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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전영기의 시시각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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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평화는 남북대화와 남남 통합의 두 날개가 펴져야 앞으로 간다. 문 대통령이 일부 지지층만 설득하면 쉽고 빠르게 도달할 통합의 방법이 있다. 올림픽이 열리기 열흘 전쯤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를 청와대로 초청한다. 평창 개막식에 같이 참석하자고 제안한다. 많은 국민은 정파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문 대통령의 포용력과 개방성에 또 한번 놀랄 것이다."

근래 들어 목도한 최고(?)의 칼럼을 소개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급했으면, 얼마나 시급했으면 이런 주장을 펼친단 말인가. 칼럼의 주인은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칼럼니스트인 전영기 기자고, 글의 출처는 <중앙일보> 8일자 <'평창 개막식'의 꿈같은 한 장면>이다.

요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를 청와대로 초청한 뒤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초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이유가 참으로 '클리쉐'에 가깝다. '남남 통합', 즉 박근혜도, 이명박도, 아니 전두환, 박정희도 부르짖었던 그 '국민 통합'이다. 전 기자는 "전·현직 대통령의 평창 등장은 지상 최악의 안보 위기에도 굴하지 않는 한국 국민의 굳건한 통합성과 애국심을 상징한다"며 "수십억 명 세계인이 감동할 꿈의 장면이 될 것"이라고 썼다.

한 마디만 해 주고 싶다. 도대체 누구 맘대로 "수십억 명의 세계인"이 감동한다고 장담하는가. 누구에게는 MB의 평창 개막식 참석이 꿈 같이 즐거울 일일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는 '개꿈'이라는 걸 진정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전 기자의 궤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쭙잖은 숫자 놀음으로 국민여론을 호도하기까지 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취임사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도 저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그때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은 1900만 명(투표자의 57%)이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찍은 사람은 1100만 명. 이 중 다수는 이명박이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평창 개막식에 참석하길 바란다."

살짝 비틀기는 했지만,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찍지 않은 '1900만 명(투표자의 57%)'을 강조하는 동시에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48.7%)를 '1100만 명'에 빗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중 다수는 이명박이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평창 개막식에 참석하길 바란다"는 비약이 등장한다. 헌데, 이 칼럼이 더 나쁜 이유는 후반부에 있다. 이명박을 살리자고, '또' 노무현을 등판시키는 꼴이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이 지속적으로 반복 중인 '레토릭'이다. 

MB가 평창 개막식 참가하면 수십억 세계인이 감동?

"하지만 이명박의 적폐는 증명되지 않았다."

'증명'되지 않았기에, '아직'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니.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고, <중앙일보> 편집국 정치부 부장 대우 출신인 전 기자가 꼽은 MB를 '대우'해야 하는,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MB를 초대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어불성설이다. 더 나쁜 것은 바로 그 다음이다.

"문 대통령의 골수 지지층은 적폐의 출발이요 청산의 목표인 이명박을 왜 대접해 주느냐고 흥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의 적폐는 증명되지 않았다. 청산의 목표는 사람이 아니다. 정치문화와 시스템이어야 한다. 문재인 지지층에 퍼져 있는 '노무현이 이명박의 정치보복 때문에 자살했다'는 명제도 도그마에 불과하다. 누구보다 문 대통령이 잘 알고 있다. 그는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치른 뒤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까지 주장하고 싶지 않다'(6월 2일자)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말라고 했다든가 검찰에 봉하마을 방문조사 지침을 준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청사에 출두한 건 스스로의 결단이었다. 따라서 현재 친노·친문 세력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이명박을 구속해야 노무현의 복수가 완성된다'는 믿음은 실제 사실과 관계없다. 허위의식이다."

어디가 허위의식인가. '이명박 구속'이란 귀결은 '노무현을 위한 복수'가 아니다. '피고인 박근혜'와 마찬가지로 MB가 재임 시절 저지른 해악과 사익 추구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연초 JTBC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수사에 대정치 보복이라고 답한 사람이 22.5%, 적폐 청산이라는 응답은 67.4%였다. 적폐 청산에 동의하는 국민이 약 세 배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수사도 시일이 걸리더라도 계속해야 한다는 쪽이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는 응답의 두 배가 넘었다. 그렇다. 청산의 목표는 MB가 아니다. MB가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죄'일 뿐이다. 

더군다나, 노 전 대통령 조사에 대해 지침을 주었는지, 아닌지는 언제, 어떻게 '증명' 됐나. 8일 <한겨레>는 <문 대통령-MB, 평창 개막식에 동시 입장" 하자고?>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전 기자의 칼럼을 이렇게 반박했다. 

"하지만 당시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질문에 '꼭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 뒤 바로 '다만 여러 가지 수사와 관련된 여러 상황이 그분을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몰아간 측면은 분명히 있으니 타살적 요소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칼럼은 이어진 두 문장의 답변에서 첫 번째 문장만 취사선택한 셈이다."

MB 편들기를 위해 노무현을 소환한 것도 모자라 문재인 대통령의 과거 인터뷰까지 왜곡된 해석을 일삼은 것이다. 정치학 석사에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 출신의 칼럼니스트의 글 치고는 수준이 떨어져도 한참이나 떨어진다. 아니, 수준 문제가 아니다. 의도된 왜곡일 경우가 다분하기에, 죄질이 나빠도 한참이나 나쁘다.

MB가 향할 곳은 평창 아닌 검찰 포토라인

궤변은 계속된다. '이명박, 이건희 만세'를 부르는 꼴이, 가히 가관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끝, 이라며 겁을 주던 전 기자는 칼럼은 이렇게 끝맺는다. 

"평창은 놀라운 선물이다.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을 한반도 위기 탈출의 매혹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평창 선물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신지. 평창의 도전은 노무현 대통령 때 두 번 실패한 뒤 이명박 대통령이 세 번째 달려들어 성공했다. 그는 200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을 '1인 사면'해 부담을 백배 주고 뛰게 했다.

2011년엔 본인이 IOC 회의가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날아갔다. 김연아와 한국 프레젠테이션 대표팀의 일원이 돼 개최권을 따냈다. 평창의 열매는 문 대통령의 몫이 됐다. 평창의 씨앗을 뿌린 이명박·이건희의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의 계속성은 유지되어야 한다."

말은 제대로 하자. 평창이란 선물은 MB가 만든 것이 아니다. 민주 정부가 만든 과실을 MB가 따먹은 것뿐이다. 게다가 그러한 평창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세력과 엉망진창으로 만들 뻔했던 올림픽이기까지 하다. 그런 전력은 눈감은 채, "평창의 씨앗을 뿌린 이명박·이건희의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니 어디서 MB 용비어천가를 부르자는 건가.

<중앙일보> '전영기의 시시각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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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기자의 'MB 사랑'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작년 11월, <김관진, 감방에 보내야 했나>라는 칼럼을 통해 "김관진(68) 전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김정은이 제일 싫어했던 사람"이라고 두둔하는 한편,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의 구속을 두고 "이명박 잡으려는 무리수 아닌가"라며 '설'을 펴기도 했다. 전형적인 '외눈박이' 보수의 주장을 대변해 온 셈이다. 

보수와 극우 세력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내는 막말과 궤변으로 인해 사회적 피로감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급기야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대구 신년 인사회 자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은 보수가 밝혔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보고 왜 우나?"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을 찾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악수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을 찾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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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궤변의 정점은 MB가 매일매일 경신 중이다. 작년 연말 모임에서 MB는 "다스는 누구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나한테 물어볼 거는 아닌 것 같다"며 특유의 '유체이탈화법'을 또 다시 시전한 바 있다. 또 최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방문한 자리에서 MB는 "형제 간에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는 건 정부가 개입해서 수사하는데, 자기 것이 아니라는데 정부가 왜 개입하냐"고 발언했다는 소식이다. 

'내가 아니라면 아니지 왜 정부가 개입하느냐'는 취지의 발언이다. 계속 그렇게 우기시라. 그러면 "하지만 이명박의 적폐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전영기 기자나 17대 대선 때 MB를 찍었던 일부 유권자들은 믿을지 모르니. 하지만 그를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개입을 하든 말든, 자기 것도 아닌 회사에 신경을 쓰는 MB, 그 회사에 아들을 취직시키고 후계자로 만든 이상한 전직 대통령 MB가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나란히 참석하는 것은 절대 막아야 한다고. MB가 향할 곳은 평창이 아닌 검찰 포토라인 아니겠는가.


태그:#이명박,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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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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