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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9일, 어머니의 암 투병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대출 보증을 섰다가 거액의 빚을 떠안은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관련 기사 : 친구 위해 빚보증 선 20대 남자가 자살했다).

감당하기 힘든 일 앞에 그의 삶은 주저앉았다
 감당하기 힘든 일 앞에 그의 삶은 주저앉았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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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청년 영환(가명)이 생을 마감했다. 영환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와서 낯선 여자와 만났다. 그리고 그 둘은 함께 이승을 달리했다. 그는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친구의 부탁으로 보증을 서서 6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빚을 졌고 빚을 갚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친구의 어머니 암 치료 병원비 마련을 위해 보증을 섰지만, 친구의 어머니는 사망하고, 친구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친구의 죽음으로 빚을 떠안은 영환은 울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위험물을 취급하는 공장이었다. 밤낮으로 일했고 주변의 도움을 받았지만 6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갚을 길은 막막했다. 고된 일의 연속이었다.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친구는 왜 나에게 이렇게 큰 짐을 내게 주었나. 그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한다.

스물여덟 영환의 죽음은 안타깝고 기가 막힌 일이다. 우리나라 공공의료가 제대로 되었더라면 암 투병에 드는 비용이 적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를 위해, 친구를 위해 같이 희생했던 그 젊음은 지금쯤은 새해를 맞고, 봄이 되면 또 다른 꿈을 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친구 또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따른 슬픔 못지않게 암 투병 뒤에 남은 많은 부채와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진 부채로 인한 고통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이십대 후반의 청년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짐이다.

암치료에는 돈이 많이 든다. 사례를 보자.

사례 1) 폐암4기  환자 A씨는 새로 나온 항암 주사제를 한 번 맞는데 드는 비용이 340만원으로 넉달가 치료비만 무려 2천여만원이 들어 결국 30년간 살아온 집을 내놨다.

사례 2) 유방암 환자 B씨는 기존 항암제 치료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신약으로 바꾸어
25차례 항암치룔르 진행, 결국 총 1억 813만원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그간 모은 돈을 쏟아부었고 나중에는 집까지 팔아야했다.  (출처 : 건강보장성 강화 홈페이지)

국민건강보험으로는 암 치료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63%이고(OECD최하위권) 입원치료 보장률은 55%로 OECD국가 가운데 꼴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민간의료보험가입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먹고 살기 힘든 소득하위층은 민간보험가입도 어렵다. 그리고 큰 질병앞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한 자료에 따르면(관련 기사 :  소득 수준 낮을수록 민간보험 가입률 낮고 보험 개수도 적어) 소득 하위 20%의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은 37.4%로 상위 20%(95.2%)에 견줘 크게 낮았다. 납입한 보험료 대비 수령 보험금 비율을 보면 소득 하위 20%는 6.71%로 상위 20%의 13.2%의 견줘 절반 수준이었다. 가난할수록 오히려 보험료 혜택도 많이 받지 못했다. 아파도 병원에 가기 꺼려서이다. 

소득하위, 상위 20% 민간보험가입률과 납입대비지급보험료 비율
 소득하위, 상위 20% 민간보험가입률과 납입대비지급보험료 비율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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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한 적 있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34%이고, 국민의 10%는 위험한 의료 사각지대에 있다. 국가의 공공보험은 턱없이 부족하고, 가난한 이에게는 민간의료보험조차 높은 벽이다. 누구에게나 질병에 걸리면 한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는 상황은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른다. 극단적 상황까지는 아니어도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영환, 또 영환의 친구와 같은 사례는 있을 것이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의사협회의 반대로 주춤하고 있다. 국가는 부자지만 공공의료는 턱없이 허술한 나라. 많은 이들이 지금 이 순간 질병치료를 위해 살던 집을 팔거나 제2금융권까지 돈을 빌리러 다닐 것이다. 곧 소득 3만 불을 바라본다고 한다, 한류관광의 주요 테마는 한국의 '눈부신 의료기술'이라 한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서른도 넘기지 못한 한 청년이 친구의 의료비 빚보증을 섰다가 생을 마감했다.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생을 정리하기 위해 먼 바닷가로 가던 그의 하루는, 그의 아침은 어땠을까.

덧붙이는 글 |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러나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비극에 대해 기록 남기고자 합니다.



태그:#문재인케어, #청년자살,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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