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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지나는 한 점이 바로 현재이고 그 현재는 바로 과거가 된다' 는 철학을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표현한 작품에 담고 있다.
▲ 둔덕고개 '시간은 지나는 한 점이 바로 현재이고 그 현재는 바로 과거가 된다' 는 철학을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표현한 작품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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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평창동에 있는 가나아트센터에서는 '십만 개의 머리카락'이라는 이색적인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강원도 태백의 탄광에서 광부로서 몇 년 간 탄을 캐는 생활을 하면서 탄가루를 개어 그걸로 광부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그리기도 했던 황재형 화백이 이번에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표현을 작품들을 전시장으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십만 개의 머리카락' 열림식을 하던 날 참가자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면서
▲ 황재형 화백 부부 '십만 개의 머리카락' 열림식을 하던 날 참가자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면서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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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모 일간지에 황재형의 '십만 개의 머리카락' 작품전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그날 오후에 오래만에 낯익은 목소리가 핸트폰을 울렸다.

"선생님, 저 장정희에요. 저 아시죠?"
"어, 이게 누구야? 태백의 장정희 선생이란 말이지요?"
"예, 이번에 황선생님이 서울에서 작품전을 여는데, 선생님 꼭 오시라도 전화를 드리라고 했어요."
"그래요. 아주 축하드릴 일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 신문에서 소식을 보았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몇 사람들의 근황과 연락처를 묻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목요일 오후 열림식이 열린다는 평창동의 가나아트센트를 찾았다. 황 화백이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면서 근황을 서로 물으며 잠깐 인사를 나누고, 밀려드는 손님들을 받느라 바쁜 황 화백을 두고, 작품들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머리카락을 이용하지 않은 작품과 이용한 작품의 작품성을 비교할 수 있게 전시되어 있는 작품
▲ 드러난 얼굴 머리카락을 이용하지 않은 작품과 이용한 작품의 작품성을 비교할 수 있게 전시되어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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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1층. 유화물감으로 그린 광부의 얼굴과 그 옆으로 똑같은 그림 위에 머리카락을 붙여 독특한 질감을 표현한 그림이 나란히 걸렸다. 이런 방식으로 그려진 작품들이 이번 전시회의 주요 콘셉트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머리카락'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발소나 미용실 바닥에 널부려져 있는 지저분한 쓰레기일 것이다. 그걸 그림 위에 붙여서 표현했으니 사람에 따라서는 불결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사람 나름일 수도 있겠지만.

털실이나 면봉, 쌀 등 다양한 재료들이 미술 작품에 이용이 되었지만 머리카락을 이렇게 그림에 사용된 예는 없었다고 가나아트센터 쪽에서는 이야기한다고 한다. 이 머리카락은 태백의 미용실 등을 돌면서 모아온 것이라고 한다.

안동에서 묘 속에서 발굴된 요절한 남편에 대한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와 거기서 발굴된 머리카락과 삼을 섞어 만든 미투리를 머리카락으로 재연하고 있다.
▲ 원이 엄마 편지 안동에서 묘 속에서 발굴된 요절한 남편에 대한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와 거기서 발굴된 머리카락과 삼을 섞어 만든 미투리를 머리카락으로 재연하고 있다.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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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도 머리카락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머리가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머리가 빠져 대머리가 되면 머리의 다른 부분에 나 있는 모발을 이식할 정도로 모발과 사람의 외모에 대한 관심과 보호하려는 노력이 지대하다.

머리카락을 우리 조상들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소중한 신체의 일부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모발 한 올이라도 훼손하는 것은 불효라고 생각할 정도로 모발에 대한 숭앙심을 가져왔다.

갑오개혁 때 단발령이 내려지자 전국의 유생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점차 인간이 진화를 하면서 탈모를 지향하고, 요즘 대머리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번 작품들 중에 특별히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1998년 안동에서 오래된 묘를 이장하면서 발굴된 이응태의 묘에서 발견된 '원이 아버지 전상서'라는 편지에 관한 내용이 이번 작품전에 관련하여 출품되어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남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그 편지의 내용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삼과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삼은 미투리가 그대로 발굴되었다는 것이다. 부인의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그것과 삼을 섞어서 삼은 짚신을 신고 저승길 잘 가시라는 애틋한 사랑의 징표를 보면서 황화백은 그걸 다시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다시 재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민중들, 핍박 받았던 역사, 바닥의 아픈 이야기들이 작품의 주제로

광부들이 위험하고 고단한 삶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 별바라기 광부들이 위험하고 고단한 삶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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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어머니'의 절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 새벽에 홀로 깨어 '세월호 어머니'의 절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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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전 주요 콘셉트가 머리카락을 그림에 이용하여 표현했다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중미술가답게 탄광촌 광부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여 있었다.

황 화백은 광부들이 막장에서 언제 사고로 죽을지도 모르는 힘든 삶, 가난한 탄광 마을의 풍경이라든가 가난한 농촌 사람들, 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 등 고단한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는 리얼리즘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번 작품전에도 그런 분위기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징용에 끌려가서 하모니카와 같은 집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던 조선인들의 현실을 표현한 작품이다.
▲ 하모니카 나고야 징용에 끌려가서 하모니카와 같은 집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던 조선인들의 현실을 표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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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의 압록강변에서 남북 분단 '반공 교육'의 공격성을 지적하는 작품이다.
▲ 탄착점 단둥의 압록강변에서 남북 분단 '반공 교육'의 공격성을 지적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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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탄광마을과 관련된 소재들은 물론이고, 세월호 어머니의 절규하는 이야기라든가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고단한 삶을 살았던 조선인들의 삶이 담겨있는 '하모니카 나고야'라든가 '강주룡, 을밀대에 오르다', 중국 단둥에서 바라보는 압록강에서 반공교육의 공격성을 드러내는 '탄착점',  백두산 천지의 가마꾼 그림, 고려 고종과 조선 인조의 '삼배구고두'의 항복 의식 등 역사의 아픈 곳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둔덕고개'라는 작품을 통해서는 현시대에 회화가 가지는 본질에 대하여 물으면서서, '시간은 지나는 한 점이 현재이고, 그 현재는 바로 과거가 된다'고 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간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민족의 시원인 바이칼호의 알흔섬을 방문하고 받은 영감을 흑연을 이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 알흔섬 민족의 시원인 바이칼호의 알흔섬을 방문하고 받은 영감을 흑연을 이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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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흑연을 이용하여 바이칼 호수의 '알흔섬'을 그린 작품에서는 바탕을 까맣게 하고 흑연을 칠해서 빛이 반사되는 효과 표현하기, '진여'와 '썰물(고향바다)' 등의 작품은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했다고 하며 까망 속에 있는 물의 침묵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시원지와 고향 등 민족과 자신의 근본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이런 자양한 주제와 머리카락 등을 이용하여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민족, 역사 등에 대하여 관심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대할 수 있어, 황재형이란 화백을 처음 만나던 때를 떠올리게 된다.

머리카락은 인간 최초이자 최후의 못이다

황재형 화백은 이번 작품전 도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 인간의 머리에 자라나는 십만 개의 머리카락이 한날한시에 태어나는 경우가 없고 동시에 죽어가는 법 없이 독립되어 제 기능을 다 합니다. 불평등이 체화된 인간의 몸에서. 내게 머리카락이 귀중한 것은 머리카락은 개개인의 삶이 기록되는 필름과 같기 때문입니다. 나의 그림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익명의 개인에게 보내는 뜨거운 연서입니다. 내 실핏줄이 터지는 까닭입니다. 무심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몇 올이 섬찟한 것은 그것의 생명력 때문이 아니라 나의 배타성 때문입니다. 머리카락은 인간 최초이자 최후의 옷입니다."

내가 환경과생명을지키는교사모임 활동을 하면서 태백시와 태백산으로 생태와 역사 탐방을 갔다가 황 화백 이야기를 듣고 그가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여 찾으면서부터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전교조 운동을 열심히 하던 나는 광부 화가가 동네 벽화도 그리고 탄광촌 사람들 이야기를 그림에 표현하기도 하면서 지역의 노동 운동과 지역 사회 운동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여 관심을 갖게 되어서 이다.

교사가 되기 위하여 교대 2년을 다니면서 몇 학점 받기 위하여 수강했던 것이 전부인 나는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아보질 못하고 있었다. 그런던 차에 참교육을 한다고 설치던 나로서는 이분의 미술교육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다시 면으로 발전하는 이런 관계를 미술 작품에 가져와 미술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점, 선, 면'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거나 구도를 잡는 등 특별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여 배워보아야 하겠다는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나와 가깝게 지내서 서울에서 전교조 활동을 하는 초등교사들 8멍과 함께 10박을 하면서 미술공부를 하는 기회를 만든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미술의 대중화를 위한 운동에도 앞장서는 황재형 화백

1996년이던가? 정확하게 연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연간이다. 태백의 황재형 미술연구소로 찾아가서 아침 8시부터 시작하여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열흘 간 강행군을 하면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그러던 중간 어느날은 그 프로그램에 참가한 교사들의 성의가 부족하다고 보였는지, 어느날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 몇 잔씩 먹이더니 "다들 짐싸고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맞자 대표격인 나는 "죄송합니다. 뭐가 잘못 되었으면 고쳐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정하여 눌러앉아 미술공부를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이 과정을 통하여 그림의 구도가 어떤 것이며, '점, 선, 면'을 이용하여 작품을 완성하면,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였는지에 대하여 자신의 작품을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 설명을 하고, 그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더 보완할 점은 없는가 등 이런 과정을 통하여 미술 작품 표현에 대한 근본을 배우고 익혔던 것이다. 30년 세월이 가까워 오지만 미술 표현의 근본과 기초를 배웠던 것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그러면서도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무건리'라는 곳(고려가 패망하자 이곳으로 숨어들어 살았던 고려충신들이 숨어살았다는 은거지)을 탐방하거나 황지못, 폭설이 내린 태백 시내를 누비던 일, 귀틀집 주막 겸 식당에서 관솔주를 마시고, 친환경 음식을 먹었던 기억 등 독특한 문화체험을 했던 일들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이런 미술교육 체험을 하고 나서 당시 전교조 초등위원장이었던 나는 이것을 전교조의 참교육 차원에서 널리 보급하고자 소식지 등을 통하여 전국의 많은 전교조 초등교사들에게 알렸다. 그런 도움을 통하여 시작은 하였지만 나중에는 이곳을 거쳐간 교사들의 널리 알려져 이 미술교육프로그램은 해마다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지속이 되고 있다.

기초 과정과 심화과정까지 프로그램이 발전을 하면서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교사들 중에는 아예 이곳 태백시로 근무를 지원하고 와서 작품 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교사들도 있을 정도이다. 나는 이 미술교육프로그램 1기 참가자로서 가끔 초청받아서 당시의 경험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배운 것을 학교로 가지고 와서 초등학교 학생들한테 그 방법으로 가르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어디 미술전이 열린다 하여 가면 비구상 작품일지라도 최소한 내 나름대로 작품의 구도며, 미적 표현에 대하여 감상하려는 작은 힘은 생겼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요즘은 교사들들 뿐만 아니라 현직 판사에서부터 일반인들까지 그 참가 범위가 넓어졌다고 한다. 태백미술연구소의 미술교육 프로그램은 이제는 태백에서만 하지를 않고 광주 등 지방을 찾아가서 열기도 하고, 작년에 황재형 화백이 제1회 박수근 미술상을 받으면서 이번 겨울에는 강원도 양구에서 미술 캠프를 열기로 하였다고 한다

황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통한 예술의 세계를 열어가는 노력 뿐만 아니라, 미술교육의 대중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면에서 참 존경해 마지 않는다. 당시 태백의 미술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장정희씨 등 황재형 화백의 제자들 5명이 우리 교사들과 달라붙어서 지도를 해 주었는데, 여전히 그들은 지금도 그곳 황 화백의 품을 벗어나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장정희, 김은아, 하은영, 박신자, 김지희 선생님 등 이번 전시회에서 그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그렇지만 아직도 결혼도 안 하고 예술활동에 푹 빠져 산다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럽기도 하였다.

'십만 개의 머리카락' 작품전 열림식을 끝내고 뒷풀이 행사를 함께 하고 있는 '태백미술연구소' 교사들과 그 과정 이수자들
▲ 태백미술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십만 개의 머리카락' 작품전 열림식을 끝내고 뒷풀이 행사를 함께 하고 있는 '태백미술연구소' 교사들과 그 과정 이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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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전을 축하해 주기 위하여 전국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특히 이곳 미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수자들 중에는 전라도 광주에서까지 올라와서 새벽녘까지 축하 뒷풀이 자리를 이어갔다. 나도 그 자리에 함께 끼어 어울려, 막걸리에 노래도 한 순배씩 돌리면서 옛정을 나누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이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역시 흥이 있어야 창의성도 발현되는가 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그 동안 출간했던 시집 두 권을 들고가 황 화백에게 드렸더니 기어이 그 중에 두어 편을 나를 포함하여 참석자들에게 낭송을 시키기도 하여 늦은 밤까지 우의를 다질 수 있었다. 역시 예술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이런 걸쭉한 재미를 더할 수 있어 늘 흥겹다. 그래서 더욱 이런 자리에 오라하면 거절을 못하는 것 같다.   

이번 작품전은 내년 1월 28일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서울시 교육청에서 '인생 이모작센터'에서 '찾아가는 학교 숲' 교육을 함께 하는 교사들과 함께 인근에 있는 '백사실 계곡' 탐방과 함께 다시 한 번 찾아서 여유있게 감상할 기회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태그:#황재형 작품전, #가나아트센터, #심반개의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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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초등위원장,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을 거쳐 현재 초록교육연대 공돋대표를 9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혁신학교인 서울신은초등학교에서 교사, 어린이, 학부모 초록동아리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초록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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