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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회는 시대마다 그때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키워드를 갖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 그래서 혹자는 이를 시대정신 혹은 민심이라 칭하기도 한다. 예컨대 '세월호'는 3년 전 우리 사회의 키워드였고, '최순실'은 1년 전 바로 이때 우리 사회의 키워드였으며, 그것은 이후 '탄핵'과 '대선'이라는 키워드를 잉태해왔다.

그러면 2017년 10월 말 현재, 우리 사회를 꿰뚫는 키워드는 뭘까? 북핵? 방송장악? 아니다. 사람들이 이제 막 열심히, 그리고 광범위하게 언급하기 시작한 키워드가 있다. 단어가 아닌 조금 긴 구절이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가 바로 그것이다.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한 참석자가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로 행진하며 '다스는 누구겁니까'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한 참석자가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로 행진하며 '다스는 누구겁니까'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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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 구절이 맹활약 중이다. 네티즌들은 시도 때도 없이, 그것도 맥락과 상관없이 이 구절로 댓글놀이를 하고 있고, 정권 교체 이후 자아검열을 벗어던지기 시작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이를 직접 언급했으며, 몇몇 언론들은 이런 현상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백미는 근엄한 국감장이었다. 지난 23일 서울 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서 화제가 됐다. 다스가 누구 것이냐는 뜻하지 않은 질문에 당황한 듯 머뭇거리며 묘한 표정으로 답변을 이어간 윤석열 지검장. 그것은 국민 모든 사람이 이 질문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일까? 최근 뉴스의 중심은 이명박 전 대통령, 바로 MB다. 국정원에서부터 시작해서 다스까지 온통 MB와 관련된 꼭지들이 뉴스를 뒤덮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과제가 적폐청산임을 감안할 때 이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어쨌든 그들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소위 메인스트림으로서, 국민적 공감대가 아주 커지지 않는 이상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우기 쉽지 않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뉴스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바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키워드의 힘이다.

키워드의 확산

다스는 누구 겁니까
 다스는 누구 겁니까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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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스는 누구 겁니까?'가 이렇게 많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MB에 대한 증오, 복수심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로 다스에 대해 궁금해서?

이에 대해 보수 세력의 주장은 아주 간명하다. 그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정의한다. 예컨대 지난 주 JTBC<썰전>에서 보수를 대표하는 박형준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모든 게 탐사보도에 의해 한쪽으로 몰아가 분위기를 만들고 여론몰이를 한다"며 "'다스는 누구 겁니까'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조직적으로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배후에서 누군가가 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을 위해 프레임을 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MB가 광우병 파동 당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촛불을 보며 저 배후에 누가 있는지 낱낱이 밝히라고 했던 사고방식과 유사하다. 그들은 시민의 자발성을 믿지 못한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댓글을 달아 여론을 호도할지언정, 시민들이 직접 나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을 조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의 판단은 틀렸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가 유행하는 것은 그것이 조작이 아니라 민심이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은 조작을 운운하지만,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여론을 조작했다는 것만 증명할 뿐이다.

특히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는 이 키워드를 두고 "이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재미삼아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미'이다. 아무리 진실이더라도 그것이 대중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이 키워드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은 풍자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이다.

풍자의 힘

풍자: 문학 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씀(네이버 국어사전)

한 사회에서 풍자가 횡행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억압적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발설했다가는 왠지 불이익을 당하거나 다칠 것만 같은 엄혹한 분위기. 풍자는 그런 척박한 토양에서 출발한다.

직장인 모임 ‘쥐를잡자특공대’와 이명박 심판 국민행동본부 회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전 대통령 조사 및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직장인 모임 ‘쥐를잡자특공대’와 이명박 심판 국민행동본부 회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전 대통령 조사 및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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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매우 척박한 곳이었다. MB 정부 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온라인을 통해 이야기를 하려 하면 득달같이 악플이 달렸고, 광장에서 촛불을 들어 의사표현을 하려고 하면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고 벌금을 부과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말살시켰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나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풍자를 택했다. 정권의 패악에 맞서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웃음을 선택했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풍자를 통해 기득권 세력들을 조롱하고 농락했듯이, 우리 역시 풍자를 통해 낄낄거리며 우리의 생각을 비틀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012년 대선 전 <나꼼수>가 폭풍 같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바로 그 풍자를 정치 전면에 서서 대차게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스는 누구 겁니까' 역시 마찬가지이다.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풍자의 힘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정권도 바뀌었는데 그럴 필요 있냐고 이야기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MB를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울 만큼 변하지 않았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구속조차 되지 않았으며, 아직도 극우세력들은 '빨갱이' 타령을 하며 호시탐탐 세력의 복원을 꾀하고 있다.

비록 최근에는 국정원 개혁위 등이 이전의 적폐들을 청산하며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 역시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분단이라는 환경에서 레드콤플렉스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사회 시스템에 뿌리 깊게 박힌 정경유착이나 권언유착 등은 아직까지도 가공할 위력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거꾸로 가지 않을 것 같았던 민주주의의 시계도 지난 10년 간 역주행을 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많은 이들이 풍자에 기대어 자신의 의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직 권력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우리는 웃음을 통해 연대하고, 웃음을 통해 정치를 가볍게 만들 것이며, 웃음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다스의 주인을 찾는 이유이다. 참, 최근에는 <플랜 다스의 계>도 있다고 하니 주목해 보시길.

다시 한 번 외쳐본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


태그:#다스는 누구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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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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