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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입시명문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는 저자 진노 마사후미는 <세계사 수업>을 시작하며 '세계사야말로 최강의 성공철학서'라고 단언한다. 역사 속 선인들의 실패를 자신의 인생과 비교하여 성공을 위한 비책으로 삼으라고 권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역사를 배워라'가 아니라, '역사에서 배우라'는 것이다. 일종의 의사체험을 통해 실제로 실패 혹은 성공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저자는 세계사를 자기계발서의 범주에 갖다 놓았다. 그런 면에서 흥미롭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세계사 수업> 진노 마사후미 지음. 김대환 옮김.
 <세계사 수업> 진노 마사후미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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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뿐 아니라 일반 일본인의 역사 인식에도 의심의 눈길을 배제할 수 없는 한국인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세계사 수업>은 역사가 꾸며낸 이야기인지, 관점에 따른 해석의 차이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의견을 전개하면서 중간 중간 일본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은 저자가 일본인이요, 입시학원 강사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여러 면에서 읽기에 불편하다. <세계사 수업>이라고 했지만 일본이야말로 세계사의 중심이요, 모든 모범 사례라고 치켜세우려는 것 같아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적을 섬멸하는 것보다 아군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비결이 된다. 유럽인은 이러한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싸워서 이긴다.' '적을 섬멸시킨다.'는 취지로 전쟁을 반복한 결과, 결국 두 번에 걸친 총력전(세계대전)을 초래하여 자멸하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모두 '전승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현재 옛 영광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쇠락했다." -235쪽

이 정도면 자기모순을 넘어 자아도취라고 해야 한다. 세계대전을 비판한다고 했지만, 조선과 아시아 각국을 침략 수탈하고 전쟁을 일으켰던 전범국 국민이 할 말은 아니다. 게다가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사회를 지향한다는 탈아입구를 주창했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의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열등감도 엿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책 속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에 대한 상찬은 아무리 일본을 통일하고 발전시킨 일본 영웅들에 대한 향수라 해도 꼴사납다. 그들은 조일전쟁(임진왜란)으로 조선의 수많은 양민을 비탄에 빠지게 했던 침략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력으로 패자가 되고, 무력으로 망한 인물로 항우와 나폴레옹을 예로 들며, 오다 노부나가와 비교한다. 노부나가는 일본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통일하려 했으나 순간의 방심으로 부하에게 죽음을 맞이한 일본인들이 최고 다이묘로 치는 인물이다. 나폴레옹은 죽음을 앞두고 반성의 변을 남긴 반면, 항우는 그 책임을 타자에게 떠넘기며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그럼 노부나가는 어느 쪽이었을까?

"반성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말은 단 한마디였다. '부득이했다!였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지 달리 길은 없었다. 그것이 이런 결과가 되었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248쪽

이 부분은 일본인의 전형적인 역사인식 수준을 말해준다. '항상 신념을 갖고 모든 일에 임했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 결과에 반성도 변명도 생기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은 전범국 일본 정부와 다를 바 없다.

침략을 부득이했다고 치부해 버리고, 그것을 신념이었다고 말해 버리니 말이다. 위안부 문제 등에 있어서 '부득이했다.'는 결코 변명이 될 수 없다. 역사에서 배우려면 역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물론 사실 관계만 담고 있는 역사는 없다. 고고학처럼 유물을 통해 역사를 살피는 일도 기록자의 관점이 들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을 서술함에 있어서 이야기를 재구성하다 보면 비록 날조는 아니라 하더라도 왜곡이라는 위험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정한 역사를 모르면 우리는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를 믿어야 한다. 꾸며낸 이야기는 온갖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진노 마사후미는 세계사를 자기계발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며 일본 학생들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한 장치들을 개발했다. 그 장치 중 하나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일본에 가장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국가에 대한 적대감 혹은 열등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가령, '몽골'이라는 정식 국명 대신, 중국인들이 우매하다고 얕잡아보며 불렀던 '몽고'라고 하는 부분이라든가, 마오쩌둥을 머리가 나쁜 사람의 대명사로 취급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진노 마사후미는 "잡목을 꺾으면 산이 무너진다"는 이치를 설명하며, 중국 국가 주석이었던 마오쩌둥은 그런 이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이렇게 혹평한다.

"머리가 나쁜 사람이 어쩌다 조직의 리더가 되면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비참하다." -276쪽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마오쩌둥을 사례로 드는 것이 적절한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비록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다 할지라도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오늘이 있게 한 장본인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마오쩌둥은 머리가 나쁜 사람이었고, 20세기 중반 당시의 중국 인민은 그 때문에 비참한 사람들이라고 확언한다. 정치인이 한 말이라면 중국인들에게 몰매를 맞을 법한 일인데, 학원 강사인 저자는 버젓이 책에서까지 그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해전의 변천을 이야기하면서 전함에서 항공모함 시대로 넘어가는 부분을 서술하는 데 있어서는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까지 엿보인다. 저자는 태평양 전쟁 초기 말레이 해전에서 일본 전투기가 항공모함 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을 서술하며 자긍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와 함께 거대 전함 '야마토'를 건조한 것을 통탄한다. 야마토함이 어떤 전함인가? 태평양 전쟁 개전 직후 취역한 일본 연합함대 주력 기함으로 말레이만 해전과 진주만 공격에 나섰던 일본 해군의 상징이다.

"거함 경쟁에 막을 내린 것이 일본이다. 말레이 해전에서 불침함으로 불리던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제로센(일본 전투기)으로 격침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어떤 불침함도 전투기의 공갹으로 간단하게 침몰한다.'는 것이 증명되어 전함은 시대의 유물이 되고 항공모함의 시대로 넘어간다." -313쪽

이쯤 되면 <세계사 수업>은 제국주의 향수를 드러낸 손자병법 정도라고 할 만하다. 일본판 손자병법 말이다. 하지만 진노 마사후미는 인생은 병법서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간과했다.

이웃 나라 시민이 보기에 불쾌한 사례가 너무 많다. 그렇다 해도 성공한 사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의 실패와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성공에서는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면 이 책에서 일정 부분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노력, 기록을 검토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노력은 독자의 몫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세계사 수업

진노 마사후미 지음, 김대환 옮김, 잇북(Itbook)(2017)


태그:#세계사 , #일본, #전범국, #자기개발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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