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기소개를 준비하는 학생들
▲ 공동수업 강의실 모습 자기소개를 준비하는 학생들
ⓒ 최효진

관련사진보기


자기 소개를 하려고 마이크를 잡은 손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가고 싶던 학교. 김금수(73) 어르신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아이들을 만나니 너무 예뻐요. 못 다녀본 학교를 간다는 생각에 어젯밤에 너무 설레서 잠도 자지 못했어요. 학교에 오는 차안에서부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구 왜 이렇게 눈물이 나누..."

너무 늦어 버린 등굣길의 거리가 70여 년이다. 눈물같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11일, 조금초 학생들은 한 자리에 모여 어르신들을 맞이했다. 환영행사 자리에서 "조금초등학교는 세상에서 다섯 번째로 아름다운 학교"라는 선생님의 진담인 듯 한 농담에 어르신들은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는 듯 손뼉을 치며 웃었다.

당진시 대호지면 4.4만세로에 있는 조금초등학교(교장 박애림)는 전교생이 64명(유치원 6명 포함)인 학교다. 말 그대로 순위를 매길 수 없겠지만 아담하면서 아름다운 학교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 학교가 당진 구군청사에 있는 해나루시민학교(교장 문선이) 학생들을 초대했다. 오전 시간에 여유가 있는 어르신 열여덟 분이 학교를 방문했다. 어르신들의 평균 나이는 73세, 최고령인 유계남 어르신은 91세다.

평생 일만 해온 할머니...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하는 최묵 어르신
▲ 공동수업 강의실 모습 눈물에 말을 잇지 못하는 최묵 어르신
ⓒ 최효진

관련사진보기


자기 소개 중에 눈물이 터져버린 김연금 할머니
▲ 공동수업 강의실 모습 자기 소개 중에 눈물이 터져버린 김연금 할머니
ⓒ 최효진

관련사진보기


자기 소개 중에 웃고 있는 유계남 어르신
▲ 공동수업 강의실 모습 자기 소개 중에 웃고 있는 유계남 어르신
ⓒ 최효진

관련사진보기


학교에 가지 못 한 분들에게 한글이라도 읽고 쓸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시설이 해나루시민학교다. 학생은 대부분 어르신이고 또 대다수 여성이다. 해나루 시민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한글을 배우지 못한 각자의 사연을 가슴에 품은 분들이다.

조금초등학교 학생들의 환영 행사가 끝난 후, 해나루시민학교 학생들은 조금초 아홉 명의 1학년 학생들과 1학년 교실에서 공동수업을 함께했다. 연신 어르신들을 눈물 흘리게 만든 것은 특별한 수업이 아니라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최묵(66) 어르신은 "오늘 학교에 간다고 남편에게 자랑했더니 '나이 들어 좋은데 가네'라며 부러워하대요. 정말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며 울었다. 해나루 시민학교 문선이 교장은 "사실 남편분이 할머니가 학교 가는 걸 싫어했어요. 나이 들어 글 배워 뭐하냐면서요. 지금은 많이 바뀌셨다고 하더라구요"라고 귀띔했다. 김연경(73) 어르신도 말씀을 거들었다.

"딸들이 학교 가서 뭐하냐고 지청구를 했어요. 평생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못하고 경운기도 몰고 오토바이도 몰고 일만 했어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려고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게 바로 공부하는 거에요. 그래서 학교에 다녀요."

해나루시민학교 학생들 중 최고령자인 유계남(91)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고항리에서 농사를 졌어. 젊어서는 (먹고) 사느라고 공부를 못했어. 이제 석달 학교에 나왔어. 공부하는 건 정말 어렵더라구." 

때를 놓친 배움을 안타까워했다.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이 "다들 오빠라고 부르는데 재미있잖아요"라고 말하자, 유 어르신은 "허허, 그런가" 하며 웃었다.

소풍 같았던 하루 동안의 학교 생활

쉬는 시간 화장실을 안내하는 조금초 어린이
▲ 공동수업 강의실 모습 쉬는 시간 화장실을 안내하는 조금초 어린이
ⓒ 최효진

관련사진보기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과 조금초 학생
▲ 공동수업 강의실 모습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과 조금초 학생
ⓒ 최효진

관련사진보기


간식을 먹는 조금초 어린이
▲ 공동수업 강의실 모습 간식을 먹는 조금초 어린이
ⓒ 최효진

관련사진보기


문선이 교장이 전한 이야기는 배움의 갈증을 안고 살아온 어르신들의 삶을 그대로 설명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각자의 사연들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에요. 어떤 어르신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큰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호적을 올리지 않고 죽은 사촌언니의 호적으로 평생을 살아 오신 분이었어요. 실제 나이는 70대인데 호적상 나이가 90세가 넘어요. 작년에 졸업장을 제출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돼 호적을 정리했어요.

또 다른 어르신은 학교에 나가 공부한다는 걸 싫어한 남편 때문에 고생을 하신 분도 있어요. 심지어는 가방을 숨기기도 하셨데요. 일일이 말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해서 혹은 딸이라서 배우지 못한 분들이어서 공부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1교시 자기소개를 마친 학생들은 2교시에는 한글 교육 수업을 들었다. 1교시와 2교시 사이에 어린 조금초 학생들의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가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집에서는 어린 손주들마저 장성했을 연세지만, 학교 안에서는 화장실도 손잡고 찾아가야 하는 영락없는 신입생이었다. 조금초 1학년 학생들은 쉬는 시간 동안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손을 잡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학교 이곳저곳을 소개했다.

공동 수업을 진행한 배세령 교사는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것이 살짝 부담스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중 상당수는 조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아서 색다른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학교 입장에서는 손님맞이를 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초등학교 선생님들은 학교를 다녀 보는 것이 소원이던 어르신들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어린 학생들은 먼지처럼 쌓인 어르신들의 가슴 속 한을 조금은 닦아줬을 것이라 믿는다.

해나루시민학교학생들은 수업을 마친 후 점심 급식도 함께하며 소풍같았던 하루동안의 학교 생활을 마무리했다.

환영행사를 준비한 조금초 학생들의 리코더 연주
▲ 조금초 학생들의 리코더 연주 환영행사를 준비한 조금초 학생들의 리코더 연주
ⓒ 최효진

관련사진보기


행사장을 메운 학생들
▲ 조금초와 해나루시민학교 학생들 행사장을 메운 학생들
ⓒ 최효진

관련사진보기


조금초 학생들의 환영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는 해나루시민학교 강천강사
▲ 조금초의 '해나루시민학교 학생 환영행사' 조금초 학생들의 환영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는 해나루시민학교 강천강사
ⓒ 최효진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당진신문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태그:#해나루시민학교, #조금초등학교, #당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본인이 일하고 있는 충남 예산의 지역신문인 <무한정보>에 게재된 기사를 전국의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픈 생각에서 가입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