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의문사진상규명활동 대국민보고 및 제2기 보고서 출판기념회'가 2004년 12월 8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한상범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활동 대국민보고 및 제2기 보고서 출판기념회"가 2004년 12월 8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한상범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지난 15일 한상범 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 위원장이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한상범 위원장을 처음 만났다. 그는 헌법학자였고 나는 역사학 전공자였지만 둘 다 격의 없는 노무현 대통령을 너무나 좋아했던 것 같다. 

지난 2004년 6월 2기 의문사위 활동이 끝날 무렵, 조사시한 만료를 앞두고 한상범 위원장의 의문사위는 비전향장기수 3명에 대한 민주화운동 관련성이 인정된다는 내용의 결정을 내렸다. 이런 결정에 대해 당시 <중앙일보>는 "빨치산과 간첩을 민주화 인사로 둔갑시켰다"는 단순 논리로 의문사위 결정을 보도했고, 이후 여러 수구언론들이 일제히 한상범 위원장과 의문사위를 '빨갱이' 조직으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어느 극우단체에서는 망치로 의문사위 사무실 탁자 유리를 때려서 부술 정도였다. 또 한상범 위원장 집에 전화를 하여 "없애버리겠다"고 욕설과 협박을 일삼는 이들이 있었던 살벌한 때였다. 그런 협박과 돌출 공격 때문에 전경들이 의문사위 건물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 나 자신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경과 대립하여 싸우기 보다는, 전경의 보호를 받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의문사위에서 규정한 민주화운동은 1969년 8월 7일, 그러니까 박정희가 3선 개헌을 발의한 후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해, 한마디로 군사정권에 항거해,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이라고 규정돼 있었다.

그때 수구언론과 극우집단들이 의문사위의 이런 결정에 반대하며 주로 내세운 이유는 이랬다. 비전향장기수들은 빨갱이, 간첩, 전향을 거부하는 이들인데 이들이 무슨 민주화와 관련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이 문제로 우리사회는 소란스러웠다. 극우인사들은 TV 심야토론에 나와서도 의문사위를 마치 빨갱이조직처럼 대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그래서 그 때 한상범 위원장은 원색적인 욕설을 퍼붓는 극우인사들과 집단들을 상대로 이 문제에 대해 공개토론회를 하자고 제의했다. 결국,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의문사위 공무원들이 주최한 좌우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나는 현장에서 그 토론회를 생생하게 지켜봤다.

토론 중 한상범 위원장은 의문사위를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극우인사들 앞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다. 한 위원장은 당당하게 아래와 같은 의미의 주장을 하셨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것"

"이 비전향장기수분들은 전력이 빨갱이든 흰둥이든 검둥이든 이미 우리 정부로부터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과거전력이 어떻든 그 분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권리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이 분들도 여러분과 저와 같이 대한민국 법률의 보호 안에 있는 분들이고, 대한민국이 법치·민주국가라면 그에 따라 이 분들을 처우해야 합니다. 김영삼 정권 때 내무장관이 '공산당은 고문해도 좋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는 인격의 이성적인 자유를 보장한다는 겁니다."

당시 나는 자유민주주의 핵심을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으로 정의한 한상범 위원장의 흔들림 없고 확고한 발언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극우인사들의 소란한 아우성과 원색적인 욕설에도 불구하고 한상범 위원장은 차분하게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과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의 예도 들었다.

"자유민주주의 원조격인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의 명저 <자유론>에서도 사상, 양심, 신앙에 대해서는 국가권력이 심판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밀은 '자유로운 논쟁에서 진실한 것은 살아남고 잘못된 것은 도태된다'고 주장했습니다. 20세기 최고 헌법학자인 칼 슈미트도 국가권력이 도덕적인 권위를 가진 심판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유주의 법치국가론에서는 권력을 필요악으로 보고, 권력이 간섭하는 것은 질서유지와 복지증진에 한하는 것이지 신앙과 학문적인 논쟁 사항을 심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상식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입니다."

권력 앞에 당당했던 헌법학자

나는 당시 인간의 사상, 양심, 신앙에 대해서 국가권력은 심판자가 아니라는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을 흥분한 극우인사들에게 한 치의 당황함도 없이 차분하고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한상범 위원장을 통해서 참된 지성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울러 국가권력은 질서유지와 복지증진에만 간섭 할 수 있고 신앙과 학문적인 논쟁사항을 심판하는 것은 아니라고 꿋꿋이 주장하는 모습에서 권력 앞에 당당한 헌법학자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분단된 한반도와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의 귀신이 횡행하는 냉전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전향제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악법임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냉전시대의 유물인 전향제로 인해 많은 사상범과 장기수들이 반인륜적인 잔인한 고문과 강압에 항거하다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지난 2004년 그날 한 위원장이 이야기 했듯 비전향 장기수분들은 우리나라 민주화에 의도적으로 기여했다기보다, 전향제라는 비인간적인 악습에 목숨을 걸고 항거해 사회적 파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당시 한상범 위원장과 진보적인 의문사위 위원들은 이들이 민주화운동에 기여 한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결국 그 말은 이 비전향 장기수 분들이 민주투사이고, 민주제도 수립에 기여한 게 아니라 인권의 질곡이었던 반인륜적 제도의 폐지에 직간접 영향을 줬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나는 지금도 당시 한상범 위원장이 극우인사들의 원색적 욕설 앞에서도 당당하고 차분하게 주장한 "빨갱이도 인간이다. 법으로 판단해야한다"고 한 말을 기억한다. 이 말은 내게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겨준다. 아울러 과거 무고한 인간의 생명을 잔악한 고문으로 앗아간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자들의 망령으로 뒤덮인 오늘날의 한반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그 독재자의 딸이 국정농단으로 국정을 망친 오늘의 내 나라 모습을 생각하면서, 한상범 위원장이 늘 말씀 하시던 과거사는 단순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이라는 것을 몸으로 실감한다.

2004년 12월 말, 의문사위가 문을 닫던 날 한상범 위원장은 나를 위원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내게 러시아의 사상을 근대이후부터 고찰하고 계몽사조의 흐름, 19세기 초 반계몽주의 경향, 러시아 사회주의의 기원, 실증철학의 시조와 마르크시즘의 등장까지 분석한 <계몽사조에서 마르크스주의까지>를 선물로 주셨다. 

이 책은 지금도 내 책장에 소중하게 꽂혀있다. 역사는 흐르고 사람은 가지만 정신만은 남는 법. 어려운 시절 속에서도 온 삶으로 행동하는 지성의 모습을 보여준 한상범 위원장의 그 정신이 지금 이 순간 더욱 그리워진다.

평생을 일제잔재 청산, 독재타도, 인권운동에 바친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발인: 2017년10월18일(수) 08시 30분
빈소: 영동세브란스병원장례식장 2호실(서울 강남)

태그:#한상범, #김성수, #의문사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