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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대한민국에서 '개헌'의 의미는 남다르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여느 때 없이 정치와 밀접한 일상을 보냈고, 이제는 촛불이후를 고민하고 있다. '내 삶을 바꾸는 개헌'을 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초 시정연설에서부터 "개헌 공약을 지킬 것"을 약속하며 '지방분권' 및 '기본권 확대'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헌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은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 지난 2일 통합민주당이 개헌안을 발표한 뒤, 여-야는 때 아닌 이념 논쟁을 벌였다. 지난해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협치를 위한 개헌 방향을 제시했던,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이국영(64) 교수를 지난 3일 다시 만났다. (관련기사 : "박근혜 대통령, '긴급명령' 고려할 수도 있다")

그는 독일의 콘츠탄츠 대학원에서 대만과 한국의 정치경제 비교로 박사 학위를 받고 동양인 최초로 독일정치학회지에 논문을 실은 대표적인 독일파 정치경제학자이며, 1990년대 초부터 국회의원 선거에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개헌을 둘러싼 여-야의 소모적 논쟁과 적대·투쟁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제6공화국' 헌법이 공포된 지 만 30년이 되는 해, 개헌 논의는 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까.

"이번과 같은 개헌 기회, 쉽게 오지 않을 것"

지난 3일 성균관대학교 호암관에 위치한 이국영 교수의 연구실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정년퇴임을 목전에 둔 이 교수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위해 반나절의 긴 시간을 할애했다.
 지난 3일 성균관대학교 호암관에 위치한 이국영 교수의 연구실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정년퇴임을 목전에 둔 이 교수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위해 반나절의 긴 시간을 할애했다.
ⓒ 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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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정국과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현재 20대 국회에서도 개헌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야 간 이견이 심하여 개헌 절차가 순탄하지 않다.
"한국에서 개헌이 어려운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학에서 논의되는 개헌의 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헌의 동기는 ① 헌법 자체의 특성, ② 사회적·경제적 대변화, ③ 헌법 조항의 결함  ④ 정치엘리트의 이해관계를 들 수 있다. 현행 헌법은 1987년의 정치적 상황에서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타협한 산물이었다. 사회경제적 변화 측면에서도 노령화, 양극화의 심화, 환경문제 등이 거론되어 왔다. 개별 조항에 관해서 각계각층에서 많은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동기가 개헌의 결정적인 계기라면 개헌은 벌써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여러 번 개헌논의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한 이유는 대통령 및 정당 간의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외국에도 우리처럼 개헌하기 어려운가?
"아니다. 물론 우리도 1987년 이전에 8번 개헌이 있었지만 1960년 개헌 이외에는 대통령의 집권연장이나 권위주의 통치를 위한 개악적 개헌이었다. 개헌에 관한 비교연구를 보면 1993년∼2002년 기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는 39개국 중에서 32개국이 개헌을 하였다. 더구나 절반인 18개국에서는 심지어 5번 이상의 개헌, 즉 평균 최소한 매 2년마다 개헌이 있었다. 최다 개헌을 한 국가는 오스트리아로 21번, 스위스 18번이고, 독일도 13번이나 개헌을 했다. 1번도 개헌을 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한국 등 7개국이다."

- 개헌을 하지 못한 국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개헌이 없었던 국가에서도 개헌이 정치적 아젠다가 되었지만 정당 간의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개헌 절차의 경직성(의회의 2/3 가중다수 + 국민투표)이 개헌 실패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정치구조와 정치엘리트의 불협화음이 주된 원인이었다. 합의가 어려운 정치구조란 자유민주주의의 하위유형인 경쟁민주주의와 협의민주주의 중에서 경쟁민주주의를 의미하고, 이 유형의 민주주의에서는 양대 정당 간의 적대적 관계 때문에 합의가 어렵다. 한국은 개헌 절차의 경직성도 상당히 높고, 경쟁민주주의 유형에 속하고 양대 정당간의 적대정치가 어떤 국가보다도 심하다."

- 그래도 지금은 국민 여론이 탄핵정국 이전에 비해 개헌에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 이번과 같은 개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로만 헤르쪽(Roman Herzog) 전 독일 대통령은 "이상적 상태를 만들어내는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헌법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라고 말했다. '최선'에 대한 객관적인 척도가 없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대변화에 대응하는 최선의 해결책이 합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개헌은 사회·경제적 대변화의 결과라기보다는 결함이 있는 헌법 조항에 대한 인지와 이에 대한 정치엘리트의 합의로 이루어진다. 물론 사회경제적 대변화의 전부는 아니라도 일부는 헌법 조항의 결함이나 상이한 해석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 국민 참여가 부족한 개헌에 대한 신중론과 국민 주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국민은 거부권·탄핵정국을 거치면서 대통령에 집중된 과도한 권력을 인지하였고, 이전에 비해 개헌에 대한 관심이 훨씬 높아졌다. 여야는 그동안 개헌이 거론될 때 개헌이 자당에게 불리하면 당리당략적 이해관계에서 국민을 들먹여 반대하였지만 개헌 과정에는 항상 국민이 직·간접으로 참여한다. 스위스처럼 국민발안 형식으로 국민이 주체가 되어 개헌안을 직접 상정하여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이 있지만, 우리 정치문화에서 가능할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만약 그런 개헌 방식을 도입하려고 해도 개헌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은 국회개헌논의에 적극적으로 임해주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 추미애 "국회 개헌 논의 강력 촉구"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은 국회개헌논의에 적극적으로 임해주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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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개헌 논쟁에서 여야가 다투는 쟁점은 무엇인가?
"하나는 헌법전문과 제4조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이고, 그 다음 정부형태에 대한 이견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월2일 발표한 개헌안에 '자유' 문구를 삭제했다가 4시간 이후에 번복한 것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맹비난하는 해프닝이 바로 '기본질서'을 둘러싼 대립이 얼마나 과열되어 있는가를 보여 준다. 물론 다른 여러 분야도 사회경제적 변화를 고려한 중요한 문제이지만, 앞의 두 가지 문제가 첨예한 대립을 야기하고 있다. 이 대립이 해소되면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타협할 수 있을 것이다."

- 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분쟁의 대상이 되었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상호간의 오해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기본질서'란 간단히 말해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나 기본원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기본조건은 현행 헌법에 선거, 정당, 권력분립, 기본권의 조항 등에서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헌법에 반드시 기본질서를 표현할 필요는 없다. 기본질서를 헌법에 표현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 터키, 한국이다. 독일이 나치의 참혹한 전체주의 통치를 경험했기 때문에, 전후에 특별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명기하였고, 독일과 친분이 깊은 터키와 독일 헌법학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에서도 참고하였다. 대립의 대상은 기본질서가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기반이 되는 자유민주주의이다."

-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여야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가?

"냉전시대에 한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 또는 인민민주주의에 대결하는 정치체제로 이해되었다. 당시는 독재정권이라도 인민민주주의에 대항하면 자유민주주의라고 오인되는 시대였다. 더구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용어가 처음으로 표현된 것이 유신헌법이라고 불리는 1972년 헌법의 전문이었기 때문에 민주화 세력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유신헌법은 자유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기본조건을 훼손하는 조항이 많았기 때문에 비자유민주주적 헌법이었고, 뿐만 아니라 박정희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1987년 헌법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걸맞은 자유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기본조건들이 대부분 포함되었다. 또한 전 정부가 역사교과서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하였고, 현정부가 다시 재수정하는 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소모적인 정치·사회 갈등만 조장할 뿐이다. 왜냐하면 고대 민주주의, 근대 민주주의가 아닌 냉전시대가 끝난 현대 민주주의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이다. 물론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사이비 민주주의 국가도 다수 존재한다. 한국 민주주의는 탄핵정국에서 확인되었듯이 사이비인 결함민주주의가 아니다."

- 탄핵 정국에서 태극기 시위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탄핵 반대를 주장했다.
"태극기 시위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탄핵 반대를 한다는 플래카드가 등장하였지만, 이는 자가당착적인 행동이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서 탄핵은 필수적인 절차였다. 현대 자유민주주의란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를 전제로 국가권력이 수직적·수평적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치국가 원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기본권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수직적 통제란 국민이 대통령을 투표로 결정하고 권력의 남용·오용에 대해 감시와 시위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평적 통제란 입법·행정·사법부 상호간의 견제와 감독을 의미한다. 작년 탄핵 절차는 수직적 통제와 수평적 통제가 상승(相乘) 작용한 결과였다. 기본권은 19세기 자유권에만 국한되지 않고, 20세기를 경과하면서 참정권 및 사회권을 거쳐 현대에는 환경권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당의 우려, 기우에 불과하다"

- 그러면 오해가 여지가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삭제하고 자문위가 제안한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 실현'으로 대체해야 하는가?
"그런 표현이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민주사회'란 용어도 스웨덴을 제외하고는 외국의 헌법에 표현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면 당연히 민주사회가 실현된다. 현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한다면 구태여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 실현'으로 대체할 필요가 없다. 헌법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리하게 삭제하면 엉뚱한 오해와 반발을 유발할 뿐이다."

- 자유한국당의 지도부가 제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로 수정하려 했던 시도에 대해 '사회주의 개헌'으로 규정하는 비판이 엉뚱한 반발이라는 뜻인가?
"그렇다. 이론적으로는 민주적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적·사회민주적·인민민주적 기본질서의 상위개념이지만, 현실에서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의 하위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이미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절차와 제도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수용하였고, 현대 사회민주주의자들도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테두리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실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만을 강조하는 의미가 아니고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독일과 한국 헌법학계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해석하는 것이 통설이다."


- 그렇다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삭제하거나 민주적 기본질서로 무리하게 수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자유한국당은 왜 사회주의 개헌이라고 공격하나?

"제4조가 통일과 연관된 조항이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은 혹시 여권이 통일을 대비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닌 어떤 다른 민주적 기본질서를 모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 헌법에서 중국 헌법과 같이 기본질서라는 용어가 표현되고 있지 않지만 인민민주주의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가 아닌 제3의 대안적 민주주의를 경계할 수도 있다. 이런 경계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우리 국민은 인민민주주의를 절대 수용하지도 않을 것이고,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와 같은 제3의 민주적 기본질서도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구성하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권은 자유한국당의 대북정책과 연결하여 기본질서와 관련된 개헌 문제로 국론분열을 증폭시키는 공세를 자초할 필요가 없다. 늦게나마 민주당의 개헌안에서 우여곡절 끝에 기본질서 문제가 정리된 것은 다행이다.

또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도 자문위의 개정안을 "국가 사회주의 방향으로 ... 시장경제 우선 원칙이 계획경제로 나가는 것"이라고 평가했는데, 21세기에 국가사회주의 체제는 존재하지도 않고, 중국도 이미 계획경제 국가가 아니다.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시장경제와 민주적 국가개입을 혼합하고 있고, 그 비중이 국가별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중국의 국가개입은 권위주의적이다.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도 보수 정당인 기민당이 1950년대에 주도한 것이었다. 21세기에서 국가 사회주의 또는 계획경제 운운하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인터뷰②] 개헌, 국회가 못하면 문 대통령이 반드시 발의해야"


태그:#개헌, #개헌안, #이국영 교수, #자유한국당, #통합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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