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겨울의 초입이다. 화려했던 계절은 호사스러운 의상을 훌훌 벗어버리고 청빈하고 가난한 아내의 모습이 되었다. 앙상한 나무 위 홀로 대롱거리는 나뭇잎이 애처러움을 더하고 스산한 바람이 구멍 뚫린 가슴을 서늘하게 통과한다. 차곡차곡 쌓여있던 욕심의 창고를 털어내고 마음을 정갈하게 비워야 하는 계절이 온 것이다.

문득 바라본 창밖에는 어느 사이 소리없는 함박눈이 너울너울 내리고 있다. 하얀 담요를 푹 뒤집어 쓰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온 마을과 풍경들. 적막감이 그득하다. 하얗고 텅빈 적막감. 이는 탁발 수도승의 밥그릇(발우)처럼 절제되고 고결한 무소유의 삶인 것만 같다. 화려하고 풍족한 과소유의 삶을 지향하게 된 우리의 모습이 오히려 초라해 보임은 무슨 까닭일까.

괜시리 번잡스러운 마음을 다독이려 옷장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알록달록 요란한 옷들이 터질 듯 빼곡하다. 세월의 쌓인 두께 만큼이나 벗어놓은 허물 역시 더께더께 하다. 유행이 지나 손이 가지 않는 옷, 사고 나니 화려함이 과하여 입어지지 않는 옷들이 한 자리씩 점령하고 있다. 한바탕 정리하여 낸 지가 얼마 전인데... 자고 나면 무성해지는 덩굴마냥 저절로 번식하는 옷들을 나는 또 다시 가지치기 한다. 한보따리의 필요치 않은 욕심이 솎아졌다.

물자가 귀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의 우리는 무엇이건 편리함과 풍족함이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극도의 빈곤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한동안 행복했고 건강했지만 기름기가 끼기 시작한 행복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점점 과체중과 고지혈증을 유발하게 되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아니 시선을 쫓아다니는 현란한 광고판과 소비를 부추기는 소음들, 마음을 다스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살기엔 대단한 의지와 절제가 필요한 사회다.

'술 권하는 사회'(현진건 작)가 아닌 '과소비 권하는 사회'인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나만의 확고한 소비철학과 가치관을 두르고 적당한 절제로 삶을 단촐하고 정갈하게 꾸려갈 것인가. 뒤돌아보면 어느새 잡초처럼 무성하고 억세게 자라있는 욕심들. 정기적인 벌초가 필요한 이유이다.

무수히 매달려 있던 현란한 잎사귀들을 한바탕 부르르 털어내고 조용히 겨울 나무가 되어보고 싶다. 벗어서 초라하기보다는 걷어내는 성숙함이 아름다운 겨울나무. 소박하고 간결한 삶의 푯대는 욕심으로 인한 많은 갈등과 문제들을 해결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는 난로가 될 것이라 믿는다. 겨울의 끝없는 순환 속 무언의 가르침에 귀머거리로 살아온 세월이 반백년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조금 귀가 트여 참 다행이다.


태그:#겨울 , #무소유, #내려놓음, #청빈한 삶, #절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