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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결혼식장엘 가보면 주례 없이 치러지는 결혼식도 드물지 않습니다. 시류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세태 탓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주례를 모시지 못하면 결혼식 자체를 올릴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식장에 등록해놓고 주례를 전업으로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주례를 모시기 어려운 사람들은 이런 분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얼마의 돈을 주고라도 반드시 모셔야 했던 게 주례였습니다.

주례는 대개 남자이고 지역사회에서 제법 알려진, 명망이 있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종교인들이 서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흔하진 않지만 결혼을 해봤을 리 없는 스님들이 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님 중에서 비구니, 여자 스님이 주례를 서는 경우는 희소하다 할 만큼 드문 경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대와 나, 참 좋은 인연입니다>

<그대와 나, 참 좋은 인연입니다> / 지은이 정운 / 펴낸곳 담앤북스 / 2017년 12월 26일 / 값 16,000원
 <그대와 나, 참 좋은 인연입니다> / 지은이 정운 / 펴낸곳 담앤북스 / 2017년 12월 26일 / 값 16,000원
ⓒ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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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나, 참 좋은 인연입니다>(지은이 정운, 펴낸곳 담앤북스)는 동국대학교에 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는 정운 스님, 35년 째 출가수행 중인 저자가 물결소리처럼 들으며 경험한 일,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듯 수행하며 정리한 내용들로 엮은 에세이집입니다.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절집 이야기도 있고, 사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도 있고, 경전에서 읽을 수 있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야기도 있고,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스님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절집 스님이 이렇게 살고, 절집 스님이 이런 것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창입니다.

지금 이 시각부터 신랑과 신부는 각각 통장을 하나 만드십시오. 그 통장에는 지출 코너는 만들지 말고 수입코너만 만드는 겁니다. 곧 상대에게 베풀었던 것은 기입하지 않고, 상대에게 받은 것만 기록하는 겁니다. 간혹 상대방에게 섭섭하거나 두 사람이 힘들 때, 각자 통장기록을 보십시오. 적어도 이런 수입통장만 갖는다면 두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제요, 황후가 될 것입니다. - <그대와 나, 참 좋은 인연입니다>, 51쪽

스님의 주례사는 고슴도치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암수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좋아했습니다. 뾰족뾰족한 털도 예쁘게만 보였습니다. 거창하게 결혼식도 올렸습니다. 하지만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둘 사이에 틈이 생겼습니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털이 서로를 콕콕 찌르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고슴도치이야기를 배경으로 이제 막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두 사람에게 삶의 지혜를 설파합니다. 살다보면 맞닥뜨리게 될 현실, 고슴도치 가시처럼 다가올 수도 있는 현실을 무난히 받아들이거나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수입 코너만 기록하는 통장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줍니다.

소녀의 감성, 회초리질 같은 따끔함 있어

세속에서 한 발 물러나 있지만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삶, 아옹다옹 다투는 세속의 삶보다 더 처절히 경계하며 살았어야 할 승속의 세계가 창호지 창에 비추는 그림자처럼 얼핏얼핏 드러납니다. 그래서 새길게 있고 따라서 읽혀지는 게 있습니다.

매화향기를 묘사한 글에서는 앳된 소녀의 감성이 풍기고, 나의 천적이 나임을 일러주는 글에서는 회초리질 같은 따끔함이 배어납니다. 가볍게 쓴 글이지만 묵직한 가르침이 있고, 길지 않게 쓴 꼭지 꼭지의 글마다 지혜로운 행복을 지향하는 가르침이 있이서 좋습니다.

비록 활자화 된 책을 통해서 만날지언정, 북풍한설 부는 이 겨울에 이토록 따스한 글로 만나니 <그대와 나, 참 좋은 인연입니다>을 통해 만나는 우리는 참 좋은 인연입니다.

비구니 스님이 들려주는 이런저런 이야기에는 금혼식을 넘긴 부부가 읽어도 좋을 만고의 진리, 지금 여기서 당장 시작해도 어느 누구에게나 삶의 이정표가 될 지혜가 있음을 읽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그대와 나, 참 좋은 인연입니다> / 지은이 정운 / 펴낸곳 담앤북스 / 2017년 12월 26일 / 값 16,000원



그대와 나, 참 좋은 인연입니다

정운 지음, 담앤북스(2017)


태그:#그대와 나, 참 좋은 인연입니다, #정운,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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