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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5.18 유족 매수 및 분열 획책 공작, 일명 '비둘기 시행계획'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 '비둘기 시행계획' 문건 공개하는 박주민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5.18 유족 매수 및 분열 획책 공작, 일명 '비둘기 시행계획'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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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이 5.18 민주화 운동 유족을 분열하도록 공작을 펼친 증거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지 이장 계획을 지시한 문건을 공개했다. 같은 날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전두환 정권 보안사(현 기무사)가 금전 지원, 회유, 사찰, 격리, 루머 유포 등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 5.18 민주화 운동 유족 간 분열을 조장하고 민심을 왜곡하는 공작을 펼친 증거 문건 6건을 공개했다.

망월동 묘지 이전 계획은 1983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사태 관련 현황> 문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문건에는 '공원묘지 이전 계획'의 추진 경위로 "82년 3월 5일 전남도지사 각하 면담시 공원 묘지 이전 검토 지시"라고 적혀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묘지 이전이 진행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83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둘기 시행계획>은 묘지 이장 1차 계획을 담은 문건으로 '유족 묘(사망자 묘의 오기로 보임)' 현황을 연고별로 분석해 타 시군 연고 묘에 대해 해당 시장, 군수 책임 하에 직접 회유(순화)하는 시행방침을 세웠다. 또 이전에 따른 제반 편의(이전비, 위로금 지원)는 전남지역개발협의회에서 제공토록했다.

"각하 면담 시 공원 묘지 이전 검토 지시" 전두환 지시로 망월동 묘지 분산 진행

특히 단계별 추진방법에서 505보안부대가 1차 대상 연고자 11인의 정밀 배경을 조사하고 신원 환경을 분석하며, 전남도가 순화 책임자를 소집하여 교육한다고 돼있다. 시행 관계자 구성표를 보면, 전남도청 5인, 광주시청 6인, 505보안부대 5인, 협의회 5인으로 돼 있고, '보안관계상 최소인원이 참여한다'고 적혀있다. 즉, 묘지 이전에 정보기관과 지자체, 관변 단체가 긴밀히 협력했던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박 의원은 "전남지역 개발협의회는 물론 전남도청, 광주시청 및 타 시군청, 505보안부대, 검찰, 안기부, 경찰 등 국가기관이 총 망라돼 있어, 망월동5.18묘역 성역화를 막는 작업에 군·정부·지자체는 물론 민간까지 총동원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그동안 5.18 민주화 운동 이후에 정부에서 유가족을 회유하고 서로 분리시키려고 했었고 묘지 이전까지 시키려고 했다는 풍문과 주장이 있었다"라며 "그걸 증명해줄 자료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됐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전두환 정권은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광주 방문 전에 망월동 묘역이 성역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묘지 분산 계획을 진행했고, 묘를 이장하면 1000만 원의 위로금과 50만 원의 이장비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극렬분자 38명 '집중 순화 대상'으로 선정해 특혜 제공

박주민 의원이 이날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문건에는 유족들의 성향 분류 및 이에 따른 적극적인 회유책들이 적시돼있다.

1981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사태 관련자 현황>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은 가구당 400만 원씩 114가구에 총 4억 5600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이 가운데 '폭도로 단정 연고자'에게는 위로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폭도 단정 기준에는 '계엄군 도청 진입 시 대항타 사살된 자', '공수 계엄 지역인 광주시 지원동에서 대항타 사살된 자', '외지 거주자로 광주 사태 지원 난동 가담자' 등이 포함됐다.

또한 '유족 성분 분석' 항목에서 유족들의 직업과 월급 수준이 상세히 기재돼있는 등 유가족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극렬유족 30명을 A급, B급, C급으로 분류했다. '대정부 강경 비판자, 폭도 판정 유족으로 보상금 지원 요구자'는 A급으로, '문제 집회 참석 빈번자'는 B급에, '타의로 문제 집회 참석 빈번자' C급으로 분류됐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는 '공원 묘지의 지방 분산', '강온 양면 대상으로 신축성 있는 대처', '극렬 대상자의 유족도 지속적인 순화(취업 생계 지원, 학비 면제 등)'이 적혀 있다.

해당 문건의 구체적인 이행 상황은 1983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사태 관련 현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건에는 극렬분자로 분류된 38명을 '집중 순화 대상'으로 선정해 취업 12명, 학비 면제 9명, 의료혜택 58명, 편의제공 37명 등 정권 차원에서 특혜를 제공했음을 적시하고 있다. 또한 1982년 연탄 23,600장 1983년 41,400장 등 물량 지원도 있었음이 적혀있다.

극렬 측에 '물빼기 작전'..."미 CIA 협조, 군 동원계획도 담겨"

이철희 의원이 이날 공개한 문건은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확보한 8천여 쪽의 미공개 자료 중 일부다. 이날 문건에는 보안사가 학원, 종교인, 유가족, 구속자와 부상자를 대상으로 실행한 '순화 계획'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보안사가 유족을 '극렬측'과 '온건측'으로 분류하고 극렬측에는 '물빼기 작전'을, 온건측에는 '지원과 육성 활동'을 실시한 공작이 드러난 것이다.

1981년 5월 28일 작성된 <광주사태 1주년 대비 예방정보활동 결과> 문건은 "광주사태 1주년을 전후하여 불순세력의 선동행위와 광주권 주민의 잠재적 불만의식 등으로 불의의 사태발생에 대비"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구체적으로는 '잠재불만의 표출화 예방', '위령제 등 각종 추도행사 기획 봉쇄', '불순세력군의 잠복활동 와해'를 활동 방향으로 적시하고 있다.

더불어 학원, 종교인, 유가족 및 구속자 가족 등 대상을 구분하여 공작 활동결과를 보고했다. 학원순화를 위해 보안사는 전남대의 특정 서클을 와해하기 위하여 학군단에 비용을 지원하여 이면침투·첩보수집 활동을 벌였음이 적혀있다. 또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인의 추모예배를 막기 위해 25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종교인 68명을 제3땅굴, 판문점 등에 안보 견학시키는 등의 공작을 벌였다.

무엇보다 해당 문건에는 구속자 가족의 미 공보원 농성을 와해시키려는 목적으로 경찰 동원을 위해 미국 CIA와 협조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더불어 유사시 군 동원을 염두에 두고 공세적 시위 진압 훈련인 '충정 훈련'을 실시해 비상 대기토록 한 사실도 적시했다.

이 의원은 '충정 훈련'에 대해 "당시 전두환 정권이 여차하면 제2, 제3의 5.18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CIA 협조에 대해서는) 앞으로 진상조사위에서 명백히 밝혀져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1985년 3, 4월 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사업계획> 문건에는 유가족을 '극렬측'과 '온건측'으로 구분해 실시된 화유 공작들이 자세히 적혀있다. 극렬측에 대해서는 1대 1로 조를 짜서 사찰하는 등의 '물빼기 작전'의 결과 12세대 15명을 회유하는 데 성공했다는 구체적 성과가 기술돼있다.

온건측에 대해서는 군인과 군인가족 유족을 활용한 순화 '취업알선', '자녀학비 면제' 등 애로 사항 해소 등을 통해 월례모임을 축소시킨 것이 성과로 담겨있다. 이 같은 활동 결과는 분기 1회 심사 분석 후 '사령부'에 보고했고 144만 원의 예산을 분기별로 36만원씩 나눠 극렬측 와해 및 온건측 육성에 사용했다.

같은 해 11월 6일에 작성된 <광주 5ㆍ18 유족 순화 사업 추진 중간보고>는 '물빼기 작전'의 중간보고 결과다. 유족회 내에 온건성향 유족 또는 불만세력을 대상으로 "회장, 임원진 등이 장차 정계진출을 위해 조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역루머를 유포"하거나, 물량지원 등을 통해 상호 불신을 조장했고, 그 결과 온건 유족이 증가하였고 극렬 유족이 감소했다는 '실적'이 적혀있다.

1986년 2월에 작성된 <광주사태 관련 유족 순화 계획>은 유족 가운데 온건한 유족회나 군 관련자를 대상으로 한 계획을 담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접촉과 지원으로 유대관계를 형성' 및 '문제행사 참여 차단' 등이 기본 방침이었다. 군 관련 유족은 신상파악, 취약점 발굴 후 활용하고, 온건유족은 인간적 유대관계를 지속하면서 물량 및 행정을 지원하며, 문제 인물에 대한 비판을 유도한다고 기재됐다. 군 관련 유족의 경우 월 2만 원씩, 온건 유족회의 유족은 월 5만 원씩을 지급할 계획도 함께 수립됐다.

1988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 추진된 '광주사태 관련자 순화' 실적과 성과를 기재한 <광주 사태 관련자 순화> 문서를 보면, 주요 실적으로 "온건유족회원이 강경유족회 계주 부부를 폭행하였다"는 것이 언급돼있다. 작성 시점을 알 수 없는 <5ㆍ18 온건 유족회> 문서에는, 온건 유족회의 현황과 편성을 분석하고 있다. 유족회의 '영향력'과 '활용도'를 각 C급으로 표기하며, '광주사태문제 이외 영향력이 별무'하다고 적혀있다.

이철희 의원은 "이번에 공개된 문건을 통해 1981년부터 1988년까지 보안사가 5.18 유가족과 관련단체를 비롯해 광주시민을 대상으로 '순화 계획'의 이름으로 저지른 와해 및 회유공작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라며 "5.18 민주항쟁과 관련해 표출됐던 다툼과 갈등이 전두환 정권이 군 정보기관 보안사를 앞세워 벌인 '더러운 공작'의 결과였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건에 선명하게 찍힌 이종구 당시 보안사령관의 결재사인은 5.18 당시뿐 아니라 이후 수습과정에서도 군이 대대적으로 동원되었다는 생생한 증거"라며 "이 문건들을 통해 5.18 진상조사 특별법 통과와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한 철저한 진실규명이 시급하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라고 강조했다.


태그:#전두환, #5.18 민주화 운동, #묘지 이전, #이철희, #박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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