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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바노조 이가현 위원장이 용기내어 언더 조직에 대해 증언했다. 그 후 구 사회당 계열의 언더 조직에 대한 여러 증언과 고백이 터져나왔다. 사람들은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을 떠올리기도 했고, 박근혜와 최순실을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선 이들에 비해 세력이 미미한 탓인지 이 이슈에 관심 두는 이들이 아주 많지는 않다.

내가 구 사회당 계열의 언더 조직 방식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나 또한 한때 그 언더 조직에 조직원으로 몸 담았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나 또한 페이스북에 비판 몇 마디 보태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이번 폭로와 증언에서 알바노조 병역거부자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언더 조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애써 외면했다(노파심에 말하자면 언더 조직이 활동가들에게 병역거부를 '시켰다'는 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병역거부자들은 개인의 신념에 기초해 병역거부를 해왔고 해오고 있다). 그 조직에서 계속 병역거부자가 나오는데, 굳이 일부러 언더 조직을 들춰내어 관계를 악화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체제가 피해자를 양산시키고 의욕적인 젊은 활동가들을 갉아 먹고 있다는 것을 내 경험상 알고 있으면서도 방관했던 셈이다. 그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으로 이 글을 쓴다.

그렇지만 나는 구 사회당 계열의 언더 조직을 특정해서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조직을 떠난 지 벌써 10년도 더 지나서 사실 현재의 구체적인 실태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고, 이미 욕 들어먹고 있는 집단에 굳이 나까지 나서서 새롭지도 않은 비판을 얹을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구 사회당계의 언더 조직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국 사회운동의 어떤 특징들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 운동 조직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진 샤프의 책 <독재에서 민주주으로> 한국어판 표지. 진 샤프는 강력한 독재 정권에 맞설 때조차도 비밀주의 방식보다는 공개적인 방식의 저항운동이 독재정권에 맞서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진 샤프의 책 <독재에서 민주주으로> 한국어판 표지. 진 샤프는 강력한 독재 정권에 맞설 때조차도 비밀주의 방식보다는 공개적인 방식의 저항운동이 독재정권에 맞서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 현실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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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독약, 비밀주의

구 사회당계 언더 조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비밀주의다. 내가 겪은 바로 짐작하자면, 조직원들도 자기 바로 윗선의 책임자만 알 뿐, 그 윗선의 책임자는 누군지 알지 못하고 조직의 최고 정점에 누가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당연히 조직의 결정이 나왔을 때 어떤 결정이 어떤 단위에서 어떤 논의를 통해 정해졌는지 알지 못한다. 

조직을 이렇게 비밀스럽게 운영한 까닭은 정권의 탄압 때문이었다고 한다. 스스로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임을 자처하고 활동한다면 잡혀갈 게 뻔한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사실이고 납득할만하다. 지금까지도 국가보안법이 살아있고 과거에는 더욱 맹위를 떨쳤을테니까.

그렇지만 비밀주의는 정권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활동가들을 통제 관리 훈육하는 데 더 크게 기여했다. 마치 징병제도가 실제로 전쟁을 치르거나 군사적인 행동을 상시적으로 하기 위한 제도인 동시에 국민들에 대한 훈육 시스템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비밀주의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선택받은 소수에 포함되었다는 자부심을 주는 방식으로 유지되는데 이는 굉장히 엘리트주의적이면 한편으로는 다분히 종교적이기도 하다.

사실상 조직 보호의 기능이 거의 사라진 요즘에도 극단적인 형태의 비밀주의 조직을 유지하거나 비밀주의의 습성을 답습한 사회운동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바로 엘리트주의적이고 종교적인 훈육의 기능의 효용성 때문이다. 이러한 훈육은 사실 활동가 개인의 성장을 돕지는 못한 채, 조직을 유지하는 기능만 하게 된다. 

정권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든, 훈육을 위해서든 비밀주의는 결국 사회운동의 가장 큰 목표인 민주주의의 확장을 저해하고, 실제로는 사회운동에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않다. 얼마 전에 별세한 세계적인 비폭력 직접행동 연구자 존 샤프에 따르면 정부의 정보조직과 비밀경찰에게 운동의 목적과 목표를 완벽하게 숨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비밀주의 조직을 유지할 경우 누가 정권의 끄나풀인지 운동 내부에서 서로를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 역사에 대입해 봐도 진 샤프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슬퍼런 일제의 감시망을 치밀한 계획으로 뚫고 만든 조선공산당 조직조차도 어이없게도 신의주 술집에서 술마시다 붙은 시비 때문에 조직이 발각되었다. 또한 독립 운동 내부에서 서로를 일제의 간첩으로 의심하고 몰아세웠던 '민생단 사건' 같은 일들은 비밀주의 조직이라면 훨씬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진 샤프는 이런 비밀주의가 발생하는 까닭을 두려움이라고 봤다. 두려움 때문에 생겨났는데 실은 두려움을 양분으로 삼고 양산해가는 비극을 비밀주의가 연출한다는 것이다. 반면 저항 운동이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혔을 때는 정반대의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설득하고 함께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운동이 매우 강력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서슬퍼런 탄압을 자행하는 정권에서는 진 샤프의 주장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겠지만, 사회운동과 비밀주의에 대한 그의 통찰은 아무리 막강한 독재 권력과 맞서는 경우에도 깊이 새겨들음직하다. 사회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후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사회 운동을 공개적으로 해나간다는 것이 모든 캠페인을 전부 다 공개적으로 준비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때로는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전쟁없는세상은 무기박람회 아덱스 환영리셉션을 방해하는 직접행동을 준비할 때는 철저하게 비밀리에 움직인다. 우리의 계획이 사전에 새어나가면 아무런 성과나 효과도 거두지 못한 채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직접행동에 참가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의논한다는 면에서 비공개일 뿐,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는 모인 사람들 안에서 최대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한다.

특히 운동의 목표나 거시적인 계획 같은 중요한 문제는 절대로 비밀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공개적으로 다뤄지면서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최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참여해야 하고 그 결과 또한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이 사회운동을 좀 더 강력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겁쟁이들보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자기 이야기를 건네는 이들에게 더 끌리기 때문이다.

소수가 결정을 독점하면, 활동가들은 힘을 잃는다

이번 구 사회당계의 언더조직 폭로 내용에서 우리가 비밀주의 조직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하게 봐야할 것은 조직의 중요한 결정을 소수가 독점하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밀주의 조직은 소수가 결정권을 독점하고 남용하기 훨씬 쉬운 구조라 구 사회당계의 경우 이 둘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없다. 그렇지만 공개적인 사회 운동 조직에서도 소수가 중요한 결정을 독점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 결정에는 징계 및 해고를 결정하는 인사권 같은 명시적 권한부터 조직의 중요한 결정-장단기 목표 설정이나 장기적 전략 짜기 등 암묵적으로 묵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좀 더 민주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체계와 조직 구조 뿐만 아니라 조직문화 전반까지도 바라봐야 한다. 이 모든 걸 다루기에는 책 한권을 써도 부족하고 나의 능력도 모자란 바, 나는 이 글에서는 소수가 중요한 결정을 독점하는 구조가 어떻게 활동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로 인해 사회운동을 효과적이지 못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사회운동이 왜 민주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은 정말 중요하지만 여기선 다루지 않겠다.

내가 병역거부 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당시 내가 속한 조직-이번에 폭로된 그 언더 조직이 병역거부 운동을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2001년 말 혹은 2002년 초  어느 날 언더 책임자가 앞으로 우리 조직은 병역거부 운동을 할 것이라고 결정사항을 통보해왔다. 우리는 병역거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스스로 질문하는 힘이 없는 공부는 지식과 정보만 주입할 뿐 우리에게 언어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내가 평화의 언어를 갖출 수 있게 된 것은 그 조직을 나오고 평화활동가들과 함께 병역거부 운동을 한 한참 뒤였다.

2002년 9월 12 병역거부자 나동혁의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나를 비롯한 여러 예비병역거부자들이 기자회견 뒷열에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조직의 결정으로 시작된 운동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언어를 갖지 못했다. 이 예비병역거부자들 중 여럿이 도중에 병역거부를 포기했고 그 일은 그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 소수의 결정으로 시작된 운동은 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는 힘을 빼앗았다.
 2002년 9월 12 병역거부자 나동혁의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나를 비롯한 여러 예비병역거부자들이 기자회견 뒷열에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조직의 결정으로 시작된 운동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언어를 갖지 못했다. 이 예비병역거부자들 중 여럿이 도중에 병역거부를 포기했고 그 일은 그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 소수의 결정으로 시작된 운동은 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는 힘을 빼앗았다.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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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 누군가는 조직적인 결정으로 병역거부를 하기로 결심했다가 차후에 병역거부를 포기하면서 마음이 깊은 생채기가 나기도 했다. 물론 병역거부가 철저히 개인의 고뇌와 선택인 경우에도 중도에 포기하며 상처를 받는 일이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불가피한 면이 있는 반면, 조직적인 결정은 피할 수 있는 상처였다는 면에서 더 아프다.

소수가 조직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경우 나머지 사람들은 결정된 사항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기 쉽지 않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참여한 결정일 경우 자신의 일로 여기고 더 책임감 있게 대처한다. 실패했을 때 책임을 나눠 맡는 것도 더 적극적으로 성공적인 과실이 나에게도 돌아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결정에 내 목소리가 포함되기 어려울 때는 대부분 그 결정을 수행하는 일에 애정을 갖기 힘들다. 내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은 결국 일의 성과도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실패 했을 때 책임만 떠안게 될 수도 있다.

소수가 결정을 독점하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빼앗기는 건 책임감만이 아니다. 그런 조직의 구성원들은 질문하는 힘과 함께 창의력도 갖기 힘들다.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어떤 과정이든 격론과 갈등과 타협과 양보의 과정을 겪는다. 이러한 과정 중 겪는 경험과 그 안에 팽배한 에너지는 그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을 성장시킨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나를 방어하기 위해, 혹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기를 반복하며 그 과정에서 더 논리적으로 더 창의적으로 단련된다.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세운 목표는 조직원 모두에게 책임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조직원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언더 조직원으로서 병역거부 운동을 할 당시의 내가 병역거부 역사나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갖추었을지언정, 곤란한 질문에 대처할 수 있는 내 언어가 없었던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내 스스로 질문을 만든 적도, 곤란한 상황을 개척하기 위한 창의적인 해결방법을 고민해본 적도 없이, 위에서 정해준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 운동에서 모든 결정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면 연행 위험이 있는 직접행동을 할 때, 경찰이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데 다같이 모여서 어떻게 해야할지 합의한다면 결국 다 잡혀가게 된다. 그런 경우에는 구성원 가운데 가장 판단력이 좋은 사람을 미리 정해서 현장에서는 그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는 게 더 좋다. 그런 경우라면 어떤 사람에게 그 역할을 맡길 것인가를 정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이 존중 받는 것이 민주적인 운영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사회운동을 살찌우는 효과적인 방식

민주적인 조직 운영이라는 것이 어떤 규칙을 하나 정해놓고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다 그 규칙을 무조건 지켜야하는 그런 교조적인 운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비밀리에, 혹은 소수가 판단하여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

다만 어떤 일을 비밀리에 하거나 소수의 판단에 위임할 것인지는 공개된 자리에서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내용일 경우는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해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럴 때 사회운동은 작은 것을 얻기 위해 큰 것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사회운동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사회 운동 고유의 가치 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을 성장시키고, 사회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불필요한 의심과 비난을 예방하는 등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덧붙이는 글 |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린 글입니다. http://www.withoutwar.org/?p=14133



태그:#언더조직, #사회운동과 민주주의, #구 사회당 계열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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