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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8일 스즈키 노부유키(鈴木信行)는 자신의 트위터에 "누가 일본에 지니고 오는지 알고 있지 않냐. 일본에 가장 많이 오는 중국인"이다는 글을 달았다. 일본에서 매독 감염자 수가 44년 만에 5000명을 넘었다는 보도를 가리켜 중국인들이 일본에 매독을 퍼트린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2012년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에 '다케시마(竹島·독의 일본 명칭)는 일본 영토'라고 적은 말뚝을 박아 기소된바 있는 극우 인사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황당무계한 주장을 쏟아내는 극우세력들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톨레랑스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에도 세르주 아유브(Serge Ayoub) 같은 극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13년 6월 5일 파리 도심의 프랭탕 백화점 인근에서 좌파 성향의 대학생 클레망 메릭(Clément Méric)이 극우세력인 스킨헤드 4명에 폭행당해 사망한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이 프랑스와 다른 점은 스즈키 노부유키가 현직 정치인으로 도쿄도 가쓰시카(葛飾)구 의원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단체로는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在日特権を許さない市民の会, 재특회)을 들 수 있다. 재특회는 2009년 설립된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시민단체로 1991년 일본에서 시행된 '입관특례법'을 근거로 구 일본 국민이었던 한국인과 조선인 등에게 주어진 '특별영주자격'을 반대하는 단체다. 그러나 재특회는 '특별영주자격'의 반대에만 그치지 않고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집회 등 온갖 극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의 극우는 선거결과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일본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스즈키 노부유키의 당선에도 재특회 등 극우단체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서 극우가 차지하는 인구비율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특회의 회원 수는 약 7000~8000명 정도로 적은 것은 아니나 그들의 영향력에 비하면 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에서 극우세력이 문제 되는 것은 인터넷 활동과 가두시위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일본 전체 여론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치인들 또한 극우세력들의 활동을 묵인 또는 조장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베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 최대의 극우단체인 일본회의(日本会議)의 행사에 참석해 전쟁 가능 국가를 언급하며 "개헌은 역사적 사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아베 총리가 이끄는 일본 자유당 정권은 점차 극우화되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세르주 아유브가 이끄는 백색늑대들(WWK) 조직원들을 방화, 절도, 폭력, 살인 미수, 범죄단체 구성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총리가 나서 극우단체를 해산시켜버렸다.

미국 역시 극우세력이 정치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 중 하나다.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Ku Klux Klan)단은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멕시코 국경지대에서는 극우민족주의 성격의 민병대가 독자적으로 밀입국을 단속하며 밀입국자들을 살해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과 언론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슬람과 남미계 이주민에 대한 혐오 등 극우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고 관련한 범죄도 끊이지 않는 미국도 극우세력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음에도 극우세력이 미국과 일본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활동방식과 그것이 소비되는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극우세력은 대규모 집회와 가두시위, 자신들과 반대되는 의견의 정치인에 대한 항의·민원 등 적극적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일부 언론들이 이들의 주장을 받아써 여론화시키고 정치인들은 다시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으로 활용한다.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은 극우세력의 정치적 활용도가 얼마나 큰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한국 또한 미국과 일본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인 대한애국당 조원진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좌파·독재정권이라 비난하고 국민에 의해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죄라는 주장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설거지는 여자 일", "강성노조 때문에 기업이 해외로 나간다"는 등 여성과 노동자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계속하여 구설수에 휩싸이고 있다. 하지만 조원진과 홍준표 모두 건재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극우발언들은 오히려 정치인들의 지지율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한국의 극우세력도 일본이나 미국과 같이 현실에서의 적극적 활동으로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일부 극우세력들의 문제가 현실 사회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일베 등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넘쳐난다. 이들은 인터넷 활동에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에서까지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들이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던 광화문 광장에서 일베 회원들이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으며 폭식 투쟁을 벌였던 사건은 사이버상의 극우가 인터넷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나온 대표적인 사건이다. 2016년 5월 17일 서초동에 위치한 노래방 화장실에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던 한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된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에 대한 혐오가 현실로 발현된 사건이었다.

이러한 극우적 행위들은 일부 보수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특히 보수 종편 채널들은 극우 보수 인사들을 패널로 초청해 시사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선정적 여론몰이를 하고는 한다. 일례로 TV조선에서는 시사프로그램 앵커가 "오늘의 유머에서 종북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몰아내야죠. 종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머리를 한번 쪼개버리고 싶은데요"라며 매카시즘적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고 <동아일보> 계열의 채널A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전문 시위꾼으로 폄훼하는 과정에서 2003년도 농민 시위와 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 사진을 마치 세월호 유가족들과 경찰이 충동하는 모습인 것처럼 보도했다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각한 문제는 일부 극우세력들의 활동이 한국사회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1일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차별 사유로 '성적 지향'을 규정한 부분을 삭제하는 내용의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공동발의 제안서를 동료 국회의원들에게 발송했다가 시민단체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김 의원은 제안서에서 "현행법상의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사유에 해당하는) 성적 지향이라는 표현은 동성애를 옹호하고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판단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오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법의 '성적 지향' 규정은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유일한 법 규정이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현직 국회의원에 의해 입법시도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지난달 22일에는 자신들을 '예수군단' 소속이라 밝힌 20여 명이 부천시의회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는 일이 발생했다. 그들은 부천시가 추진 중인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가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를 조장하고 이슬람·좌파 사상을 가르친다며 조례안의 폐기를 요구했다. 이들은 이번 달 12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조례의 통과를 무산시키겠다며 아직도 시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극우세력들은 악성 민원과 항의집회 등으로 서울시 인권조례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시도들을 무산시켜온 바 있다. 때문에 부천시 시민단체들은 이번 '청소년 노동인권 조례' 또한 극우세력들의 항의로 좌초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례를 대표발의한 이진연 의원은 "당신의 딸도 동성애 시킬 거냐!"는 등 혐오로 가득 찬 민원전화를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사회 역시 전체 인구 중 극우세력들의 비율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고 거리에 나와 온갖 혐오 발언을 쏟아 붙는다. 몇몇 정치인들은 내용 보다 그들의 영향력에 더 큰 관심을 가진다. 바람직한 입법보다는 당장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극우세력들이 더욱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몇몇 정치인들은 적극적 여론 형성층인 극우 보수세력에 편승해 자신의 정치적 생명력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의 극우세력 이러한 방식으로 정치세력화되어가고 있다. 그들이 정치세력화되는 과정에서 인권은 종북·좌파들의 인자리 창출 사업으로, 동성애는 뿌리 뽑아야 할 질병으로, 여성은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극우, #혐오, #동성애, #아베,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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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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