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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방문과 이에 대한 <조선일보>의 의혹제기, 뒤이은 자유한국당의 정치공세가 봉합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이런 흐름이 형성된 결정적인 계기는 "우리 군이 UAE의 유사시에 자동으로 개입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군사협정을 체결해줬다"는 김태영 전 국방장관의 증언이었다. 이와 관련,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10일 밤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한국-UAE간 군사협정은 협정이 아니라 '사실상 양해각서'라고 밝혔다.

협정이든 양해각서이든 우리 군이 UAE 유사시에 자동개입한다는 내용 자체는 무척이나 심각하다. 내용을 문제 삼기에 앞서 과정부터 살펴보자. 과정 역시 문제 투성이다. 김 전 장관은 협정 체결 과정에서 국회 비준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이 JTBC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국회 분위기가 항상 일단 정부에서 뭐했다 하면 일단 반대하는 쪽으로 하잖아요. (그래서) 비준을 안하는 쪽으로 생각한 거예요.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즉, 국회로 가져가면 야당이 반대하니까 일단 김 전 장관 자신이 책임지기로 하고 협정을 밀어붙였다는 말이다. 더욱 심각한 건 군 통수권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를 안 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다. 우리 헌법 제74조 1항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외국에 우리 군대를 보내는 일 역시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결국 김 전 장관은 스스로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침해했다고 실토한 셈이다.

UEA와 협정 맺을 때 복잡한 중동 정세 고려했나?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 군의 자동개입이다. 전반적인 중동 정세는 수니파인 사우디와 시아파인 이란이 대결하는 구도다. 혈통상으로도 사우디는 아랍계이고, 이란은 페르시아계로 다르다. 그리고 수니 계열인 UAE는 1960년대 말부터 걸프지역 3개 도서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이란과 분쟁을 벌여왔다. UAE는 또 이란이 핵개발에 나서자 금융제재를 강화하고 미국에 군사행동을 촉구하면서 재차 이란과 알력을 빚고 있다. 한편 3년째 내전 중인 예멘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반군이 UAE 원전시설을 공격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렇듯 UAE와 중동 지역의 전반적인 정세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중동 지역 정세가 사우디와 이란의 대립구도라고는 하지만, 과거 미·소 냉전처럼 진영이 확연하게 갈리는 것도 아니다. 지난 1980년 당시 이라크를 통치하던 사담 후세인은 이란을 전격 침공했다. 이때 후세인은 이라크 내 시아파 주민들을 이란으로 추방했다. 이라크 인구 지형에서 시아파와 수니파의 비율은 6대 4 정도로 시아파가 우위에 있다. 후세인은 시아파 종주국을 자처하는 이란과 전쟁을 벌이면서 자국내 시아파 주민들을 적대자로 오인한 것이다. 시아파 주민들은 이 같은 조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류광철 전 이라크 대리대사는 자신의 책 <통치와 광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후세인은 전쟁 중 시아파를 이란으로 추방했다. 이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여긴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추방자의 숫자가 커지더니 1985년쯤 되면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30만 명 이상이 강제로 추방되었다. (중략) 이라크 당국자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중에도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가도록 강제했다. 사실 이라크 시아파는 경직된 종파주의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떠날 생각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대대로 이라크에서 살아왔고 자식들이 이라크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시아파이긴 해도 호메이니 정권과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체제에서 살 생각은 없었다."

이렇듯 중동은 지도상의 국경선 보다 종파·부족에 대한 충성심이 정체성에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이 중동에 개입했다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이 같은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다. 원전을 수주하겠다고 우리 군의 UAE 유사시 자동개입을 약속한 건 그래서 위험천만하다. 결국 문제가 생겼다. 김종대 의원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10일 오후 JTBC뉴스룸에 출연해 한-UAE 군사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10일 오후 JTBC뉴스룸에 출연해 한-UAE 군사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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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협정에만 주목을 합니다마는 이렇게 포괄적인 양국의 자동개입을 규정하는 협정은 추상적입니다. 그러나 실제 도와줘야 할 것은 국군 파병, 그 다음에 UAE군 교육 훈련 그 다음에 군수 물자 지원, 그 다음에 군사기술, 방산 기술 지원. 이런 내용들을 후속 조치로 이행하기 위해서 별도의 MOU(양해각서)를 맺게 되는데 그것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6건입니다. 계속 후속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지원량을 늘려왔거든요. 마지막 양해각서가 박근혜 정부 때 체결됐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예멘 내전에 개입하는 UAE의 안보상황이 굉장히 심각해지니까 한국에 많은 지원요청을 하게 돼 있고 이전의 협정을 근거로 제시하니까 새로 구성된 문재인 정부의 첫 국방부 장관인 송영무 장관은 이 요구를 들어줬을 때 '국내법 위반이다', '이것은 도저히 응할 수 없는 지원이다' 이것을 UAE에 가서 얘기를 했고 여기에 UAE가 이전 정부가 다 약속해 준 것이다. 이래서 탈이 났죠."

원전 수출은 분명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원전 수출 대가로 젊은이들을 위험천만한 지역으로 보내야만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연 이 같은 협정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지 분명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임 비서실장의 UAE방문을 문제 삼았던 <조선일보>는 이제는 안보 수요 운운하며 UAE원전 수출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이 신문의 양상훈 주필은 11일자 자신의 칼럼에서 이렇게 적었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11일치 칼럼에서 UAE 원전 수출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11일치 칼럼에서 UAE 원전 수출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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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군사 기술 이전과 함께 UAE에 '핵우산' 제공을 제안했다는 설까지 돌았다. (중략) 그런데 프랑스에 약점이 있었다. UAE의 가상 적국인 이란과도 관계가 깊다는 사실이었다. 이 대통령이 안보 협력을 제안하자 UAE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북한과 오랜 유대를 맺어온 이란은 북한과 여러모로 비슷한 군사 체제를 갖고 있다. 무기 체계도 유사하다. 더구나 UAE와 이란 사이의 좁은 바다에 우리 서해 5도와 같은 섬까지 있다. 안보 수요가 한국과 일치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UAE는 며칠 동안 이 문제를 깊이 검토한 것 같다. UAE 왕세제는 이 대통령과 통화한 지 5일 만에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입찰을 연기하기로 했다.' 파리 개선문 바로 앞에 가 있던 400억 달러 UAE 원전이 서울로 방향을 튼 것이다."

400억 달러의 원전과 우리 젊은이들의 생명 중에 어느 쪽이 더 소중할까? 우리 젊은이들을 이란과 끊임없이 분쟁을 벌이고 있고, 군사적 긴장이 높은 UAE에 보내는 것이 400억 달러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일까?

한-UAE 원전수출과 이 과정에서 맺어진 우리 군의 자동개입 조항을 들여다보면 이명박 전 정권은 우리 군을 마치 사병처럼 여겼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가간 협약은 정권교체 여부와 관계없이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UAE와의 협약 내용을 보완하는 일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공개되지 않은 협정이나 MOU(양해각서) 속에 흠결이 있다면 그런 부분은 앞으로 시간을 두고 UAE와 수정·보완하는 문제를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한편으로는 안도한다.

UAE 유사시 우리 군의 자동개입은 우리 젊은이들의 소중한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UAE측과 협의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그리고 김 전 장관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김 전 장관은 2010년 11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 이때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UAE와의 이면 합의 여부를 물었고, 김 전 장관은 이를 부인했다. 아래는 유 의원과 김 전 장관의 질의내용이다.

유승민 의원 : 장관께서 작년 11월 달에 UAE를 2차례 방문을 하셨지요?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 예, 그렇습니다.

유승민 의원 : 그리고 12월 27일 날 대통령께서 UAE 방문해서 원전 수주를 발표를 하셨는데, 그 같은 날 연합뉴스에 '김태영 장관이 UAE를 방문해서 MOU를 체결했다. 유사시에 군사적 지원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보도가 나고, 그다음 날 동아일보하고 조선일보에는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서. 

'아랍에미리트에 자국 안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 한국에 군사 지원을 요청할 거고 한국군이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 된다' 이런 보도가 동아일보에 나고요. 조선일보에는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서 '두 나라가 군사동맹에 다음 가는 군사협력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면 된다' 이렇게 났어요.

2009년 11월, 작년 11월 장관께서 아랍에미리트 방문했을 때 이 아랍에미리트와 MOU를 체결한 사실이 있습니까?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 그것은 제가 말씀드렸듯이 없습니다.

이랬던 김 전 장관이 7년 여가 지난 지금에서는 "내가 책임을 지고 (국회 비준이 필요 없는) 협약으로 하자고 했다"며 이면합의 사실을 인정했다. 결국 김 전 장관은 위증을 한 셈이다. 위증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김 전 장관이 시효를 계산해서 발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런 가능성과 별개로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만약 관련법이 없다면, 전두환·노태우를 단죄했을 때처럼 특별법을 만들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은 400억 달러에 눈 멀어 우리 젊은이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태그:#김종대 의원, #UAE, #김태영 전 국방장관, #특별법, #이명박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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