. 11시 50분쯤 강릉터미널에 도착한 다음 터미널과 올림픽파크를 왕래하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셔틀버스는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고 했다. 올림픽 기간에는 셔틀버스가 노상 만원이었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이 셔틀버스를 이용할 때는 승객이 몇 명 되지 않았다.

셔틀버스의 운행 시간은 10분. 12시 30분쯤 빙상경기장들이 있는 올림픽파크에 도착한 다음 꽤 긴 걸음을 하여 아이스하키 센터로 이동했다. 그리고 내 평생 처음으로 아이스하키 경기장 관람석에 앉았다. 미국 대 체코 경기 1 피리어드가 진행되고 있었다.

간절히 기대한 약팀의 한 골

평생 처음 아이스하키 경기장 관람석에 앉아 패럴림픽 미국 대 체코 경기를 관람했다.
▲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경기 관람 평생 처음 아이스하키 경기장 관람석에 앉아 패럴림픽 미국 대 체코 경기를 관람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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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는 3:0, 미국이 단연 우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미국은 장애인 아이스하키도 전통적인 강국이었다. 체코는 어제 대한민국과 연장전까지 벌이고 3:2로 분패한 팀이었다. 1피리어드 3:0이라는 스코어가 다소 의외였지만, 우리 가족은 체코에 대한 기대를 안고 경기를 관람했다.

2피리어드는 미국의 일방적인 경기였다. 무려 일곱 골이나 쏟아졌다. 골이 터질 때마다 경기장 가득 뱃고동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미국 팀의 골리는 한가한 모습이었다. 어쩌다 체코의 공격이 미국의 골문을 위협하기라도 하면 관객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곤 했다. 우리 가족도 체코의 골을 기대하며 힘껏 응원을 보냈다.

3피리어드는 골이 나지 않았지만 스코어는 이미 10:0이었다. 체코가 한 골이라도 넣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끝내 체코의 골은 터지지 않았다. 너무 일방적인 경기여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경기를 끝까지 보고 일어났다.

우리 가족은 기념품 판매장인 '슈퍼스토어'를 잠시 둘러본 다음 올림픽파크 입구로 나가 다시 셔틀버스에 올랐다. 역시 승객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강릉 터미널에서 우리 가족은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3시 20분발 버스에 올랐다. 승객은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겨우 7명, 썰렁할 정도였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6시 40분발 버스에 오른 다음 8시 40분쯤 태안 터미널에 도착했다. 적이 피곤했지만, 좋은 하루였다. 실로 오랜만에(40여 년 만에) 강릉 시가지를 구경했고, 올림픽에 이어 패럴림픽이 진행 중인 올림픽파크를 볼 수 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컬링장과 스피드스케이트장도 보았고, 아이스하키센터 안에 몸을 넣어보기도 했다.

단 하루였지만 패럴림픽을 참관했다는 사실이 오래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비용도 감수하고 시간도 쓰고 몸 고생도 했지만, 장애인들의 경기를 관람하면서 현장에서 그들에게 힘껏 박수를 쳐주었다는 사실이 내게 일종의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 같았다. 정말 좋은 하루였다.


태그:#패럴림픽 , #아이스하키, #올림픽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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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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