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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아버지로 두었던 유족 김수웅(거창)씨.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아버지로 두었던 유족 김수웅(거창)씨.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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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을 좋아한다. 그런데 지금도 일제 강제징용자와 그 유가족한테는 대한민국도, 대통령도 없다."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를 아버지로 두었던 김수웅(73)씨가 다소 울먹이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김씨는 일제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추진하는 한국노총·민주노총에 대해 "식어가는 유족들한테 빛을 보게 해주었다"며 고맙다고 했다.

김씨는 2일 저녁 경남도교육청 2청사 강당에서 '일제강제동원 노동자상 경남건립추진위'가 연 "일제 강제동원으로 살펴보는 역사청산운동의 현황과 과제 대토론회"에서 유가족 대표로 발언했다.

김씨 아버지는 1944년 일제에 의해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갔다. 그는 유복자로 그해 4월 15일에 태어났고, 아버지는 해방이 되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차디찬 사할린 하늘에서 아버지의 영혼이 맴돌고 계신다. 아버지한테는 아직 국가가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 시절, 유가족들이 사할린에 가서 위령제를 지낸 적이 있는데, 경남에서 저 혼자 갔다. 그 때 아버지라 엄청 크게 부르며 울었다"고 했다.

김씨는 "제 아버지 이야기를 그동안 제 자식들한테는 물론, 주위에도 말하지 않았다"며 "보상이며 일본의 사죄도 좋지만, 아버지는 사할린 어디에 묻혀 계시는지, 뼈 한 조각이라도 품에 안아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국가' 이야기를 했다. 그는 "거기 가니까 산소가 많았다. 러시아와 우리나라가 국가 간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지내면서, 뼈 한 조각이라도 유전자 검사를 했으면 한다"며 "지금 제 심정은, 제가 국적을 바꾸어서라고 사할린에 가서 아버지 뼈 한 조각이라도 가져 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웅씨는 독자로 태어난 뒤, 어렵게 공부해 공무원을 지냈고 정년퇴임해 현재는 거창에서 살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았으면 한다"며 "양대 노총이 있는 한 언젠가는 그 꿈이 해결될 것이라 본다"고 했다.

경남건립추진위는 한국노총 경남본부,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되었고, 내년 5월 1일 창원 한서병원 앞 쌈지공원에 노동자상을 세울 예정이다.

"이 땅을 살아갈 미래 노동자들의 일"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 경남건립추진위원회는 2일 저녁 경남도교육청 2청사 강당에서 "일제 강제동원으로 살펴보는 역사청산운동의 현황과 과제 대토론회"를 열었다.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 경남건립추진위원회는 2일 저녁 경남도교육청 2청사 강당에서 "일제 강제동원으로 살펴보는 역사청산운동의 현황과 과제 대토론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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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에 앞서 경남건립추진위 김영만 상임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우는 일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했던 사업이 피해자 신고를 받는 것이었고, 많은 접수가 있었다"며 "우리의 이런 노력이 진정한 역사청산과 일본의 사죄,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라 말했다.

이정식 한국노총 창원지역위원장은 "한국노총은 이런 일에 익숙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친일역사 청산 부분을 정말 함께 할 것"이라며 "많이 배워서 적극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김재명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은 "이 문제는 우리 한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전체, 그리고 이 땅을 살아갈 미래 노동자들의 일이다"라며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것이고, 나쁜 역사는 제대로 청산되고 다시는 이런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김민철 박사(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는 "2015년 7월 일본의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의 유네스코 등재 결정 당시, 유네스코는 일본정부에 대해 강제노역 사실을 밝히고 보고하도록 했다"며 "그 기한이 올해 말까지다. 일본 정부의 보고서가 나오면 아마도 논란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법리상 강제노동 아니라고 주장하나. <군함도>에 살았던 일본 주민의 증언을 통해 '한국인과 잘 살았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해 선전전을 하고 있다"며 "그리고 한국의 연구자를 동원해 강제동원을 부정하거나 희석화 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는 굉장히 고약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측이 밝힌 강제징용자 숫자는 어느 정도일까. 김 박사는 "1995년에 조사를 했는데, 최소치로 봐도, 1945년 3월까지 76만 명였다"며 "700만 명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국내에 동원된 근로보국대 등을 포함한 숫자다. 당시 우리 민족 인구가 2000만 명이었기에 700만 명이라면 집집마다 한 명씩 동원한 것"이라 했다.

강제동원 증거는 많다는 것. 김 박사는 "일본인 모집자의 증언도 있고, 우리나라 유생들이 남긴 일기 속에 강제징용 근거가 담겨 있다. 경찰이나 면서기들이 와서 강제동원 해갔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했다.

"빨리 이 문제가 매듭지어야 한다"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 경남건립추진위원회는 2일 저녁 경남도교육청 2청사 강당에서 "일제 강제동원으로 살펴보는 역사청산운동의 현황과 과제 대토론회"를 열었다.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 경남건립추진위원회는 2일 저녁 경남도교육청 2청사 강당에서 "일제 강제동원으로 살펴보는 역사청산운동의 현황과 과제 대토론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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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참석자들은 보상 이야기를 했다. 유족인 정영석(68·경남 함양군)씨는 "선친께서 강제징용자였고, 이명박정권 때 피해자 신고를 했는데 통지서만 있고 아직 보상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새 정부도 마찬가지다"라며 "빨리 이 문제가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민철 박사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와 변호사들이 토론했던 적이 있다. 현재 일본의 정치지형상 법적으로 배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정치적인 타결 방식으로, 과거 독일과 프랑스가 했던 것처럼 포괄적인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1차 법적 책임은 일본정부와 기업에 있고, 그 다음에 한국정부도 책임이 있다. 한국정부는 일본에 돈을 받아 포스코를 짓고 경부고속도로도 건설했다"며 "선배 세대의 노동 대가인 돈으로 지은 기업이 일부 출연해서 재단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살아 있는 분들과 유족에 대한 지원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김은겸 경남건립추진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창원 한서병원 앞에 노동자상을 설치할 예정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총 1억 9650만 원으로, 시민사회와 한국노총, 민주노총의 모금에다 여러 기관의 지원금으로 마련할 예정"이라 했다.

"3명이 서 있는 형상, 시민과 함께 어울릴 수 있게"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 경남건립추진위원회가 창원 한서병원 앞 쌈지공원에 세울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밑그림이다. 유창환 작가 작.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 경남건립추진위원회가 창원 한서병원 앞 쌈지공원에 세울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밑그림이다. 유창환 작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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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상' 제작자로 선정된 유창환 작가는 "위치는 시민들이 많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무거운 동상과 조화가 될 것 같다"며 "노동자상은 3명이 서 있는 형상을 할 예정인데,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상은 '성지화'나 '공원화'가 아니라 도시와 잘 어울리고, 시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 노동자상 건립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던 사람도 형상만 보면 학습효과가 나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려고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집행위원장과 엄미경 민주노총 통일국장 등이 참여했다.


태그:#노동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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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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