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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8. 19. 미 공군 B-29 폭격기가 청진의 공장지대를 맹렬히 폭격하고 있다.
 1950. 8. 19. 미 공군 B-29 폭격기가 청진의 공장지대를 맹렬히 폭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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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살 소년의 전쟁 기억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그해. 나는 여섯 살 난 소년으로 고향 구미면 원평동에서 살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인민군들은 파죽지세로 남으로 밀고 내려왔다. 1950년 7월 하순에는 인민군이 진주, 김천, 상주, 함창, 영덕에 이르는 선까지 남하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개전 초부터 전황을 사실대로 알리지 않아 백성들의 피란 행렬은 인민군의 진주 직전이거나 인민군이 진주한 다음에야 그들을 통해 전황을 짐작했다.

그해 7월 하순 어느 날. 북으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피란민 행렬과 북쪽인 아포에서 쏘아대는 인민군의 대포 소리를 듣고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모두들 허겁지겁 피란봇짐을 쌌다. 첫째, 둘째 고모 네도 이웃에 살았는데 우리 집에만 소가 있었다. 그래서 세 가구의 피란 짐을 모두 우리 집 소달구지에 실었다.

우리 집은 선산경찰서(당시 구미 소재)와 100여 미터 거리로 바로 앞집 건넌방에는 신혼 순경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순경이 출근 후 집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군대를 따라 허겁지겁 갑자기 남으로 후퇴하자 홀로 남은 부인이 피란봇짐을 이고 울면서 통사정하기에 할머니가 받아줬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피란행렬은 네 가구로 피란민은 모두 열다섯이었다.

이미 남쪽으로 가는 열차는 끊긴 데다가, 남으로 가는 신작로도 피란민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우리 집 피란 행렬은 금오산 오른 편 골짜기인 선기동 윗마을인 덤바우로 갔다. 하지만 북쪽에서 워낙 많은 피란민들이 구미 일대에 몰려들자 덤바우 마을은 먼저 온 피란민들이 이미 빈 방들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집 피란민 일행은 하는 수 없이 냇가에다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열다섯 식구 가운데 아이들은 절반이었고, 내 또래가 셋이었다. 어른들은 난생처음 당하는 피란생활로 힘들었을 테지만 우리 조무래기들은 피란이 뭔지도 모른 채 마치 소풍을 나온 듯 시냇가에서 피라미를 잡거나 감자를 구워 먹는 등 낮 시간은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1950. 10. 24. 미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미 해군 전투기가 북한군 진지를 향해 5인치 로켓포를 발사하고 있다.
 1950. 10. 24. 미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미 해군 전투기가 북한군 진지를 향해 5인치 로켓포를 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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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의 굉음

하지만 밤이 되면 꼭 아이 울음소리 같은 늑대 울음소리에 무서워 떨었다. 실제로 늑대들이 득시글거려 어른들은 아이들을 한가운데 몰아 자게 한 뒤 사방으로 돌아누워 잤다. 그래도 불안해 할아버지나 고모부는 작대기를 든 채 행여 아이들이 늑대에게 물려갈까 봐 꼬박 밤을 새웠다.

그때 피란민들은 비행기 소리가 나면 하던 일을 팽개친 채 솔개소리에 닭들이 숨듯 가까운 토굴로 우르르 몰려갔다. 남쪽에서 날아온 미군 폭격기는 폭탄을 잔뜩 싣고 와서는 아래구미 쪽이나 구미초등학교 일대에다가 마구 쏟고 갔다. 그 폭탄 터지는 소리가 워낙 커서 우리들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머리를 토굴 속으로 처박았다.

미군 B-29 폭격기는 네댓 대가 편대를 이뤄 날아와서는 폭탄을 마치 염소 똥처럼 쏟았다. 때로는 B-29 편대가 하늘을 새까맣게 덮고는 폭탄을 무차별로 마구 쏟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것을 융단폭격이라고 했다. 그 융단 폭격은 일정한 지역을 그은 뒤 마치 물뿌리개로 꽃밭에 물을 주듯이 폭탄을 쏟았다. 그 폭탄세례에 모든 생명체는 살아남기 힘들었다.

날이 갈수록 미군 B-29 폭격이 더욱 심해지자 할아버지는 밤새 소를 몰아 고아면 산골 대망동 진외가에 맡기고는 돌아왔다. 그런 뒤 남자들은 지게에 피란봇짐을 지고 여자들은 머리에 피란봇짐을 이고는 낙동강을 건너 남쪽으로 피란 가고자 낙동강 인동나루 쪽으로 갔다. 하지만 그 일대를 지키고 있던 인민군들에게 혼쭐만 났다.

"인민들, 어디로 피란 가도 소용없어 야. 미제 쌕쌕이(폭격기)한테 불벼락을 만나기 전에 날래 살던 곳으로 돌아 가라요."


우리 가족들은 하는 수 없이 낙동강을 앞에 두고 발길을 돌렸다. 우리가 신평 사과밭을 지날 때 미군 B-29 공습을 정면으로 받았다. 그러자 우리 가족들은 양식과 가재도구를 모두 팽개친 채 과수원으로 달려갔다. 남자들은 사과나무에 올라 매미처럼 나무둥치를 껴안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사과나무 그루터기 사이의 콩 포기에 납작 엎드려 공습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미군 폭격기의 무서움도 모르고는 염소똥처럼 쏟아지는 폭탄이 매우 신기해 그것을 보려고 콩밭에서 일어나다가 할머니에게 뒤통수를 쥐어 박혔다. 30분 정도 공습이 끝나자 우리 집 피란민 일행은 팽개친 식량과 가재도구를 다시 챙기고는 할머니 친정 고아면 대망동으로 피란을 떠났다. 순경 부인과는 그때 헤어졌다. 거기서 자기 친정인 성주로 간다고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때 낙동강 다부동 전투의 폭격이 융단폭격이란 것을 알았다.

 1950. 8. 11. 미 전투기들이 북한군 진지에 무차별로 폭격하고 있다.
 1950. 8. 11. 미 전투기들이 북한군 진지에 무차별로 폭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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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항공모함 해군 조종사의 증언

미 해군 소장 스미스는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밤낮 없이 포격했다. … 그것은 아마도 한 도시에 이루어진 함포 공격이나 공중 폭격으로는 역사상 최장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원산에서의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원산에서는 길거리를 걸어 다닐 수 없었다. 24시간 내내 어느 곳에서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은 죽음을 의미했다."- 브루스 커밍스 ․ 존 할리데이 지음 <한국전쟁의 전개과정> 158쪽
아무튼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의 폭격은 엄청 무서웠다. 한국전쟁을 체험한 세대들은 '한국전쟁' 하면 가장 먼저 폭격을 떠올릴 만큼 미 공군 및 미 해군 항공모함의 폭격기. 전투기, 전폭기들은 한반도 하늘을 휘젓고 다녔다.    

1951. 원산, 미 공군 B-29 폭격기가 원산 시가지를 맹렬히 폭격하고 있다.
 1951. 원산, 미 공군 B-29 폭격기가 원산 시가지를 맹렬히 폭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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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휴전협상 압박코자 폭격

미국은 1952년 11월로 예정된 미 대통령선거 전에 휴전 협상에서 개가를 올리기 위해 북한을 압박하는 강경 대응책을 썼다. 그건 바로 대대적인 북한지역 폭격이었다. 1952년 6월 23일, 미국은 500대 이상의 폭격기를 동원해 압록강에 위치한 수풍 댐과 10개의 수력발전소를 폭파했다.

유재흥(당시 육군본부 참모차장)의 증언이다.

"회담 중에도 바로 옆 전선에선 미군의 B-29 폭격기가 적을 향해 네이팜탄을 쏟아 부었습니다. 유엔군은 협정체결 전까지 평양~원산 선을 점령할 계획이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1952년 7월 11일과 12일 미군 폭격기들은 평양에 대한 일련의 공습을 감행했다. 첫번 째 공습에서만 2천 명이 사망하고, 4천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미국의 폭격은 7~8월 '압력펌프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더욱 강화됐다. 1952년 8월에는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78개 도시와 마을을 집중 폭격하는 초토화 작전을 전개했다. 8월 29일의 평양 폭격에서만 6천 명이 사망했다. 그해 10월로 접어들자 (북한지역에서) 폭격 목표물로 삼을 만한 도시와 산업시설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정도였다.

- 강준만 지음 <한국현대사산책> 1950년편 1권 309~310쪽

1951. 흥남 근교 마전. 미 공군 전폭기가 야적장의 보급품과 군수물자를 실은 열차에 맹렬히 폭격을 가하고 있다.
 1951. 흥남 근교 마전. 미 공군 전폭기가 야적장의 보급품과 군수물자를 실은 열차에 맹렬히 폭격을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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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7. 30. 미 해군 전투기에서 내려다 본 파괴된 철교.
 1951. 7. 30. 미 해군 전투기에서 내려다 본 파괴된 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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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9. 4. l 미 해군 전투기가 폭탄을 잔뜩 장전한 채 항공모함을 떠나고 있다.
 1951. 9. 4. l 미 해군 전투기가 폭탄을 잔뜩 장전한 채 항공모함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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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1. 6. 미 공군 폭격기의 집중 투하로 잔해만 남은 흥남비료 공장
 1950. 11. 6. 미 공군 폭격기의 집중 투하로 잔해만 남은 흥남비료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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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1. 함흥 서쪽지대 벌집모양의 폭탄 투하지점.
 1950. 11. 함흥 서쪽지대 벌집모양의 폭탄 투하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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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2.  격추된 전투기의 잔해가 불타고 있다.
 1950. 12. 격추된 전투기의 잔해가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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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1. 15. 신의주 상공에서 미 공군 전투기가 압록강 철교를 폭파하고 있다.
 1950. 11. 15. 신의주 상공에서 미 공군 전투기가 압록강 철교를 폭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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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4. 20. 미 해군 전투기가 ‘원산폭격’을 하고 있다.
 1951. 4. 20. 미 해군 전투기가 ‘원산폭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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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6. 미 공군 F-86 전투기가 출격 준비를 하고 있다.
 1951. 6. 미 공군 F-86 전투기가 출격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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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8. 3. 미 해군 전투기가 원산 상공을 날고 있다.
 1951. 8. 3. 미 해군 전투기가 원산 상공을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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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10. 1. 미 공군 폭격기의 집중 폭탄 투하로 끊어진 다리.
 1951. 10. 1. 미 공군 폭격기의 집중 폭탄 투하로 끊어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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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기에 수록된 사진 이미지들은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박도 엮음 <한국전쟁 ‧ Ⅱ>에 수록돼 있습니다.



태그:#한국전쟁,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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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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