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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10월 10일,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독일 국민들
 1989년 10월 10일,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독일 국민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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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독일 총선에서 득표율 2위를 기록한 사회민주당은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소수정당인 자유민주당이 사민당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보수 기독민주당과의 대연정 속에 번번이 좌절했던 사민당의 신동방정책이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득표율 1위가 모든 권력을 가지는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신동방정책은 20여 년간 지속됐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은 시민들의 손에 무너졌고, 1990년 독일은 통일을 이뤘다.

작은 걸음의 정치, 그 위대한 역설

신동방정책은 동독과 소련 및 동구권과의 교류와 경제 협력으로 분단을 관리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점진적으로 이뤄내겠다는 정책이다. 철저히 동독을 고립시키겠다는 할슈타인 원칙과 힘으로 압박해 통일을 이뤄낸다는 독일의 기존 통일정책을 넘어섰다.

신동방정책은 처음에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분단을 평화롭게 관리하겠다는 신동방정책이 동독 정권 유지를 도와 분단을 고착시킬 것이며, 공산권과의 교류는 서독을 위기에 빠뜨릴 것이라는 적색 공포증(Red Complex)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증명은 달랐다. 아데나워 이후 보수 기민당은 통일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대동독 정책은 제재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진영간 안보딜레마는 고조되고, 분단은 고착됐다. 반면, 신동방정책이 시행되며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전환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분단 관리가 분단 고착으로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을 이뤄가며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이뤄낸 것이었다. 단기적 안목을 벗어나 역사를 통찰한 작은 걸음 정치(Der kleine Schritt)의 위대한 역설이다.

신동방정책의 지속과 독일 정치 구조

신동방정책은 진보 사민당 연정에서 본격적으로 출발했지만, 독일 통일은 보수 기민당의 연정시기에 이뤄졌다. 신동방정책 초기 격렬하게 반대했던 기민당은 1982년 정권교체 당시 신동방정책 기조를 수용했다. 동서 유럽 간의 협력이 긴밀해지고, 자유 왕래가 가능해지면서 동독에 자유의 바람이 불고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수 정부에서 인정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일의 정치권력이 구성되는 구조다. 그 기반에 선거제도가 있다.

1969년 독일 9대 총선 결과. 득표율 1위는 기민/기사(CDU/CSU) 연합이다. 연방하원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한국의 정치구조였다면, 신동방정책은 시행되지도 못한 채 폐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는 독일은 달랐다. 득표율 1위 기민/기사 연합이 단독 과반을 넘지 못해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연정구성의 키를 쥔 소수정당 자민당(FDP)은 기민/기사 연합이 아니라 득표율 2위의 사민당(SPD)과 손을 잡는다. 이로써 사민당 연정이 출범하게 된다.

 West German federal election, 1969
 West German federal election, 1969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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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방정책 주요 지점에는 교류와 경제협력이 있다. 자연스럽게 동방무역에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기존 기민당 정권에서는 철저한 대동독 고립정책을 시행하며 동방무역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기민당의 이와 같은 부분이 자유시장 확대라는 자민당의 이해관계와 엇갈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민당 정책에 자민당이 협력하며 공조했다.

훗날 기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으나, 자민당의 겐셔(Hans-Dietrich Genscher)는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신동방정책의 중요한 협조자이자 추진자가 다름아닌 자민당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례대표제 국가의 내각 구성 특징이 사민당 집권을 이뤄 정책을 시작할 수 있게 했고, 정당 간 정책공조 속에서 정책지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남북 관계를 위해 필요한 건 정치개혁

대한민국은 정책 지속성 보장받지 못한다. 대한민국에도 신동방정책과 같은 정책이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펼친 햇볕정책이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되며 무참히 폐기됐다. 한국에서 대북정책은 이념 문제로 치부된다. 적색 공포증은 아직도 유효한 정치 문법이며, 선거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는 정치구조 속에서, 한반도의 역사와 미래를 통찰하는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은 단기적인 정치 실익 앞에 부정당하고 만다.

햇볕정책이 중단되지 않고 꾸준히 이어졌다면, 한반도의 모습이 지금과 같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분명히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한반도 내의 대립과 갈등은 이미 한계선을 넘어서고 있다. 한반도와 독일은 상황이 다르고, 대화로 한반도 문제를 풀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대화로 풀어야만 한다. 대화로 해결하려는 과정 속, 실천적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한다.

결국 정치다. 모든 문제의 실마리는 정치 속에 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대립하는 정치구조를 바꿔 민심 그대로 정치권력을 만들어야만 한다. 독일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그 방안이다. 정치는 소통이 되고, 변화가 되고, 실제가 되어야 한다.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가 파국에 이르기 전에 정치개혁을 이뤄내야 하는 이유다.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게 낫고, 특히 거창한 말만 떠들썩하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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