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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의 그림에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다. 그림을 보면서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해야 했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나무화랑에서 오는 13일까지 <김재홍 개인전>이 살(생 · 사 · 육), Undressed, 동행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Undressed.  91 x 182 cm.x 3.  Oil on canvas. 2017
 Undressed. 91 x 182 cm.x 3. Oil on canvas. 2017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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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의 아이들>(길벗어린이)이라는 그림책을 출간하기도 했던 김재홍 작가는 다시 그림속에 그림을 숨겼다. 정육점을 연상하게 하는 소, 돼지, 닭의 도축된 살들이 걸려 있다. 그것들은 그냥 걸려 있지 않고 껍질이 벗겨져 있기도 하고, 비정상적으로 한 부분이 길어지거나 인간의 육신과 결합된 것도 있다. 그것이 고기인지 인간의 육신인지 다시금 쳐다보게 한다. 해가 손톱만큼씩 길어지는 오후, 나무 화랑에서 김재홍 작가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 오래간만에 전시회를 하시죠? 저는 선생님께서 그리고 쓰신 <동강의 아이들>에서 선생님이 그린 그림을 무척 인상 깊게 봤습니다. 수면을 기준으로 사람을 닮은 풍경이 데칼코마니로 비칠 때 한 장면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서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아프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자연이란 인간의 삶이 같이 하는 거니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네요. 99년도에 사비나 갤러리에서 동강을 주제로 한 개인전 <그림속의 숨은 그림전>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2만명이 넘게 오셔서 관람을 해주어요. 마침 그때 기회가 있어서 <동강의 아이들>이라는 그림책을 냈죠."

<김재홍 개인전>. 살 - 연작.  나무화랑에서 만난 김재홍작가가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김재홍 개인전>. 살 - 연작. 나무화랑에서 만난 김재홍작가가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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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작가는 역사와 현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 14년만에 개인전을 여는 만큼 그의 그림은 또 많이 달라져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더욱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그의 고민이 엿보인다.

살.  28 x 58cm x 108.  Oil on canvas(부분). 2017
 살. 28 x 58cm x 108. Oil on canvas(부분). 2017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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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사비나 미술관에서 <야만의 흔적>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할 때는 장인어른의 몸을 찍고 스케치해서 몸을 우리나라 산하의 모습으로 표현해 DMZ와 휴전선 철책들의 풍경을 화면으로 만들었죠. 우리의 산하는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니까요."

나무화랑 관장 김진하씨가 커피를 한 잔 내어온다. 커피는 진하고, 쌉쌀하다. 그림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예전에 보았던 김재홍 작가 그림들을 순서도 없이 늘어놓는 기자의 이야기를 바로 잡아주며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간다.

- 선생님, 저는 강아지를 키우는데 개를 가장 개답게 키우려고 생식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매주 한 마리의 생닭을 강아지가 먹을 수 있도록 작은 토막으로 자르는데 선생님 그림을 보니 제가 매주 자르는 닭의 다리, 벗겨지는 껍데기, 군데군데 흔적이 남아 있는 내장과 지방 그런 것들이 만지는 듯 느껴져요.
"자세히 보면 닮은 듯 안 닮은 듯 그래요. 그림이라는 게 보고 있는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이 들어가니까. 저 그림을 보면 한 부분이 사실과는 다르게 늘려서 그렸죠. 또 저 그림은 소나 돼지로 보이지만 사람의 인체처럼도 보이죠, 제 생명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소, 돼지, 닭들이 사람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태어나면서부터 열악한 조건에서 공장식으로 길러지고 도축됩니다. 소 같은 경우 초식 동물이면서도 육식이 들어간 사료를 먹기 때문에 광우병과 같은 질병을 앓게 되는데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만들어 온 불행인 거죠."

김재홍 개인전. 나무화랑
 김재홍 개인전. 나무화랑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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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거대한 자본의 지배를 벗어나기 힘들다. 마트에서는 묶음으로 판다. 장을 보고 돌아오면 냉장고에 보관을 해야하니 냉장고 용량은 커지지만 식구는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 우리는 원하지 않았는데도 대형 마트에서 우리집 냉장고로 옮겨 식자재를 보관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저는 동물애호가도 아니고, 환경보호론자도 아니지만 이 생명들이 처한 처참한 환경에 대해 한 번만 생각해본다면 이 사회 내에서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 볼 수밖에 없어요. 인간의 사회에서는 가진 자가 자신의 탐욕을 위해 약자들을 억누르고, 사람은 동물들의 생명을 억누르게 되는데 생명과 생명의 사이에 존재해야 할 평등의 문제를 그림을 통해 제기해보고 싶었어요. 인간과 인간, 인간과 가축의 문제로 집중시켜 우리 사회의 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싶었어요."

모든 사람들에게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는 소, 돼지, 닭들이 소는 소답게, 돼지는 돼지답게, 닭은 닭답게 살다 죽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

동행.  91 x 182cm x 3.  Oil on canvas.  2017
 동행. 91 x 182cm x 3. Oil on canvas. 2017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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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사냥을 해서 먹었죠. 그때는 먹을 만큼만, 필요로 하는 만큼만 잡았죠. 선택적 살생이라고도 표현하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주의가 자본이 되다보니 이윤을 많이 남겨야만 하고, 약자를 눌러야만 하는 구조가 문제인 거죠. 사람과 동물이 다르지 않은 부분들, 약자인 동물들, 을(乙)의 입장인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가 같이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김재홍 작가의 마지막 이야기가 오랫동안 귀에서 맴돈다. 나의 욕망의 크기는 얼마일까? 을(乙)이면서 때로는 갑(甲)이 되기도 하는 나의 욕망은 냉장고 용량의 크기일까? 그렇다면 뭔가로 매번 채우는 냉동실을 좀 더 비워야 할 것 같다. 대신에 올  봄에는 시멘트 사이 한 줌 흙을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들을 좀 더 오랫동안 바라보는 시간들로 채워야겠다.


태그:#김재홍개인전, #나무화랑, #동강의 아이들, #그림속에 숨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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