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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위험 아파트, 대피하는 주민들 규모 5.4 지진 발생 이틀째인 16일 건물 붕괴 위험으로 출입이 통제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에서 주민들이 이불과 옷가지 등 짐을 챙겨 대피하고 있다. ⓒ 남소연
16일 오전 10시 11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섬 1.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아이고, 힘드시지요 어머님. 건강 잘 챙기십시오."
섬 2.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눈물까지 흘리시는데... 정부와 빠른 대책을..."
섬 3.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짐 정리도 못하셨구나... 힘내십시오, 다들."

컵라면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누워있는 어르신들, 바나나와 초코파이로 허기를 채우는 아이들, 쉴새 없이 구호물품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 800여 피해 주민들 사이로 3군데의 섬이 생겼다.

지난 15일 규모 5.4의 지진 피해로 마련된 흥해읍 긴급 대피소에서다. 총 6열로 된 대형 스티로폼 매트리스 중 유승민 대표는 왼쪽 첫째 열에서 무릎을 꿇어가며 악수를 하고 있었고, 우원식 원내대표와 안철수 대표는 각각 다섯째, 여섯째 열에서 아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각 당을 대표해 이곳을 방문한 정치인들 주위로만 당직자와 취재진이 몰렸고, 그 '섬'을 향해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아이고 웬 한꺼번에. 정신이 하나도 읎네."

동시에 생긴 세 군데 섬과 떨어진 주민들로부터는 간간이 야유 소리가 들렸다. 오전 10시 21분, 매트리스 한 열을 사이에 두고 좌담을 벌이던 우 원내대표와 안 대표는 우연히 동선이 겹치면서 어색한 조우를 하기도 했다.

포항주민 위로하는 우원식 원내대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6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주민대피소를 찾아 지진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 남소연
포항주민 위로하는 안철수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6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주민대피소를 찾아 지진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 남소연
우 원내 대표 : "수고하십니다. 몇시 차 타고 오셨어요."
안 대표 : "아, 수고하십니다. 저는 비행기타고..."

두 사람은 "국회에서 함께 협력해 대책을 세우자"는 짧은 약속을 한 뒤 1분도 채 안돼 헤어졌다. 그리고 오전 10시 27분, 여섯째 열 끄트머리 쪽 체육관 입구 초입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등장.

"날씨도 추워지는데 고생들 많으십니다."

흥해실내체육관에 난데없는 '사국지'가 완성됐다.

'나홀로' 마이크, 오늘도 튄 홍준표 대표
포항 주민대피소에서 마이크 잡은 홍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전 포항시 흥해읍 홍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를 찾아 지진피해로 대피해 있는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홍 대표는 체육관에 도착하자마자 주민들 손을 잡고 "(서울) 올라가서 바로 대책 세우겠다", "재건축할 때 내진 설계를 하도록 하겠다"라며 위로했다. 연일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날을 세워오던 그도 이날은 "많이 놀라셨을 텐데 정부를 믿고 잘 좀 추스르시라", "자연재해니 원망하진 마시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평범한 위로 방문이 이어지나 싶던 오전 10시 30분, 갑자기.

"마이크 좀."

홍 대표는 체육관 바닥만 훑던 다른 당 대표들과는 달리 앞쪽에 배치된 연단으로 직행해 마이크를 찾았다. 이곳 일정을 대부분 마무리한 다른 대표들은 이때를 전후로 하나 둘 체육관을 떠나고 있었다. 홍 대표의 연설은 4분여간 지속됐다.

"어제 많이 놀랐을 겁니다. 저도 어제 당사에 있는데 갑자기 당사 건물이 흔들리기에 지진이 났나, 아니면 전쟁이 났나 했어요. 포항에서 강도가 얼마나 셌으면, 서울 여의도 당사가 흔들릴 정도였으니까."

그는 피해 주민들에게 "국회에 올라가 정부에서 이곳을 특별재난지역으로 바로 선포할 수 있도록 하고 지진 피해대책도 조속히 시행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하여튼 재난에는 여야가 없다"면서 "저희도 (정부를) 지원하는 데 앞장서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홍 대표의 마이크 연설이 끝나자 일부 주민들로부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날 홍 대표는 지난 7월 청주 수해지역 방문시 입길에 올랐던 '황제 장화 의전' 논란을 염두에 둔 듯 조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이날 한 임산부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 단 한 차례 신발을 벗고 신었는데, 그 과정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것. 홍 대표는 방문을 끝낸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은 신발 안 신었지. 장화 안 신었지"라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10시 47분, 그는 검은 색 차량을 타고 대피소를 빠져나가면서 '사국지'는 일단락됐다.

'사국지'가 끝난 뒤, 그 후
주민대피소 찾은 유승민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16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주민대피소를 찾아 지진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 남소연
4당의 대표들이 떠나간 후 체육관에는 일상 같지 않은 일상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던 '섬'은 사라졌고, 없어진 반려견을 찾는다거나 '떡은 하나씩만 나눠주시라'는 등의 안내 방송이 다시금 귀를 쩌렁 쩌렁 울리며 이어졌다. 가끔씩 음향기기에서 나오는 커다란 소음을 지진으로 착각한 주민들은 "어후!" 하고 함께 탄식을 지르기도 했다. 그들에게 지진의 여파는 아직 생생했다.

연거푸 방문한 정치인들에 대한 주민들 반응들도 엇갈렸다. "멀리서 와주시니 고맙죠"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다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정치인들을 죽 지켜봤다는 장아무개씨는 "다같이 구경났다고 온, 무슨 원숭이 같던데요"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솔직히 저렇게 온다고 여기 누워있는 사람들 중에 신경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라고 반문하며 "사진 찍히려고, 그걸 또 뉴스로 찍어간다고 남들 자는 데를 막 밟고 지나가고, 이런 건 좀 아니잖아요"라고 꼬집기도 했다.

실질적인 대책이 먼저라는 목소리도 많았다. 밤새 이어진 여진으로 한숨도 못 잤다는 김아무개씨는 "지진 당해보셨어요? 집에 들어가기 무섭다는 게 무슨 기분인 줄 아시겠어요?"라며 "우리는 작년 경주에 이어 두 번째잖아요. 진짜 죽을 것 같아요. 빨리 집에 좀 들어갈 수 있게 대책부터 먼저 나와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무너진 한동대 외벽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포항 한동대 건물 외벽이 무너져 떨어진 벽돌이 나뒹굴고 있다. 기상청은 이번 포항지진의 여진이 수개월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 남소연
그는 또 "저런 게 정치인들이 할 일이긴 하죠"라면서도 "하지만 진짜 고통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가 아니라 다 자기들 위해서 하는 말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사건이 날 때마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정치인들이 정말 보기 흉한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앞서 홍 대표와 함께 사진을 찍은 임산부 김아무개씨도 "(사진 촬영이) 불편하진 않았다"고 했지만 남편 임아무개씨는 "왜 안 불편하겠어요. 그냥 눈요기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출산을 일주일 앞뒀다는 부부는 이어 "물론 방문도 좋지만 임산부나 영유아를 위한 피해대책은 너무 미비하다. 체육관 안에 공기가 임산부에겐 너무 차고 먼지도 많다"면서 "정치인들이 좀 더 구체적인 피해대책을 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뷰를 막 마치려던 그때, 옆에 있던 한 피해 주민이 초코파이를 건네며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그래도 정치인들에게 기대한다고 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리가 절박하니까 정치인들 말을 믿어야죠, 뭐. 우리 집 재건축이고 뭐고 시급한 건 우리가 당장 생활을 해야 되잖아요. 애들 학교도 보내야 되고 하는데 붕괴 위험 있다고 가스도 끊기고 물도 끊기고 전기도 끊기고 아파트 출입구도 끊겼으니... 우리가 절박하니까 정치인들 하신 말씀 믿어야죠."

그들은 아직 여기에 남아있다.
포항 지진피해 입은 초등학교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초등학교의 건물 외벽이 무너져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 드러나있다. 이번 지진은 지난해 9월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에 이어 국내에서 관측이 시작된 이래 두 번째로 강한 규모다. ⓒ 남소연
태그:#포항, #지진, #홍준표, #우원식,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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