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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소읍여행의 중심지, 우정읍 조암시장.
 경기도 화성시 소읍여행의 중심지, 우정읍 조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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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전통재래시장. 전국의 대도시와 소도시, 작은 읍내 할 것 없이 벌어지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런 까닭에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닷새장까지 품고 있는 시장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여행을 하다 동네에서 오일장이 열린다고 하면 꼭 가보게 된다. 닷새마다 열리는 장터라서 날짜가 맞으면 행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경기도 화성은 수도권 도시 가운데 정겨운 오일장터가 5곳이나 남아 있는 곳이다. 도농복합도시라는 별칭이 걸맞은 도시다. 조암장(4․9일장), 남양장(1․6일장), 사강장(2․7일장), 발안장(5․10일장), 마도장(5․10일장) 등이 바로 그곳.

조암시장(朝岩市場)을 품고 있는 화성시 우정읍은 정겨운 소읍여행하기 좋은 동네다. 수도권에서 옛 시골장터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보기 드문 오일장과 소박한 장터를 닮은 버스터미널, 다채로운 밥집들, 주민들이 자랑스레 소개하는 재밌는 이름의 쌍봉산을 품고 있다.  

조암 오일장은 매 4일과 9일(4, 9, 14, 19, 24, 29일)에 열리는 오래된 장터다. 1920년대에 생겨나 80년이 훌쩍 넘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조암시장은 상설시장으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400여 점포가 자리하고 있는 꽤 큰 규모의 중형시장이다. 화성시 우정읍 소읍여행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옛 친구를 만난 듯 애틋한 기분이 든, 조암시외버스터미널

소박한 소읍 버스터미널 정취가 남아있는 조암시외버스터미널.
 소박한 소읍 버스터미널 정취가 남아있는 조암시외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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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엔 장꾼으로 변신하는 농사꾼 아저씨가 타고 온 경운기.
 장날엔 장꾼으로 변신하는 농사꾼 아저씨가 타고 온 경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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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장터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버스터미널에서 가깝다는 점이다. 인근 지역 주민들이 시장을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한 것. 조암시장도 조암시외버스터미널 곁에 자리하고 있다.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서신버스터미널처럼 명칭은 남아있어도 터미널 풍경이 사라진 곳이 많지만, 조암버스터미널은 작고 소박한 옛 터미널 모습이 남아있어 무척 반가웠다.

손으로 쓴 버스 노선표가 벽에 붙어 있는가 하면, 흔한 TV 한 대 없는 작고 허름한 버스터미널. 잊고 살았던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강원도 정선의 버스터미널, 제주도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 풍경이 떠올라서였기도 했지만, 동네에서 가까워 종종 찾아가곤 했던 서울 은평구 서부시외버스터미널 때문이었다. 겨울엔 연탄이 들어간 따뜻한 난롯불이 대합실을 데워주던 터미널은 몇 년 전 경찰서가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우정읍 동네에 볼일이 있어 온 사람들, 길러온 채소나 곡물을 팔기 위해 온 주민들, 닷새장 구경을 나온 어르신들이 작은 터미널을 꽉 채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 무척 정다웠다. 소읍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이런 버스터미널이다. 터미널 다방, 터미널 방앗간, 터미널 국숫집 등은 건물은 깔끔하게 단장을 했지만 '터미널'이 들어간 간판은 바꾸지 않았다.

도농복합도시 화성에 잘 어울리게 조암 오일장엔 옛 시골장터의 정경과 풍경이 남아 있어 더욱 좋았다. 조암시장 간판이 높다랗게 세워져 있는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웬 경운기가 털털거리며 내 곁을 지나갔다. 배추와 무를 한가득 실은 경운기 운전사는 인근 밭에서 온 농부 아저씨.

미리 찜해 놓았던 시장통 한가운데 자리를 잡더니 배추와 무를 주민들에게 직판하고 있는 능숙한 장꾼으로 변신한다. 몇 푼 돈 보다는 사람이 그리워 채소, 호박 몇 덩이 가지고 나와 장터 구석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할머니들도 빼놓을 수 없는 오일장 지킴이다. 
뼈가 까마귀처럼 검다는 귀한 닭, 오골계.
 뼈가 까마귀처럼 검다는 귀한 닭, 오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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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기드문 클래식 짐자전거.
 요즘 보기드문 클래식 짐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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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즐겨 타는 내게 오일장터에 구경나온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타고 온 자전거는 단연 눈길을 끄는 존재다. 내가 사는 도시의 자전거 가게에선 만나기 힘든 자전거여서다. 주로 짐을 싣고 달리기 좋게 설계한 자전거지만, 안장에 멋스러운 가죽을 덧대고 체인을 위한 보호대, 클래식한 전조등도 달려있다. 알루미늄 재질이 아닌 튼실한 쇠로 만든 몸체며 기어가 없는 구동계는 옛 짐자전거의 모습 그대로다.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은 사라졌지만, 오일장터에 아직 남아있는 가축장의 주인공은 닭이다. 닭장이 작아 발에 끈을 묶고 나온 장대한 수탉, 우렁찬 목소리를 자랑하는 닭, 오골계라 불리는 귀한 닭 등은 평소 보기 힘들어서 그런지 반갑기만 했다.

오래된 장터일수록 현장에서 바로 닭을 잡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닭발, 똥집, 알 등으로 해체해 판매한다. 인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닭, 고마우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드는 가축이다. 오일장터는 사람의 마음속에 측은지심을 심어주기도 하는 곳이다.

오일장날의 특징 중 하나는 좌판 가득 펼쳐진 다양한 먹을거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암시장에서 파는 호떡은 좀 특별하다. 기름을 두른 팬에 구워 파는 일반적인 호떡과 달리 붕어빵처럼 호떡 전용 쇠통에서 구워낸다. 대란, 특대란 등 두세 가지 크기의 달걀을 파는 가게에선 실제 알 크기를 볼 수 있게 날달걀을 접시에 올려놓았다. 중국 동포들이 즐겨 먹는다는 절인 오리 알과 메추리 알도 함께 있다.   

붕어빵처럼 쇠통에서 구워내는 조암시장 호떡.
 붕어빵처럼 쇠통에서 구워내는 조암시장 호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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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효능이 써있어 웃음짓게 하는 조청.
 온갖 효능이 써있어 웃음짓게 하는 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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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약도라지, 인진쑥으로 만든 조청은 감기에서 지방간, 정력 강화까지 세상 좋은 효능은 다 있어 웃음 짓게 했다. 보기만 해도 구수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보리차와 옥수수 차를 쳐다보자니 보리차를 구입하던 50대의 아주머니가 보리차 끓이는 법과 함께 효능까지 알려주셨다. 소변이 시원하게 콸콸 나온단다.

상인보다 손님이 먼저 나서서 상품을 홍보하고 설명해주기도 하는 곳이 전통시장이다. 아주머니 따라 구입한 보리차를 요즘 집에서 끓여 마시고 있다. 찻물에서 나는 깊고 구수한 풍미는 마트에서 파는 보리차 티백과 비교할 게 아니었다.

조암시장통엔 기사식당, 국수집, 백반집, 중국 동포와 서남아시아에서 온 이주민을 위한 다문화식당 등 작은 식당들이 많아 좋다. 베트남에서 온 주인장이 하는 원조 쌀국수집도 있고, 이슬람 교인들을 위한 '할랄음식' 레스토랑은 어떤 음식이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다.

중국동포는 물론 과거 구소련 지역에 이주해 살았던 동포인 고려인을 위한 식당도 있다. 이런 다국적 식당은 화성이나 인천, 수원, 안산 등 수도권 도시에서 중국집만큼 흔히 볼 수 있는 곳이 됐다. 이주한 분이 직접 만들어 나라마다 민족마다 고유한 맛이 담긴 음식이다 보니 머지않아 차세대 '먹방' 후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중국동포들이 즐겨 먹는다는 오리알.
 중국동포들이 즐겨 먹는다는 오리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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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인들을 위한 '할랄' 음식점.
 이슬람교인들을 위한 '할랄'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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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점심밥을 먹을까 기대에 찬 마음으로 밥집을 둘러봤다. 보통은 동네사정을 잘 아는 시장상인이나 이발관 아저씨, 지나가는 파출소 경찰관에게 묻곤 하는데 조암시장 주변은 음식점이 많아 간판을 구경삼아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조암읍사무소, 조암우체국, 여러 금융기관 등이 가까이에 있어서 그렇지 싶다. 

'삽다리'란 정다운 이름을 한 식당에 들어갔다. 백반부터 동태찌개까지 모든 음식 값이 6천원이다. 예상대로 식당 안주인은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분으로 충남 예산군 삽교역 인근 동네가 고향이란다. 작년 봄, 삽교천 자전거여행을 하다 들렀던 동네 풍경이며 삽교읍과 삽교리 마을을 이어주는 작은 삽다리(삽교)가 떠올라 왠지 친근한 마음이 들었다.

장날이라 그런지 초로의 남편과 아들까지 나와 시장 상인들에게 주문받은 음식을 배달하느라 무척 바쁘다. 가게 주인 포함 여성 두 분이 전화로 밀려드는 음식 주문을 받아 빠른 시간 안에 척척 해내는 모습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매일 다르게 나오는 국으로 구수한 배춧국이 나오는 가정식백반을 먹었는데 흑미를 섞어 넣은 찰진 밥이며 반찬 솜씨가 남달랐다. 인근 쌍봉산을 다녀온 후 저녁 시간에 또 찾아갔다.

형, 동생 봉우리가 완만하게 이어져 있는 쌍봉산

상쾌한 기운으로 가득한 나무 숲길이 이어져 있는 쌍봉산.
 상쾌한 기운으로 가득한 나무 숲길이 이어져 있는 쌍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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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동네식당에서 밥을 먹다 보면 운 좋게 좋은 여행 정보도 얻게 된다. 삽다리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알게 된 곳이 이름도 독특한 쌍봉산(雙峯山)이다.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편안하고 울창한 숲길이 있는 동네 뒷산이다. 걸어보니 나 같은 외지인에게 자랑스레 알려줄 만했다.

조암시장길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조암우체국을 지나면 쌍봉산 근린공원이 나온다. 공원으로 들어서면 자연스레 쌍봉산으로 들어서는 산행길이 이어진다. 산꼭대기로 가는 등산길과 산허리를 돌아 한 바퀴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나 있어 쌍봉산을 즐기기 더욱 좋다.

쌍봉산은 재미있게도 두 개의 봉우리가 서로 이웃해 솟아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큰 봉우리와 작은 봉우리가 형제처럼 다정하게 숲길로 이어져 있다. 고려시대 쌍봉산이 있던 조암리는 쌍부현이라는 지명이어서 쌍봉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전한다.

1794년(정조 18)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엔 쌍부산(雙阜山)이라고 나온다(阜는 언덕). 우정읍에 있으며 서남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기록이 있어 쌍봉산의 본래 이름은 쌍부산이라 할 수 있다고. 또한 예전에는 이 산에 잣나무가 많아 백산(栢山)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이 산의 정상을 망월봉이라고 했다.

상록수가 많아 늦가을에도 푸르름이 가득한 쌍봉산.
 상록수가 많아 늦가을에도 푸르름이 가득한 쌍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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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로 둘러쌓여 운치있는 쌍봉산 꼭대기의 정자.
 나무들로 둘러쌓여 운치있는 쌍봉산 꼭대기의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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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00m가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형세가 좋아 오래전엔 봉화를 피우던 봉수대가 산꼭대기에 있었다고 한다. 예전부터 풍수지리에서 명당자리라고 평가해 많은 사람이 이 산 일대에 묘를 쓰려는 일이 빈번했단다. 실제로 산행을 하다 보면 산자락에 잘 가꾼 묘들이 들어서 있다.

일제 강점기 3.1 독립만세운동 때는 인근 마을 주민들이 이 산에 올라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당시 화성 주민들은 수촌리 개죽산 등성이를 밝힌 횃불을 신호로 조암리 쌍봉산, 석포리 무봉산, 어은리 남산 등 장안·우정면 일대의 산에 '대한독립만세' 횃불이 이어져가며 산상횃불시위를 했다. 화성지역은 넓은 곡창지대와 서해와 면한 어촌에서 나오는 수산물이 풍부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일제의 수탈이 심했다. 이는 1919년 일제에 대항해 공격적이고 과감한 만세운동을 펼치는 계기가 됐다.

쌍봉산 정산으로 가는 산행길은 나무데크 산책로를 통해 올라갈 수 있다. 숲속 산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목책길이다. 산행로 입구에 늙지 않는 문이라는 의미의 '不老門(불로문)' 글자가 여행자를 맞이했다. 나무들로 울창하고 새소리 가득한 산이라 자주 오면 정말 늙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산이다. 나무데크길 옆으로 소나무, 단풍나무 등이 구불구불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오르막 산행로가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동생 봉우리로 가는 숲길에서 마주친, 고마운 리기다소나무.
 동생 봉우리로 가는 숲길에서 마주친, 고마운 리기다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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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숲속 오솔길, 쌍봉산 둘레길.
 걷기 좋은 숲속 오솔길, 쌍봉산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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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 오르면 편안하게 쉬어가기 좋은 정자가 산행객을 맞는다. 간단한 운동기구들도 마련돼 있어 동네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심어 놓은 듯, 크고 장대한 나무들이 정자를 운치 있게 둘러싸고 있다. 그 중 나이를 먹을수록 나무껍질이 벗겨지면서 붉은색을 띠는 적송(赤松)은 절로 눈길을 끄는 특별한 나무다. 정자에서 물을 마시며 쉬다가 동생 봉우리로 이어진 산길을 걸었다. 낙엽이 쌓인 흙길이 푹신해서 걷기 좋았다.

쌍봉산엔 다람쥐의 식량이 돼주는 도토리를 낳는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등의 참나무류, 단풍나무, 서어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중 제일 많은 나무는 리기다소나무였다.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로 미국이 고향인 리기다소나무는 척박한 산지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 강한 나무다.

지난 1970년대 전국의 민둥산을 살리기 위해 국가가 주도했던 산림녹화사업 당시 많이 심었다. 연료용이나 땔감용으로 쓰기 위해 나무를 많이 베었고, 한국전쟁 후 더욱 황폐하고 척박해져 버렸던 우리나라의 산. 어떤 나무도 좀처럼 뿌리박고 살아갈 수 없게 된 곳에서 꿋꿋하게 뿌리박고 견디며 이 강산을 푸르게 만든 고마운 나무다.

쌍봉산 허리를 따라 한 바퀴 도는 둘레길도 참 좋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귀여운 다람쥐가 뛰어다니고, 겨울을 준비하는지 딱따구리가 집을 짓기 위해 오래된 나무에 부리로 열심히 구멍을 내는 소리가 스님의 목탁소리처럼 고적하게 들려왔다.

덧붙이는 글 | 교통편 : 서울 전철 사당역 4번 출구 앞 8155번 종점 / 수원역 10번 출구 앞 9801, 9802번 버스 종점
지난 11월 4일에 다녀왔습니다. 제 블로그(sunnyk21.blog.me)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화성여행, #조암시장, #조암오일장, #쌍봉산, #소읍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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