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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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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명동씨는 광명시 광명 7동에 있는, 도덕산 그늘 아래 중앙도서관 뒤쪽 산길을 걷다 과일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따뜻한 마음이 겨울을 견디게 한다. 충만한 요가를 하고 난 듯 단전이 따뜻하게 차오른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흔하디 흔한 골판지로 된 이 사과상자는 앞면을 일부 절개하여 출입문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습기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함인지 노란 포장용 테이프로 겉면 전체를 꼼꼼하게 감쌌다.
위쪽에는 큼직하게 글씨가 쓰여 있다.

"버리지 말아 주세요. 겨울 지나고 버릴게요."

사과상자는 어느 누군가가 이 겨울 추위와 눈, 비에 힘들 길고양이를 비롯한 작은 생명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자그마한 안식처였다.

하씨는 "이런 작은 마음이 우리 사회가 그나마 희망을 품게 한다.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손길들이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댓글로 심정을 밝혔다.

앞서 광명시는 작년 11월 21일에 길고양이 개체 수 및 급식소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길고양이 보호단체인 광명 길고양이 친구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캣맘처럼 길고양이를 애정의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특유의 고양이 소리를 꺼리거나 '도둑고양이'란 별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존재 자체에 적의를 가진 시민들도 있다.

그래서 지자체에서는 민원 해결 차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실시한다. 인근 서울시의 경우 올해에만 9700마리를 수술하여 개체 수를 관리할 계획이다. 그런데 수술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수술한 길고양이는 왼쪽 귀끝을 1cm 잘라 구분하고 있다.

길고양이 측면에서 보면 종족 보존이라는 본능적 욕구를 거세당하고, 표식을 위해 귀 일부도 잘리는 아픔을 겪고 있다. 돌봐줄 '집사'가 없어서 고단한데, 성질 고약한 인간에게 걸려 학대를 당하고 바로 처절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인간의 말"을 할 수 없으니 어디 누구 붙잡고 하소연도 할 수 없다.

길고양이도 인간과 마찬가지인 목숨은 한 번뿐인 생명체이다. 그리고 이 자그마한 생명이 잘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라면, 인간이 살기에도 좋은 곳이라 여겨진다. 함께 살아서 더 즐거운 세상이다.

사과상자. 누군가는 원래 상자의 목적인 사과가 아니라, 부정한 청탁을 위해 더러운 돈을 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도덕산 인근에서 발견된 상자는 생명존중과 배려가 가득 담긴 훈훈한 온정을 담았으니, 가장 아름답고 고마운 상자로 어느 작은 손님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태그:#모이, #사과상자, #길고양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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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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