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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그림을 종북 확산에 이용한 것이라고?

느닷없이 인공기 논란이다.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가 드높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인공기가 은행 달력에 등장하는 그런 세상이 됐다"고 우리은행 달력에 나온 그림을 문제 삼자 자유한국당은 "대한민국 안보 불감증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고 말을 보탰다. 이틀이 지나 3일 오후에는 입이 더 커졌다. 자유한국당 중앙직능위원회가 '인공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군사적 도발보다 심각한 문제"라면서 "어린아이의 그림을 종북 확산에 이용한 것"이라는 말을 쏟아냈다. 

이런 억지야 귀에 딱지 앉도록 하도 들어 익숙하건만, 그래도 과연 이게 안보 불감증이니 종북 확산이니 하고 눈에 심지를 켜고 할 말인가 되묻고 싶다. 색안경 끼고 펄펄 뛰는, 그 컴컴한 속마음이 궁금하다. 달은 보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문제라고 논란을 부풀리는 격이다. 혹시 그림을 못 본 사람이 있을까 싶어 그림을 보고 이어가겠다.

우리은행에 연 제22회 우리미술대회에서 초등부 대상을 받은 그림으로, 다가올 뒷날에 통일나무가 쑥쑥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 제22회 우리은행 우리미술대회 초등부 대상 그림 우리은행에 연 제22회 우리미술대회에서 초등부 대상을 받은 그림으로, 다가올 뒷날에 통일나무가 쑥쑥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 우리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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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안 보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나무라는 격

이 그림은 제22회 우리은행에 연 미술대회 유·초등부 대상(http://www.woorimisul.com)을 받았다. 아마도 '쑥쑥 ○○이/가 자란다'는 주제를 주고 아이들한테 받은 그림들에서 가려 뽑아 상을 준 모양이다. 아이가 그린 그림은 누가 봐도 사람처럼 그린 '통일 나무'다. 나무는 두 팔을 벌리고 두 손에 태극기와 인공기를 들었다. 나무 둘레엔 온갖 꽃들을 그렸고, 서로 어깨동무한 아이들이 웃고 있다. 아이들 상상력으로는 얼마든지 나올 법한 그림이고 이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심사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심사위원장인 신하순 서울대 미술대학 부학장이 쓴 심사평을 그대로 옮겨 본다.
   
제22회 우리은행 우리 미술대회 최종 심사평
나무에는 작은 가지와 잎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행복한 미소가 느껴집니다. 아마도 다가올 미래에 이 평화로운 통일 나무가 스스로 움트고 자라서 행복한 미래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무와 의미 있는 내용,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동화된 표현에서 행복한 느낌으로 그림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그 마음속에 품은 느낌이나 생각, 의견 따위를 드러낼 수 있고 마땅히 그런 사회,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한다. 할 말 있는 사람 누구라도 속말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때 목숨이 피어나고 민주주의가 꽃핀다. 백 걸음 양보해서 저런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권력 있는 입이 말할 때는 달라야 한다. 신중해야 한다.

아이들이 제 생각을 마음껏 토해낼 수 있는 나라라야 희망이 있다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 정부 때 '통일 대박'을 줄기차게 부르대던 입들 아닌가. 그런데 지금 와서 통일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니 뜻밖이다. 그때 말한 통일과 아이가 표현한 통일은 다른 것인가. 아주 딴사람이 되어 그림에 쬐끄맣게 그린 '인공기'만 보인다고 떠벌린다. 옆에 함께 그려놓은 태극기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그저 태극기 그려 넣은 자리가 중요하고 얼마나 크게 그렸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박박 우겨대는 꼴이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어른들인가. 초등학생 그림을 비 맞은 강아지처럼 구석진 데 몰아넣고 차갑고 무서운 말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게 과연 나라다운 나라인가. 자기 눈에 거슬린다고 종북으로 내몰고 나라를 배신하는 짓거리라고 부추기는 말이 진정 이 나라를 사랑해서 하는 말인가.

눈은 비뚤어져도 그림을 제대로 보라. 그림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먼저 살핀 다음 입을 열어라. 그게 아이한테 죄짓지 않는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들이 제 생각을 마음껏 밀고 나가고 속말을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나라. 그게 나라다운 나라 아니겠는가.


태그:#우리은행, #달력 그림, #인공기, #초등학생 , #통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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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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