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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틀째 밤, 첫날엔 조금 어색해 보였던 부자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목욕을 2년만에 같이 한 것 같아요. 아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항상 힘들어 보이셨는데, 말을 못 꺼냈어요."

일본 오이타현에 있는 한 료칸, 저녁 식사를 마친 윤재중(47) 소방관은 아들 윤지수(18)씨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름을 안 부르고 '임마, 점마' 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들 이름을 예쁘게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윤씨는 아들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온천 여행은 얼어 있던 소방관 아빠와 사춘기를 거친 아들의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윤재중 소방관과 아들 윤지수씨
 윤재중 소방관과 아들 윤지수씨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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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재센터 보면서 위험했던 순간 떠올려

여행박사의 사회공헌 사업인 '소방관 리프레쉬 해외여행'에 소방관 가족 30팀(인천공항 출발 15팀, 김해공항 출발 15팀, 총 60명)은 지난 14~16일, 2박 3일 일정으로 규슈 지역 여행을 떠났다. 소방관 아버지와 아들, 함께 소방관으로 일하는 부자, 부부 소방관, 여성 구급대원 동기 등 팀마다 관계와 사연이 달랐다. 하지만 '소방관'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이들은 금세 친해져, 비가 오는 날씨에도 유쾌하게 '힐링 여행'을 즐겼다.

이들은 기타큐슈 공항에 도착해 시모노세키 해향관(수족관)과 시모노세키 가라토 시장을 방문한 뒤, 소방 및 재해 관련 체험을 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후쿠오카 방재센터'로 향했다.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고, 컴컴한 방에 들어가 가상의 화재 현장을 체험했다. 특히 일본에서 자주 일어나는 재해인 지진이나 태풍 등에 대해서는 직접 그 강도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지진에 관한 교육을 받을 때는 한국에서도 '경주 지진'이 있었고, 더 이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소방관들의 표정이 유독 진지해졌다.

 소방관들과 가족들이 화재 진압 체험을 하고 있다
 소방관들과 가족들이 화재 진압 체험을 하고 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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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관들과 가족들이 지진체험을 하고 있다
 소방관들과 가족들이 지진체험을 하고 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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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은 체험하면서 저마다 자신이 겪은 위험 상황에 대해 털어놨다. 최상수(38) 소방관은 "경기도 평택에 있을 때 2015년 서해대교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그때 순직한 선배님이 저랑 함께 근무하던 분이었다. 낙뢰로 인해 케이블이 떨어져 현장에서 돌아가셨고, 직원 두 명이 다쳤다. 같이 출동했던 직원들도 그렇고 저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윤재중 소방관 또한 "4년 전에 공장에 화재가 났다고 해서 출동했다. 공장 문을 열었는데 펑 폭발이 나면서 나와 다른 대원들이 날아갔다. 다행히 타박상만 입었지만 팀 전체가 다 죽을뻔한 사건이었다"고 토로했다.

소방관들은 후쿠오카 방재센터를 본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친구가 함께 여행 온 박민철·이태훈(32) 소방관은 "지진이나 태풍에 대해서는 체험 시설이 잘 돼 있는데, 어두운 방을 탈출하는 화재 체험이나 심폐소생술 등은 우리 나라의 119시민체험센터가 더 잘 돼 있는 것 같다"라고 평했다. 이어 "아까 보니 집전화와 휴대전화로 신고하는 시뮬레이션이 있더라. 특히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올바른 신고방법을 가르치는 게 중요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아버지와 아들, 족욕하며 어깨동무

 이효성 소방관과 이현준씨
 이효성 소방관과 이현준씨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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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여행팀은 첫째날 숙소인 우레시노시에 있는 우레시노 호텔에서 저녁식사와 온천을 즐기며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튿날에는 '벳푸' 지역으로 이동해서 100℃의 증기가 나오는 온천을 구경하는 것으로 여행 일정을 시작했다. 다양한 색깔의 온천을 구경한 후 족욕을 했고, 유황달걀과 라무네 사이다를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족욕을 하는 이들 중에는 특히 사이가 좋아 보이는 부자가 있었다. 이효성(49) 소방관과 아들 이현준(20)씨였다.

"매해 지리산도 가고 그랬는데, 아들이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하고 대학도 타지로 가는 바람에 자주 볼 기회가 없었어요."
"수능 준비하고 이럴 때 저도 바쁘고 그래서, 아빠를 좀 서운하게 했던 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현준씨는 소방관인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도 학교 내에서 하는 소방훈련을 진지하게 임했고, 형식적으로 소방훈련을 하는 것에 대해 학교에 문제제기 하기도 했단다. 이효성 소방관에게 힘든 걸 물어보니 자신이 나서서 "아빠 '장비' (소방관 장비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부분) 있잖아"라고 먼저 말을 꺼내기도 했다.

"직장 이야기를 많이 안 하세요. 그래도 얼마나 힘드신지 잘 알고 있어요. 무엇보다 아빠가 소방관으로서 갖는 '직업 의식'이 자랑스러워요."

20년 근무, 서로 힘이 되는 동기들

 류정은 소방관 (왼쪽)과 조은숙 소방관(오른쪽)
 류정은 소방관 (왼쪽)과 조은숙 소방관(오른쪽)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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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온 15팀 중 유일하게 여성 두 명이 온 팀도 눈에 띄었다. 1997년도에 대전 구급대원 동기로 들어온 류정은(48) 소방관과 조은숙(46) 소방관이었다. 이들은 특이하게도 본인들이 여행을 가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구급대원 동기가 이 둘을 묶어 '리프레쉬 여행'을 보내달라며 여행박사에 사연을 보냈다고 한다. 20년 동안 12명의 동기는 단 한 명 도 그만두지 않고 꿋꿋하게 소방관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엄마로서, 또 소방관으로서 바쁘게 살아오며 그동안 동기들끼리 함께 해외여행 한 번 가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교대근무를 하면서 항상 힘들었던 것 같다. 야간 근무가 끝나도 육아와 가정일을 해야 했고, 그날은 거의 잠을 못 잤다. 지금은 아이들이 좀 커서 괜찮아졌다. 그래도 남편이 많이 지지해줬다. 2교대 때는 1년에 절반 동안 밤에 집에 없었고, 지금 3교대에선 100일 넘게 집에 없는 것 아닌가." - 류정은 소방관

"저 때만 해도 임신 기간에도 구급차를 탔다(지금은 사무직 전환). 만삭까지 일을 했다. 저는 20년 동안 휴직을 해본 적이 없다. 출근해서는 일하고 집안에서는 가정일 하고 애 키우고 달려왔다. 어느 시점인가부터는 '아 이걸 계속 해야 하나' 싶더라 (...) 아무래도 현장에서 힘써야 하는 일, 험한 일이 많았고 남자 위주로 이뤄진 조직이니 이해하기 힘든 일도 많았다. 하지만 조직 자체가 결속력이 강하고 동료애가 끈끈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 조은숙 소방관

그동안 힘든 일은 많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을 크게 느끼고 있는 그들. 여성 소방관의 노동환경이 점차 나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더불어 지금껏 곁에 있어 준 동기들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도 드러냈다.

"남자직원은 다수고 여자직원 1명뿐인 경우가 많다. 일에서의 어려움을 다 토로할 순 없다. 그래서 퇴근 후에 동기들끼리 일에서 생기는 어려움, 고민도 털어놓고, 육아·교육적인 문제도 공유하려고 만나다 보니까 아무래도 돈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12명인데 각자 근무일정이 있어서 한 번에 다 모이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 류정은 소방관

"20년 동안 어찌보면 비슷한 나이에 소방서 들어와서 비슷한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같이 성장했다. 이번 여행 같은 경우에는 동기가 엄청난 선물을 준 거 아닌가.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왔다. 좋은 친구와 쇼핑도 하고 관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있어서 행복하다." - 조은숙 소방관

소방관 가족들은 오후엔 유후인 상점 거리와 긴린코 호수를 들렀다가, 해가 진 뒤에는 오이타현 산속에 있는 료칸인 쿠쥬고켄코티지 (KUJUKOGEN COTTAGE) 료칸으로 이동했다. 연회장에 다 같이 모여 일본의 가이세키 요리를 먹으며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보냈고, 이후 대자연 속에서 노천 온천을 즐겼다.

 레크레이션 행사를 즐기는 소방관들
 레크레이션 행사를 즐기는 소방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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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소방관, 언제나 든든한 우군

여행 마지막 날 오전에는 후쿠오카에 있는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에 들렀다. 비가 와서 이곳의 풍경이 예상보다 아름답지 않았음에도, 힘든 근무를 잠시나마 내려놓은 이들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결혼한 지 6개월 된, 신혼 부부소방관이었던 이상익(34) 소방관과 황혜진(33) 소방관은 소위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함께 여행 온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상익, 황혜진 소방관
 황혜진, 이상익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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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구조대원이고 아내는 구급대원이다. 현장에서 만날 때가 많은데, 불길 속 연기 속에서 구조한 분을 제가 아내에게 인계 한다. 힘든 현장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아내가 자랑스럽다."

"전날 야간 근무를 하고 와서 바로 옷 갈아입고 비행기에 탔다 (...) 서로의 일을 잘 이해하니까 어려운 점에 대해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신랑이 아주 든든한 사람이다. 둘이 힘을 합쳐서 많은 사람들을 구조하자는 다짐을 한다."

부부 소방관은 둘의 애정만큼이나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도 강했다. 이 소방관은 "위기에 처한 사람은 모두 구할 수 있는, 위험한 현장에 남겨두는 분들이 없도록 하는, 그런 소방관이 되고 싶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황 소방관도 "구급대원으로서 다치거나 아픈 사람들에 대해 잘 처치해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싶다"며 남편의 포부에 더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오후에는 오래된 석조 건물, 특히 아인슈타인 부부가 머문 것으로 유명한 '구 모지미쓰이클럽' 등이 있는 '모지코 레트로 지구'에 들렀다. 이곳 거리를 산책 및 쇼핑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2박 3일간의 여행이 마무리됐다.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에 들른 소방관 여행팀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에 들른 소방관 여행팀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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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 동행한 여행박사 심원보 마케팅부 부서장은 "소방관 분들은 힘든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라면서 "그분들이 이번 여행을 통해서 재충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소방관분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뻤고, 내년에도 '리프레쉬 여행'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행박사는 330여 명의 직원들이 매달 급여에서 1%씩을 기부한 것을 통해 사회공헌 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소방관 리프레쉬 여행' 참가자는 회사 누리집을 통해서 가족이나 동료, 자녀의 사연 공모를 통해 선정했다. '소방관 리프레쉬 여행'은 2015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서울에서 간 15팀, 두번째 숙소였던 쿠쥬고켄코티지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서울에서 간 15팀, 두번째 숙소였던 쿠쥬고켄코티지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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