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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고문
▲ 학교 공고문 학교 공고문
ⓒ 풀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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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학과 단톡방에 공고문이 올라왔다. 학교 농장에서 일할 인턴 장학생을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공고문의 우대 조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인턴장학생모집> 우대조건 : 00대 소속 학부생(남자우대)'

농부라는 꿈을 안고 입학한 학교에서 마주한 암담한 벽. 처음엔 믿을 수 없어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취업한 친구들에게 취업시장에서의 여성의 위치, 여성이기 때문에 받았던 부당한 질문들에 대해 익히 전해들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런 공고를 볼 줄은 몰랐다.

나는 담당자에게 시정하라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남자 우대라는 조건을 건 이유를 묻는 메일을 보냈고, 곧 답장이 왔다. 담당자는 고온의 비닐하우스에서 작업을 해야 하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답했다.

나는 학교의 학생들과 이 문제를 공유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사례와 방침을 찾아 정리했다. 이후 성 차별적인 공고문에 대한 항의와 시정 요구를 담은 글을 학교 커뮤니티에 올렸다.

[인턴장학생 모집의 특정 성별 우대는 명백한 성차별입니다.
이 이미지는 00대학교 인턴장학생 모집공고문 입니다.
우대 조건에 '00대 부속 학부생(남자 우대)'라고 명시 되어 있습니다.
이 조건은 여자 학우들의 지원을 주저하게 만들고 결국 남자를 뽑겠다는 의미로 보여집니다.
강한 신체적 노동이 필요하다면 업무에 적합한 지원자를 뽑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공고 단계에서부터 남자 우대라는 조건을 건 것은 명백한 여성 차별입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사회에서 학교는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학교 내에서 부터 성차별적인 방식으로 여자 학부생들을 인턴 장학생 모집에서 배제시키고 있습니다.
특정 성별 우대는 비장애인 우대, 특정 학교 우대처럼 부당하고 차별적 조건입니다.

저는 00대라는 학력으로 차별 받는 것에 반대하기도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는 것 또한 반대합니다.
학력 차별, 성차별 등 취업에서 겪는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 드립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 2조 "차별이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성별, 혼인, 가족 안에서의 지위,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을 다르게 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고용노동부의 모집채용시성차별판단기준(2013년)에 따르면 00대학교의 인턴장학생 모집 공고문은
"모집·채용상 차별로 보는 경우
□ 모집․채용에서 여성 배제하는 경우
② 모집광고에는 남녀 모두를 뽑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내부방침에 의해 채용시에는 여성을 배제하는 경우
③ 남성 환영, 남성 적합 직종 등으로 표시하는 경우
(위반) 굴삭기 운전(남성 환영) → (개선) 굴삭기 운전"

에 해당하며 명백한 성차별 조건이므로 이는 시정되어야 합니다.]

감격스럽게도 많은 학우들이 이 문제에 공감하고 지지해주었다. 그리고 곧 담당자가 사과하고 시정을 약속한다는 댓글을 달아주었다. 나 혼자만의 불편함, 예민함으로 끝나버릴 것 같았던 일이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시정된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게시물에는 나의 불편함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수백 개의 댓글을 달고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00대생이지만 차별은 당연해. **대생과 00대생이 있다면 나라도 **대생을 뽑을 거야"
"저 글을 올린 애는 분명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애일 거야"
"쟤가 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그냥 쟤 시켜줘요"
"남자우대는 당연한 거 아니야? 힘쓰는 일이 많겠지"
"배제? 여자를 배제했다고? 어디에도 여자가 지원할 수 없다고 안 써져있는데! 여자도 지원하면 될 거 아니야"
"여자 우대라고 써있는 알바 공고를 보고 따진 적 있냐? 유난 떤다"

그들의 비난은 아침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를 들어 설명하면 학생들도 그 공고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나긴 논쟁 끝에 문제점을 인식하고 입장을 바꾸는 학우도 있었고, 계속해서 날 비난하는 학우도 있었다.

"너는 남자를 혐오하는 여자야"
"공고문 올린 분이 우리 학교 교직원이라면 공무원일 텐데, 너 때문에 공무원 한 명 잘리게 생겼다. 어떻게 책임 질래?"

한국의 법은 이미 고용 평등과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육과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는 건 성차별이다. 또한, 현재 농촌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에 여성들이 많다. 학교 공고문의 '남자우대'라는 조건이 현실적이지 않은 이유다. 남성이 근력이 더 좋다고 할지라도, 여성에게 정당하고 객관적인 평가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제한해선 안 된다. 각 업무에 맞는 평가 기준에 따라 채용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특정 성별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모두 하나의 성별이 되어야 할까? 아니다. 그런 사회는 있을 수도 없고 유지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창비·오마이뉴스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공모 기사입니다. (공모 관련 링크 : https://goo.gl/9xo4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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