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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DP 개의날>이라는 만화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군대에서 탈영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군인, '군무이탈체포전담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현실적인 묘사와 독특한 소재 선정으로 인기를 끌었다. 직접 만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헌병에 관한 주제를 다룬 만화가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그 만화를 그린 작가가 사실 전업 작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놀랐다. <아만자>, <DP 개의날>을 그린 작가 김보통 씨는 원래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과 상관없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어느 날 대기업을 퇴사하고 만화를 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째서 자신의 직업을 그만두고 만화를 그리게 된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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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는 만화가 김보통 씨의 에세이다. 매달 확실하게 월급이 입금되지만 매일 아침 고통스럽고 불행했던 회사원의 삶을 그만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은 어째서 자신이 직접 찾아간 길을 포기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말한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 대기업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성장했다. 원래도 잘 살지 않았던 집안이 IMF의 영향으로 타격을 입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살았고, 집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런 환경 속에서 아버지는 대기업에 가야 사람처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마침내 20여 년이 지나 금융위기 와중에도 대기업에 취업하는 쾌거를 이루면서 그 꿈을 이루고야 말았다.

'20여 년 뒤 어느 대기업 면접장에서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냐?" 묻는 면접관의 첫 질문에, 나는 "아버지의 소원입니다"라고 답했다. 상식적으로 면접 자리에서 할 대답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지만, 면접관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도 자녀에게 말했을지 모른다. "대기업에 가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처럼 살 수 있다"라고.' -14P

저자는 대기업에 취업하고 한동안 기쁘게 살아갔다. 사내 연수를 받으면서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교육을 받았다. 처음에는 강사들이 하는 말이 낯간지러웠지만 점점 듣다보니 훌륭한 회사에 들어와서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경험을 한다. 장원급제한 이몽룡이 된 듯 한 기분도 느낀다. 회사 배지가 다른 배지보다 훨씬 멋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신입사원인 저자는 연수가 세뇌교육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하지 않았다. 다같이 사가를 부르고,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의 위대함을 들으면서 내심 신입사원으로서의 자신이 최고라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던 회사를 퇴사하고 만다.

아버지도 원했고, 자신도 향한 길이었지만 주변의 만류를 뒤로 하고 퇴사했다. 사고를 당하거나 징계를 당해서는 아니었다. 특별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자는 퇴사를 만류하는 선배에게 그냥 도망치는 것이라고 답한다. 잘 될지 안 될지 상관없다고 말이다.

저자가 회사를 그만둔 것은 너무 고통스러워서였다. 그는 새벽까지 죽도록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제멋대로인 이기주의적인 사람이 되는 회사 문화가 싫었다. 40대 초반에 임원을 단 상무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인생을 상사를 위해 포기하는 사람이라며 술을 잘 마시라고 사람들에게 권했다. 사람들은 시간, 돈, 건강을 비롯한 자신의 모든 것을 회사를 위해 갈아 넣고 있었지만 저자는 그런 문화가 익숙해지지 않았다.

암에 걸려 몸이 위중한데도 회사에서 일하는 상사, 잇몸이 무너졌는데도 알코올 의존증 때문에 어금니가 사라진 상사의 말을 들으면서 저자는 점점 회사 생활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된다. 군대와 다름없는 조직 문화, 족장회의나 다름없는 야만적인 직장에서 그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팀장은 40대 후반의 남성으로 허리디스크 때문에 한 시간 이상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늘 엉거주춤 일어난 채 업무를 보았다. 게다가 잇몸이 무너져 임플란트를 심어야 하나 치료 기간 동안 금주해야 한다는 의사에 말에 치료를 미루고 미뤄 어금니의 상당수를 잃을 정도로 심한 알코올의존증을 겪고 있었는데, 대낮에도 술을 먹지 않으면 손이 떨리는 바람에 이 말을 할 때 역시 반쯤 풀린 눈에 손은 덜덜 떨고 있었다.' -53P

특별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저자의 퇴사 이후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도서관을 만들어서 운영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했다. 오키나와를 향한 여행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었지만 그냥 평범한 여행에 불과했다. 바라던 퇴사를 이뤘지만 특별히 다가오는 환상적인 일은 없었다. 책은 담담하게 퇴사 후의 막막함을 말한다.

저자는 막막함 속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할 일을 찾았다. 브라우니를 구워서 먹고, 트위터에서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그려주며 지냈다. 특별히 작가로 데뷔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생각한 것도 아니었고, 어떤 의미가 있어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람들의 그림을 그려주고 다른 사람의 요청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 나이도 제법 있고, 프로가 될 실력도 없는데 그림만 그려도 되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 그림에 대한 관심덕분에 선생님에게 인정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에 취업해서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에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두고 대기업에 취업했다. 회사를 나오고 자신의 옛 특기를 되살린 것이다. 계속해서 특별한 목적 없이 그림을 그리다가 <송곳>으로 유명한 만화가 최규석 작가의 권유로 웹툰 작가로 데뷔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퇴사 이후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말한다. 해외여행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은 것도 아니었고, 벌어놓은 돈이 점점 줄어드는 모습을 보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죽을 힘을 다해 경쟁을 하는 삶에서 이탈한 자신의 모습을 원망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방금 전에 퇴근했는데 다시 출근해야 하는, 인생을 다 바쳐야 하는 삶에서 빠져 나왔기 때문일까.

워낙 요즈음의 경기가 좋지 않기에,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선 공감되지 않는 에세이일 수도 있다. 퇴사 이후, 우주적 고독 속에 던져졌다고 말하는 묘사와 그림은 퇴사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불안을 줄 수 있다. 다만 한계에 몰린 사람이 찾은, 작은 안정이 많은 것을 바꾸어 주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불행 속에서 도망친 사람이 쓴 담백한 이야기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김보통 지음, 문학동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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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에디터만 아는 TMI'를 연재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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