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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한푼 두푼 아껴서 세금을 내고, 그 한푼 두푼을 벌다가 목숨까지 잃기도 하는데, 대체 이들은 그 세금을 어떻게 이렇게 써버릴 수가 있는가…."

4일 방송된 <뉴스룸> 손석희 앵커의 말마따나, 시민들은, 국민들은 가계부채에 시달리고, 최저임금 인상을 애타게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송파 세 모녀는 월세 50만원을 못 내 목숨을 끊었고, 구의역 참사의 희생자 청년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었다.

담뱃값 인상은 어떠한가. 흡연자들의 쌈짓돈을 털어 국가 세금을 끌어다 쓴 대표적인 서민증세의 꼼수였다. 이게 다 열거하기도 벅찬 박근혜 정부 하의 서민들의 빡빡했던 삶의 단면들이다. 무능했고, 또 무식했다. 그렇게 경제를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대통령이 국민 세금은 기막히게 가져다 썼다. 말 그대로 물 쓰듯 썼다. 손석희 앵커의 멘트는 이랬다.

"'기치료와 주사비, 차명폰 사용에 3억6500만 원, 문고리 3인방 활동비와 휴가비로 9억7600만 원, 또 의상비로 6억9100만 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납받은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오로지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됐다는 검찰 발표 내용입니다.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는 박 전 대통령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수사 결과가 나온 겁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에서 36억 5000만 원을 뇌물로 받아 20여억 원을 본인과 측근 관리에만 사용했습니다. 나머지 돈은 어디에 썼는지 아직 모릅니다. 자신의 옷값으로 월 2000만 원을 내는가 하면, 문고리 비서관 휴가비로 수천만 원을 주는 등 그야말로 물 쓰듯이 돈을 썼습니다." (4일 <뉴스룸> 보도)

세금 물 뜨듯이 쓴 박근혜

만약 이날 검찰 조사 발표와 관련된 기사의 제목만 보고서 "박근혜가 그렇지 뭐"라고 한탄하거나 체념 했다면, 그 사용 내역을 꼭 확인하기를 당부 드리는 바다. 도대체 문고리 3인방이 뭘 했기에, 기치료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 의상실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억의 국민 세금을 맘껏 뿌리고 유용하면서 인심을 썼는지 말이다.

더욱이 다 채우지도 못한 임기 말로 향할수록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양심과 윤리는 더 희박해졌다. 아니, 처음부터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경제관, 통치관에 투철했을 것이다. '국가 돈이 제 돈'이란 유신에서나 가능했을 독재식 국가관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특수활동비를 가져다 쓴 액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을 리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남재준 초대 국정원장 때 매달 5000만 원씩 총 6억 원, 후임인 이병기 국정원장 시절 매달 1억 원씩 총 8억 원, 마지막 이병호 국정원장 때는 매달 1억~2억 원씩 총 19억 원을 가져다 썼다. 이렇게 받아 낸 돈이 총 35억이고, 그 중 16억은 어디다 썼는지 용처도 아직 파악이 덜 됐다고 한다. 뇌물죄에 이어 엄단이 필요한 죄목이 추가된 셈이다.

그 경악할 만한 용처도 용처지만, '마인드' 자체다. 국민 세금을 마치 제 것 인양 최순실에게, 문고리 3인방에게, 그리고 기치료와 주사비 등 자기 몸에 펑펑 쓴 전직 대통령. "단 한 번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던 '피고인 박근혜' 말고도 이렇게 '사익'에 한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직 대통령은 또 있다. MB 말이다.

다스를 포함해 MB와 관련된 새로운 의혹과 증언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또 한 번 국민들을 분노케 할 장면을 연출했다. 어쩜 그리 아무렇지 않다는 듯 '조소'를 날릴 수 있는지, 그 여유는 어디서 연원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쇼와 적폐 운운한 이명박과 홍준표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을 찾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악수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을 찾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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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는 기가 막히게 해요."
"좌파정권이 들어서니까 SBS도 뺐겼어요."

기본 적으로 언론독립을 심하게 깔아뭉개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이 그렇게도 큰 '유머'였을까. 이 발언들 직후 MB를 포함 일동이 환하게 웃는 그 순간은 무술년 새해 들어 목도한 가장 어이없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MB 바로 옆자리에는 하금열 전 SBS 사장이 배석하고 있었다. 그는 SBS 보도본부장을 거쳐 2009년 SBS 사장을 지냈고, MB 정부 마지막 대통령 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특히 MB 블랙리스트가 터져 나오면서, 하 전 실장은 국정원과의 접촉이나 SBS 외압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화기애애한 웃음은 결국 발언 당사자인 홍준표 대표는 물론 MB나 하금열 전 실장이 언론을,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하는지 보여주는 단초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익'과 관련해서도 다르지 않다. 다스의 차명계좌나 BBK와 관련, MB 정부 당시 청와대 개입 의혹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익'을 위해 청와대의 자원을 활용했다는 의혹은 오래전부터 제기되 온 사안 아닌가. 도곡동 땅 매입 의혹은 또 어떠한가.

이날 MB는 오늘도 별 일 없이 잘 사는 '외양'을 또 한 번 확인시켜줬다. "적폐" 운운도 여전했다. 홍 대표에게도 "이럴 때 야당이 건강하고 야당이 힘이 있는 야당이 되면 국정에도 도움이 되는 거야. 오히려 파트너지"라며 덕담 아닌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 역시 여전했다랄까.

이렇게 한때 최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과 전직 다스 전직 직원들의 "다스는 MB꺼"라는 증언들이 쏟아지고 검찰이 관련 증언을 확보했다는 소식에도, MB는 아랑곳없어 보인다. 오히려 솔직한 속내는 카메라 뒤에서 나온 듯하다. 4일 <TV조선>은 이날 MB가 "형제 간에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는 건 정부가 개입해서 수사하는데, 자기 것이 아니라는데 정부가 왜 개입하냐"며 다스 실소유주 관련 수사에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고 한다.

참으로 간단하고 자기 편의주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이, 언론이, 검찰까지 나서서 "실소유주가 MB 아니냐"고 묻고 있는데, "내가 아니라면 아니다"로 일관하는 MB. 서울구치소 503호에 수감 중인 '피고인 박근혜'나 여전히 5.18 발포의 책임이 본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전두환씨까지, 작고한 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외에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중 존경할 만한 인물이 전무하다는 것이야말로 한국사회의 비극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현직 대통령은 4일 고맙고도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초청한 자리에서였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눈물과 감동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초청 오찬에 참석하는 할머니들을 청와대 본관 앞에서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포옹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초청 오찬에 참석하는 할머니들을 청와대 본관 앞에서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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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문재인 정부가) 홍보는 잘 하잖아. 그것도 능력 아니야?" (이명박)
"근데 그것도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진실이 담기지 않는 쇼는 들통이 납니다." (홍준표)

3일 홍 대표와 MB가 나눈 발언 중 일부다. 자고로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쇼'로 규정하는 순간, 그 어떤 것에도 진심이나 진의는 왜곡돼 보이기 마련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밀실 합의를 통해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은 어찌할텐가.

"2015년 12월 28일 합의 이후 매일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한스러웠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이 합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주어 가슴이 후련하고 고마워서 그날 펑펑 울었다."

4일 청와대 오찬에 초청된 8명의 피해자 할머니 중 이용수 할머니가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받은 뒤 표한 감사의 인사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 할머니들을 따뜻하게 안아줬다. 역대 대통령 중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위로'였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위로'를 두고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는 오찬 뒤 "할머니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환하게, 그리고 감동한 모습으로 계셨다"며  "할머니들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로부터 지지와 존중을 받으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대통령, 제천 화제 현장에 달려가 유족들에게 사죄를 하는 대통령, 우리는 지난 10년 간 이렇게 공식적으로 당당하게 약자를, 피해자를 안아주고 위로하는 대통령을 만나보지 못했었다. '사익'만 추구했던 누구들과는, 세월호 참사도, 용산 참사도 나 몰라라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유족들을 탄압했던 누구들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행보 아닌가 말이다.

이러한 '위로'까지, 더군다나 박근혜 대통령이 무책임하게 싸지른 한일 위안부 합의를 되돌리려는 문 대통령의 노력까지 '쇼'로 규정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홍준표 대표가 대표적이다. 부디, '막말'만 싸지르지 마시고, 이런 '쇼'라도 좀 보여주시기를 바란다.

촛불혁명을 거친 국민들은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위로가 쇼인지 아닌지 제대로 판단할 충분한 준비가 돼 있으니 말이다. 아니, 제발 그 '쇼'라도, '홍보'라도 잘 해 보시라. 원래 '진심'과 '선의'는 행동에서, 실천에서 비롯하는 법이니까.

1월 4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초청 오찬에서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을 전한 청와대.
 1월 4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초청 오찬에서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을 전한 청와대.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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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문재인, #이명박, #박근혜,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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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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