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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전국 최고의 어획고를 올렸던 욕지항 모습으로 천혜의 양항이다.
 한 때 전국 최고의 어획고를 올렸던 욕지항 모습으로 천혜의 양항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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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에서 뱃길로 32㎞ 거리에 있는 욕지도 여행에 나섰다. 욕지도를 한문으로 풀어보면 '하고자 할 욕(欲)' '알 지(知)'의 뜻을 지닌 섬으로 '알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한 섬'이라는 뜻이다.

면적 12.74㎢로 우리나라에서 48번째 크기의 섬인 욕지도는 부산과 제주 항로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삼도수군통제영 당시 욕지도에 입도허가가 난 것으로 기록된 섬은 1970년대까지 남해안의 어업 전진기지로 파시를 이뤘으며 생활권은 부산이었다.

연중 파시가 열렸다는 욕지도... 근대 어촌의 발상지

코리아나호를 타고 욕지도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섬을 일주하면서 돌아보니 욕지항은 천혜의 양항이다. 지도를 펴놓고 욕지도를 살펴보니 날다람쥐가 하늘을 날다 한쪽으로 꼬리를 말아 생긴 공간에 항구가 있다.

"항구 모습이 한반도를 닮았다"는 욕지항은 태평양에서 태풍이 몰려와도 별로 피해가 없을 것 같다. 마을 뒷산 169m 호랑바위(虎岩)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산마루에 우뚝 솟아 있다. 산줄기 아래 두 마을을 감싸고 있는 동미산은 동촌 마을과 경계를 이루며 곰비산 줄기에서 시작된 커다란 방파제가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주고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 일출을 기다리다가 멋진 풍경을 잡았다.
 출렁다리를 건너 일출을 기다리다가 멋진 풍경을 잡았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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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동료 모습
 일출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동료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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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인근에서는 고기가 많이 잡혔다. 겨울에서 봄을 잇는 계절에는 도다리, 감성돔, 참돔, 가자미, 가오리, 쑤기미, 낭태. 여름 가을에는 고등어, 전갱이, 삼치, 갈치가 주로 잡혔다. 계절과 관계없이 온 바다에는 멸치 떼가 장관을 이뤄 철마다 전국 어선들이 선단을 이뤄 이곳으로 몰려왔다. 잡은 물고기가 너무 많아 다 처리하지 못해 바다에 버리기도 했다. 

어업이 성시를 이루자 경제도 활성화됐다. 좌부랑개 어업조합에서 동촌까지 400m 해안가에서는 나무를 팔기도 하고 삶은 고구마, 호박, 남새 등 물물교환이 이뤄지기도 했다.  

천혜의 양항과 엄청난 어획량. 마산, 통영, 부산 같은 도시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은 욕지도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화된 어촌으로 변모시켰다. 욕지도에서는 연중 파시가 열렸다.

파시를 통해 교환된 물고기는 수집상에게 넘기기도 하고 간독에 염장했다. 일제 패망 후에도 계속되던 파시는 고등어가 고갈되고 1970년대 삼치 파시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근대어촌 발상지 좌부랑개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골목에 들어가니 제명수( 86세) 할머니가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간독이 있는디"라는 말을 해 "간독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필자를 데리고 갔다.

골목길 옆에는 '간독'이란 팻말과 안내문이 씌어있고 할머니가 실물모형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간독'은 사방 3m쯤 되는 넓이에 어른 키만 한 깊이다. 수건을 둘러쓴  아주머니들이 고등어에 소금을 뿌려 염장을 하고 있었다.

고등어를 염장하는 간독 모형
 고등어를 염장하는 간독 모형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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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고기 사가지고 오시면 내가 인부 데리고 고등어 염장을 했어요. 바람불면 배가 못 나가니까 간고등어를 만들고 바람 자면 안동 같은 육지로 나가 팔았어요. 이게 자반고등어의 시작이었죠." 

일제강점기 시절 욕지바다는 고등어 주산지였다. 여름철이면 고등어잡이 배들이 항구에 겹겹이 정박했다. 잡은 고등어는 얼음 냉장해 일본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염장을 했다.  

어업조합과 중매인, 마을 주민들도 크고 작은 간독을 갖고 있었다. 간고등어는 큰 화물선이 들어와 장정들을 동원해 담불(배의 화물칸)에 실었다. 주로 마산항을 통해 열차로 국내 각지와 중국, 만주, 북경, 대련 등지로 팔려나갔다.

근대 어촌 발상지인 '좌부랑개' 모습으로 다방뿐만 아니라 술집이 40여개나 됐다고 하니 얼마나 돈이 많은 섬인지 짐작이 간다.
 근대 어촌 발상지인 '좌부랑개' 모습으로 다방뿐만 아니라 술집이 40여개나 됐다고 하니 얼마나 돈이 많은 섬인지 짐작이 간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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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관 모습
 명월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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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10년대부터 욕지도는 '좌부랑개(座富浪浦)'가 중심이 돼 어촌근대화를 이뤘다. 많은 어선과 어부들이 욕지항으로 몰려오자 어부들을 상대로 술집과 식당, 여관, 다방이 생겨났다.

한 집에 4~5명씩 접대 직원을 둔 술집 40여 개가 줄지어 성업이었다. 부산옥, 마산관, 고성집, 청도집, 포항집, 낙원옥 등 술집뿐만 아니라 명월관이라는 일본선술집도 있었다.

욕지도는 태평양에 서식하던 고래가 봄철이면 동해안으로, 겨울철이면 다시 태평양으로 회유하는 길목이라 방어진 구룡포의 고래잡이배가 많은 고래를 잡기도 했다. 참고래, 밍크고래, 상괭이 등으로 집채만 한 고래를 잡아 항안에서 해체할 때는 좋은 구경거리가 돼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한때 전국최고의 어획량을 올렸던 욕지어업조합

욕지도의 대표적 비경인 삼여 모습
 욕지도의 대표적 비경인 삼여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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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비렁길 출렁다리 모습. 이 다리를 건너 태평양을 바라보면 갯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수평선 바다가 심신을 정화한다.
 욕지도 비렁길 출렁다리 모습. 이 다리를 건너 태평양을 바라보면 갯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수평선 바다가 심신을 정화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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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욕지 사람 전내화, 김상천, 일본인 소네히로요시, 야마구찌 등이 협의해 설립한 동향리 어업조합은 새벽부터 점심때까지 매일 경매해 전국최고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1928년에는 위판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청사를 이전하고 직원 30여 명을 채용하기도 했다. 섬 주위를 돌다 보면 '좌부랑개'라는 이름과 '자부랑개'라는 안내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 궁금해 면사무소에 들러 담당자에게 "어느 것이 맞는가?"를 묻자 "두 가지 다 사용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선창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주민에게 "어느 것이 맞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설득력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제 아버지가 101세로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살았고 옛날 수협조합장을 지냈어요. 아마 욕지도 역사를 가장 잘 아실 거예요. 연세가 많으셔서 인터뷰하기는 곤란하지만 부친한테 들은 얘기를 전해드릴게요.

'자부랑개'가 맞아요. '스스로 자(自)' ,'재산이 많다는 부(富)', '파도 랑(浪)' , '물가,  바닷가를 의미하는 (浦)', 포구를 일명 '개'라고 부르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노력해 부자가 된 포구'라는 의미죠."

비탈진 황토밭에서 풍부한 일조량과 해풍을 머금어 그 어느 지역보다 당도가 높다는 욕지도 고구마를 말리고 있는 현장
 비탈진 황토밭에서 풍부한 일조량과 해풍을 머금어 그 어느 지역보다 당도가 높다는 욕지도 고구마를 말리고 있는 현장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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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감 고등어는 욕지도에서만 생산한다고 한다. 둥근 원통형 양식장에서 고등어를 키우고 있는 현장 모습.
 횟감 고등어는 욕지도에서만 생산한다고 한다. 둥근 원통형 양식장에서 고등어를 키우고 있는 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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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옥한 토질에서 추운 겨울철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 당도가 높고 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저장성도 좋다는 욕지감귤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일행들
 비옥한 토질에서 추운 겨울철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 당도가 높고 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저장성도 좋다는 욕지감귤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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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하면 자랑할 게 두 가지가 더 있다. 고구마와 고등어다. 욕지도 고구마는 비탈진 황토밭에서 풍부한 일조량과 해풍을 머금고 자라 전국 어떤 지역 고구마보다 당도가 높다. 해상에는 욕지도에서만 생산한다는 횟감 고등어 양식장이 둥그렇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잘 나갈 때는 주민 1만 3천 명이 살았다는 욕지도에 지금은 간신히 2천 명 정도만 산다. 통영을 향해 떠나는 배에서 욕지도를 보며 인생무상을 느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욕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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