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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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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댁을 방문하니 안방에 두 손님이 있었다.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이 귀한 손님은 가장 뜨뜻한 아랫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울 엄마는 기름값 아낀다고 잠자기 한 두 시간 전에야 난방을 하고, 새벽에 일부러 일어나서 끌 정도로 짠순이 유형이다. 이런 짠순 아짐이 며칠 묵으러 온 손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온종일 난방을 하며 극진하게 대하고 있었다. 누가 알면 집에 산후조리하는 산모가 있는 줄 알겠다.

어디 그뿐인가. 담요에 요까지 손님이 차지한 터라 이 게으른 딸은 평소와 달리 이불 덮고 누워서 뒹굴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 손님들의 체취는 두어 달 씻기지 않은 울 개의 꾸릿꾸릿한 냄새보다 더 강렬했다. 하지만 개의 털 냄새처럼 은근 중독적인 매력을 지녔다.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나오는 그 얼룩배기 황소의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닮았다고나 할까.

청국장과 메주. 이 VVIP 덕으로 내년에 이 노부부의 집에서 장씨 성의 사남매가 탄생할 것이다. 된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

엄마는 딸에게 줄 김치 등을 주섬주섬 싸서 거실에 놓았다. 그리고 아구찜 하고 있으니 밥 먹고 가라고 일렀다.

주방에서 자그마한 전기밥솥이 칙칙 소리를 내고, 큼지막한 냄비는 쉭쉭 거리며 고르게 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늙은 아짐이 안방에 들어왔다. 안방 웃목에 마주보고 앉아 밖에 놀러나간 남편이 그간 서운하게 한 것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러자 어린 아짐은 "암튼... 처복으로 사는 줄 모르고 왜 그런지 몰라. 요즘 어떤 세상인데. 간도 부었지"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아랫목 VVIP 두 손님은 짚과 담요를 덮고서 오도카니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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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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