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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세기 무렵부터 4세기 중반까지 천년 가까이 고대 서양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던 서로마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후, 지중해에 산재하던 여러 문화권은 어떻게 됐을까? 세계 역사, 특히 로마 역사에 관심이 많던 나로서는 그게 항상 궁금했다. 거대한 제국, 강력한 중앙 집권과 분권을 동시에 사용하던 로마의 통제력이 사라진 후의 지중해 문화권은 그 공백을 어떤 방식으로 메꿨을까? 그 해답 중의 하나를 오늘 소개할 아말피라는 도시에서 얻을 수 있다.

아말피 전경, 한때는 지중해를 호령하던 메인 도시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
 아말피 전경, 한때는 지중해를 호령하던 메인 도시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
ⓒ 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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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피는 아말피 코스트 (Amalfi Coast)의 중심 도시이다.
 아말피는 아말피 코스트 (Amalfi Coast)의 중심 도시이다.
ⓒ 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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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피라는 도시는 우리가 흔히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라고 알려진, 나폴리로부터 남동쪽으로 약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사실 아말피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테마 중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드라이브 코스 1 순위'로 아말피 코스트 라인 (Amalfi Coastline)이 손꼽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소렌토에서 시작해서 포지타노와 아말피를 지나 살레르노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말하는데 그중 아말피가 중심 도시이다. 한계령이나 미시령 정도의 난이도는 초급 정도로 여겨질 정도의 급커브 코스와 이탈리안 특유의 거침없는 난폭 운전 그리고 거짓말 살짝 보태서 마주 보는 두 차량이 면도날 하나 차이로 비켜 가야 하는 최상급 난이도의 이 도로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 만하지만 오늘은 그냥 아말피만 얘기하자.

아말피는 나폴리에서 그리 멀지 않다.
 아말피는 나폴리에서 그리 멀지 않다.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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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중반 이후 지중해 지역은 여러 세력들의 주도권 싸움으로 살벌하기 없었다. 특히 로마 제국이라는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하던 주체가 야만족들의 대침공으로 인해 신기루처럼 사라진 후, 각 지방자치단체나 유력자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역사적 과도기에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 세력은 해적들이었다. 북아프리카와 그리스 섬들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던 해적들은 지중해 곳곳을 누비면서 거침없이 사람들을 납치하고 물건을 약탈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보듯 배 한 두 척으로 지나가는 배를 약탈하는 게 아니라 기본 수십 채의 해적선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도시를 공격할 지경에 이른다.

이에 무역은 위축되고 사람들은 방어를 위해 산꼭대기에 성을 쌓고 탑을 세우고 한껏 움츠리게 된다. 그런 과도기적 상황이 짧게는 수십 년간 길게는 백여 년이 흐른 후 점차 자체 방위력을 갖춘 소규모 마을이나 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말피이다.

특히 도시의 위치를 보면 용케 이런 곳에 자리를 잡았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평지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이 해안선에 바짝 다가선 산들과 벼랑 사이 계곡 아슬아슬한 공간에 도시를 형성했다. 그러니 당연히 이곳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바다로 나가 무역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지중해 섬들로부터 소금, 이탈리아 내륙으로부터는 노예와 목재를 받아 이집트나 시리아의 밀, 골드 그리고 동방의 실크 등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무역을 이어나갔다. 8~9세기의 일이다. 이 무렵 아말피와 같이 바다에서 살아남는 길을 찾는 도시들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제노바, 피사, 베네치아이다. 이렇게 4대 도시가 활발히 무역을 통해 활로를 열어가면서 지중해 해양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중 맏형의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아말피다. 그 후 이 도시는 비잔틴 제국과 시리아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을 통해 세력을 더욱 확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9세기에서 12세기까지 공격적으로 세력을 키워나가던 아말피는 다른 세 곳의 해양 도시들에 비해 뻗어 나갈 수 있는 배후 영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점차 다른 도시들과의 세력 다툼에서 밀리기 시작, 위세를 잃어갔고 마침 시작된 십자군 전쟁에서 다른 도시들이 이런저런 역할로 막대한 이윤을 얻은 것과는 달리 아말피는 시대에 뒤처지면서 완전히 경쟁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 후 결정적 한방은 1343년 대형 지진에 도시가 3/4이 파괴되면서 당시 7만 명 정도 거주하던 아말피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하고 역사의 주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워낙 아름다운 해안 도로와 천예 절경 그리고 다른 관광지들과는 달리 숨은 보석처럼 알려질 듯 말 듯한 한가로운 풍광 등이 유럽 상류층에 소개되면서 20세기 초반에는 휴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자! 이제 기본 역사를 알았으니 도시를 탐험해 보자"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거창한 역사에 비해 도시 규모는 작다. 작아도 너무 작다. 베네치아나 피사, 제노바가 아직도 이탈리아의 중소 도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아말피는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에 가깝다. 선착장 혹은 마을을 관통하는 해안가 도로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면 웬만한 구경거리를 다하고 돌아오는 데까지 서너 시간이면 족하다. 이곳저곳에 들려 군것질도 하고 카페에 앉아 노닥거려도 하루면 족하다. 중세 지중해를 호령하던 해양 도시의 면모를 도대체 찾아보기 힘들다.

아말피를 배를 타고 접근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풍광, 그 유명한 아말피 코스트 라인 (Amalfi Coastline)이다.
 아말피를 배를 타고 접근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풍광, 그 유명한 아말피 코스트 라인 (Amalfi Coastline)이다.
ⓒ 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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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광이 50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다.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광이 50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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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몇 곳을 둘러본다면 제일 먼저 가봐야 할 곳은 세인트 앤드루 성당이다. 마을의 중심이자 중세 아말피의 흔적을 그나마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건축물로 아말피 관광의 시작점이다. 성당은 선착장에서 약 10분 정도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만나게 된다. 두오모 광장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비탈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성당은 이탈리아 다른 도시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성당들과는 외관이 사뭇 다르다. 건축의 어느 한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바로크 스타일 같다가도 로마네스크적인 면도 있고 고딕과 비잔틴 양식까지 뒤섞여 있다. 여러 차례 여러 세기에 걸쳐 복구와 재건이 이뤄진 탓이라 한다.

성당 옆에는 이슬람 사원의 종탑 같아 보이는 10세기에 지어졌다는 바실리카도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면 쇠락한 마을의 성당치곤 훌륭하게 보존된 벽화와 조각상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이곳에는 예수의 12제자 중의 한 명이었던 앤드루 성인의 유해가 보존돼 있어 그 보존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앤드루 성인의 유해는 4차 십자군 전쟁 당시 예루살렘으로부터 운반되어 왔다. 성인의 유해를 보존하고 간직하기 위해 거대한 청동 조각상도 세웠는데 그 정교함이 대단하다.

중세 건축 양식을 다 엿볼 수 있는 세인트 앤드루 성당은 아말피 No 1 관광 명소이다.
 중세 건축 양식을 다 엿볼 수 있는 세인트 앤드루 성당은 아말피 No 1 관광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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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수제자이자 동명이인이었던 또 다른 미켈란젤로가 아말피의 주문을 받아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 운반했다.
 미켈란젤로의 수제자이자 동명이인이었던 또 다른 미켈란젤로가 아말피의 주문을 받아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 운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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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보고 나왔다면 이제 기본은 했다. 굳이 어디를 다시 찾아가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눈길 가는 대로 걸으면서 구경을 하는 게 제대로 아말피를 구경하는 방법이 된다. 좁은 계곡 틈바구니에 마을이 형성되다 보니 건물은 작은 공간과 구획으로 나눠지고 알뜰살뜰 이용된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공간은 카페가 되고 상점의 좌판이 널리고 분수대가 설치되고 아기자기한 장식품들로 꾸며진다. 사람들이 걷는 길 위로 집들이 서고 빨래들이 널린다. 관광지이지만 관광지 같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간신히 차량 한 대가 지나갈만한 이 길이 그래도 아말피에선 메인 도로 중 하나다.
 간신히 차량 한 대가 지나갈만한 이 길이 그래도 아말피에선 메인 도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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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좁고 높게 건축할 수밖에 없는 아말피 건물들의 모습.
 벼랑 끝에 좁고 높게 건축할 수밖에 없는 아말피 건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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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도로를 따라 정처 없이 걸어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주변의 상점들은 사라져 가고 어디선가 우렁찬 물소리가 들려온다. 산에서 급경사를 타고 흘러 내려온 풍부한 수량의 물길은 물과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제지 공장들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되어 중세 시대 이래 이곳에선 많은 제지 공장들이 생겨났었다고 한다.

한때 최고의 전성기일 때는 20여 곳에 이를 정도로 많았던 제지 공장들도 이젠 다 폐쇄되고 단 한 곳만이 남아 관광객들을 위한 볼거리로 남아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하루에 두 번, 가이드 안내에 따라 12세기부터 명맥을 이어 오는 정통 방식의 제지술을 볼 수 있다. 만드는 방식은 우리나라 한지 방식과 별다를 것 없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종이의 재질이 되는 건 나무껍질이 아닌  패브릭 (Fabric, 직물)을 갈아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직도 바티칸에서는 이곳에서 만들어 낸 종이를 사용해야만 공식적인 문서로 인정을 한다고 한다.

제지 공장은 근 900여 년 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제지 공장은 근 900여 년 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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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생산된 종이는 저런 문장을 찍어 아말피만의 특산품임을 증명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종이는 저런 문장을 찍어 아말피만의 특산품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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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마을의 골목골목을 돌아보며 중세 분위기를 느껴 보는 것이 좋다. 햇빛 좋은 지중해 기후의 특성 탓에 아말피 지방에선 레몬 농사가 잘 이뤄지는데 그 레몬 특산품으로 만든 레몬 주가 일품이니 한 번쯤 맛보는 것도 괜찮다. 아니면 해산물이 잔뜩 들어 간 파스타나 이탈리안들이 즐겨 먹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앞에 놓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해 보는 것도 이곳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된다.

아말피의 특산품인 레몬으로 만든 레몬주.
 아말피의 특산품인 레몬으로 만든 레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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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특유의 로컬 정육점 내부
 이탈리아 특유의 로컬 정육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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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나절 온몸으로 아말피를 즐기다 떠나기 위해 배에 올라서자 700여 년의 장대한 역사를 가졌던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망시킨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장군이 불타는 카르타고를 보면서 뇌까렸다는 호메로스 서사시에 나오는 트로이군 총사령관 헥토르의 말이 떠오른다. 아마도 한때 지중해 전역을 두 눈 아래 두고 동양과 서양을 잇는 가교의 선두 주자로서의 자존심을 한껏 세우던 도시.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허무하게 쇠락한 모습에서 어느 누구라도 흥망성쇠는 피할 수 없다는 진리를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떠오른 것 아니었을까? 

"언젠간 트로이도 프리아모스 왕과 그를 따르는 전사들과 함께 멸망하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daro424 중복 기재된 글입니다.



태그:#지중해 해양 도시 , #이탈리아 남부 여행, #이탈리아 아말피 , #아말피 코스트 (AMALFI CO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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