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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챌린지'라는 팀 게임이 있다. 스파게티 면 스무 가닥, 1m 길이의 테이프, 1m 길이의 실을 이용해 임의의 구조물을 만들고 맨 꼭대기에 마시멜로를 놓는 게임이다. 18분 이내에 가장 높은 구조물을 만드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아무리 높이 쌓아도 마시멜로를 떨어뜨리면 실패다.

단합을 위한 기업의 외부 위탁 교육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게임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 정신을 일깨우는 용도다. 나도 개인적으로 워크숍에서 몇 번 참여해봤지만, 팀원과 리더의 방향성이 극명하게 나뉘는 게임이다.

<일잘 팀장은 경영부터 배운다>, 저자 여현준, 메디치미디어, 2017.08.25, 344페이지
 <일잘 팀장은 경영부터 배운다>, 저자 여현준, 메디치미디어, 2017.08.25, 34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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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팀의 유형은 보통 두 부류다. 처음부터 잘 계획한 후 구조물을 만드는 팀과 일단 생각 없이 만들어 나가면서 그때그때 대응을 하는 팀이다. 물론 속도는 당연히 두 번째 팀이 월등하다. 상대편이 계획을 짤 동안, 이미 자신들은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시작한 팀은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되면 난관에 봉착한다. 부실한 기초로 인해 구조물이 비틀거리니, 원래의 목표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오직 균형과의 사투만을 벌인다. 마침내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계속해서 보수할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미국의 유명한 작가 톰 우젝(Tom Wujec)은 강연 때마다 '마시멜로 챌린지'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기록했다. 곽숙철의 <펌핑 크리에이티브>에서도 이 실험에 대해 언급한다.

그 내용을 보면, 그는 4년간 약 70회 게임을 치렀는데 건축학도와 공학도, 기업 CEO와 수행비서, 유치원생, 변호사, MBA 학생으로 이루어진 6개 팀을 구성했다. 준비물을 똑같이 나눠주고 똑같은 조건에서 어느 팀이 정해진 시간 안에 가장 높은 탑을 쌓는지 게임을 진행한 것이다. 과연 어느 팀이 1등을 했을까?

리더십이 뛰어난 CEO들? 안타깝게도 CEO는 2위였다. CEO 그룹은 평균 그룹과 비슷한 50㎝ 정도를 기록했다. MBA 학생들은 그 반 토막인 25㎝를 기록했다. 변호사 그룹의 기록은 40㎝였다. 최고 기록은 세운 기록은 놀랍게도 유치원생들이었다. 유치원생들은 평균 70㎝ 정도의 구조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유치원생들이 성인들보다 더 높은 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까. 우선, 유치원생들은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지 않았다. 성인 그룹들은 각자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주장하며 주도권 쟁탈전부터 치렀다. 다수가 하나의 주장에 공감하기 시작하면 그제야 그 의견에 따라 구조물을 세워나갔다. 아이들은 주도권이랄 게 없었다. 각자 자기 생각에 따라 중구난방으로 구조물을 세워나갔다.

속도 면에서 유리했다지만 어떻게 유치원생들이 가장 높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걸까? 성인들은 구조물을 세우는 마지막 단계에 마시멜로를 얹었다. 그와 반대로 아이들은 스파게티에 마시멜로를 꽂아두고 그 아래로 구조물을 세워나갔다. 마시멜로를 먼저 꽂는 방법은 의외로 큰 효과를 발휘했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일에만 열중하면서도 구조물의 균형이 어긋날 경우 실시간으로 쉽게 알아챘다.

기업의 구성원들이 일하는 방식은 마시멜로 챌린지의 유치원생들을 꼭 빼닮았다. 대다수가 큰 그림을 모른 채 자기 일에만 집중한다. 그런데도 기업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관리자 직급들이 큰 그림을 조망하며 균형을 잡기 때문이다. 때때로 관리자 직급들, 더 심할 경우 CEO가 큰 그림을 놓치고 마시멜로 챌린지의 유치원생들처럼 일할 경우도 있다. 그런 기업은 곧 망한다.

'대개는 기업이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는 시점에 큰 그림을 놓치는 일들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이런 위험을 낮출 방법은 없을까? 구성원 모두가 사업의 큰 그림을 실시간으로 쉽게 인지하는 방법 같은 것 말이다.'(본문 172~173쪽)

그렇다. 팀장의 역할은 게임의 규칙을 분석하고 승리할 당신만의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성원들과 공유하기만 하면 된다. 이 방법은 마치 마시멜로를 먼저 꽂아두고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팀장은 경영을 실무로 경험하는 첫 번째 직책이다. 그러므로 큰 그림을 조망하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팀원 모두가 불필요한 고생을 피한다.

물론 팀장이 팀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큰 어려움이다. 아무리 복잡한 길이라도 길을 아는 친구가 있으면 곤란을 겪을 일이 없다. 친구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팀도 마찬가지다. 남이 간 길을 모방해 따라간다면 의외로 쉽다. 그래서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복제품을 만들면서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의견을 교환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혁신하려면 팀 조직은 수평적이어야 한다. 팀장이 팀의 결과물을 상부에서 확인받고 팀원의 일정을 관리하는 일이 대부분이어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아무리 CEO가 된들 유치원생들의 혁신을 절대 따를 수 없다. 남이 성공한 모델을 그대로 흉내내려면 중세시대 길드의 장인 같은 팀장으로 남아도 좋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며 팀을 이끌어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리더가 되고 싶다면 균형부터 잡아야 한다.

게임기획자와 스타트업 대표를 거쳐 지금은 디자인기업을 운영하는 여현준씨는 그동안 카카오 브런치에 올렸던 글들을 선별하고 재정비하여 책으로 엮었다. <일잘 팀장은 경영부터 배운다>는 온라인에서 사업가들, 마케터들, 스타트업 종사자들 사이에 수없이 읽히고 공유되었던 이야기 중에서 팀장으로 갖추어야 할 경영지식과 자질을 소개하고 있다.

매우 깊이 있는 경영지식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례를 통해 '어쩌다 팀장'이 '일잘 팀장(일 잘하는 팀장을 줄인 신조어)'으로 바뀌기 위해 가져야 할 보편적인 지식을 언급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이해가 잘 안 되는 지식이 대다수다. 특별한 전문지식이 아니라서 오히려 쉽게 읽힌다.

성장을 추구하는 팀장들에게 실전 경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팀장의 역할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다. 모르는 것은 아는 체 말라.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라. 아는 사람을 존중하라. 부하를 존중하라. 위임하는 방법을 배우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재를 자처하며 빙의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팀장이라면 본인이 속한 조직의 '브랜드'를 먼저 이해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팀장이라면 브랜드를 업무의 틀을 넘어 사업의 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팀을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인증이라는 개념이 있다. 업로드한 사진이 퍼오거나 조작한 것이 아니라 직접 찍은 것임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일간베스트'는 이름의 첫 모음 'ㅇ'과 'ㅂ'을 본뜬 손 모양을 만들어서 인증한다. 일명 '일베 손 인증'이다. 2013년 일베 회원 중 하나에서 시작된 이 인증방식은 순식간에 확산하여 일베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브랜드 제스처가 되었다.

일베의 정체성은 지역주의, 반노무현, 여성 혐오로 요약된다. 일베 회원은 이 정체성에 공감하므로 '일베 손 인증'을 통해 소속감을 충족하고 소속에 대해 자부심을 표출한다. 그들이 인증할 때마다 일베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반복되며 전파된다. 나치식 경례와 같은 메커니즘인 것이다.

'나치나 일베의 정치성은 하등 유익할 것이 없지만, 그것들이 제스처로 기억되고 전파되는 방식은 배울 구석이 있다. 당신의 브랜드 스토리나 콘텐츠 혹은 팬덤 속에 브랜드 제스처를 만들어보자. 브랜드 제스처는 고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스스로 확산되는 간결한 브랜드 메시지가 되어줄 것이다.'(본문 258~259쪽)

이제,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위해 팀장인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정리해보겠다. 팀의 고유한 브랜드 제스처를 만들어라. 권위를 최대한 낮춰라. 직원의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면, 임원도 이름으로 부르라. 반바지를 허용할 게 아니라 생각이 다른 하급자를 허용하라. '일잘 팀장'이 이끄는 팀은 회식 없이도 잘 돌아간다. 당근과 채찍은 잊고, 열정보다는 능력을 보여달라.

우리 부서의 퇴근 시간은 오로지 '님' 하기에 달렸다.


일잘 팀장은 경영부터 배운다

여현준 지음, 메디치미디어(2017)


태그:#일잘팀장, #일잘 팀장은 경영부터 배운다, #여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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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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