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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뭘 안다고 남자가 하는 일에 왜 나서?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뭔가 일을 벌이던 아버지를 말리던 엄마에게 하던 말이다. 일의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 오히려 엄마의 생각이나 조언이 옳았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왜 여성이 결정 하면 안 되는지 의문이 생길 때가 많았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비난받거나 거절당하지 않고 여성 스스로 결정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낼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줄 책은 없을까 생각했던 건 그런 이유에서다.

여성과 남성의 결정 방식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가 아니다.
▲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 여성과 남성의 결정 방식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가 아니다.
ⓒ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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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심리학자 터리스 휴스턴의 페미니즘 연구서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How Women decide, 문예출판사>는 그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여성은 과단성이 부족하고 우유부단하며, 위기에 봉착했을 때 직접 부딪치기보다는 주저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성차별적 편견과 고정관념에 문제를 제기하며 시작한다.  

저자는 남성과 여성이 결정을 할 때 방법이 다르며, 그 다름을 사회에서 성차별적으로 인식하는데서 여성의 결정을 의심하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성차별적 인식은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사회에서 관리자나 리더 역할을 할 기회가 적고, 성차별적 교육에 길들여진 여성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 스스로 고정관념이나 역할일치 이론의 틀에 갇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가부장 사회에서는 남성이 사회적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자연히 모든 일을 결정하는데 남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여성들은 기울어진 사회적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 없이 오랫동안 결정을 하는 것, 리더 역할은 남성이 하는 것, 돌보고 도와주는 것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역할일치 이론에 순응하며 살았다. 여성은 피동적이고 의사결정에 순응하며 뒤에서 보호하고 돌보는 존재라는 인식이 굳어진 것이다. 사회적인 고정관념, 역할일치론, 닻 내림 효과 등의 덫에 걸린 셈이다. 저자도 말한다.

'우리는 왜 여성보다 남성이 명령을 내릴 때. 너그러울까? 노스웨스턴대학교의 심리학자 앨리스 이글리와 서던 일리노이대학교 경영학과의 스티븐 캐러 교수는 역할 일치 이론(role congruity theory)때문이라고 암시한다. 우리는 사회에서 기대하는 전형적인 역할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고 그러지 않은 사람에게는 호감을 덜 갖는다는 개념이다. 우리는 남성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제의를 거절하고, 일부나 대다수의 사람이 불쾌하게 여길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등 관리자처럼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보살피고, 동정할 것이라는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기대는 일반적인 관리자의 역할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성을 관리자로서 좋아할 수도 있다. 단지 그녀가 우리 의견에 귀를 기울일 때 그럴 것이다.' - 125쪽

저자의 인터뷰 사례와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성은 최종 판단을 하면서 무분별한 위험을 감내하거나 독단적인 결정을 하기보다 조직과의 협동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협동성은 최선의 결정을 얻어내기 위한 중요한 덕목이지만 여성 결정권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다양한 전문가를 활용하고자 하는 조직에 무엇이 최선인지 살펴볼 때 여성의 협동성은 좋은 점이다. 하지만 여성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살펴볼 때 협동적이라는 것은 매우 불리한 점이다. 인식의 관점에서 그것은 '우유부단'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성을 우유부단하다고 간주할 준비가 되었으므로 여성이 가능한 최고의 근거를 대며 주저하거나, 최상의 조언을 구하거나, 직원의 동의를 얻으려고 할 때조차 나쁜 평판에 시달린다. 여성은 더 좋은 결과를 낳는 의사 결정 방식을 사용할 때도 개인적인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 129쪽

협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 결정권자에게 덧씌워진 우유부단함, 주저함, 결정 미루기라는 편견을 어떻게 깨뜨리고 최선의 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저자는 '프로젝트 과정을 투명하게 오픈하고 결정의 틀을 잡아 진행 과정을 알려라'는 등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여성은 자신이 결단력 있고 협동성도 있다는 것,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결정할지 틀을 잡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이 프로젝트를 맡은 여성이라면 애초에 어떻게 진행할지 사람들에게 알려라. 자발적으로 투명해지려고 노력하라. 당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아이디어를 모을지 명확히 말하라. 그래야 사람들이 결정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잡을 수 있고, 막판에 자기 아이디어를 알리려고 당신의 방에 들르지 않을 것이다.' - 131쪽

저자는 또 '인계철선(tripwire)을 설치하면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할 때 설득력은 높이고 불안감은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자기 판단에 대한 자기 확신을 높이기 위해 매일 메모를 하고 자기 자신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내라고 조언한다.

'여성은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많은 의혹을 보내기 때문에, 이해력과 주의 깊은 사고력으로 맞서야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보다 훌륭한 판단력이 있으므로, 우리가 얼마나 현명한지 -때로 용감한지- 상기시키는 짧은 메모가 필요하다.' - 383쪽

여성의 결정은 남성의 결정보다 위험 부담이 적었으며 여성의 결정은 남성의 결정보다 효율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여성의 결정을 의심하고 같은 결정의 결과가 실패했을 때 여성에게 비난의 강도가 세고 오래가는 것은 능력의 차이가 아니다.

결정 방식의 차이를 차별로 보는 성차별적 사회인식에 기인한다. 여성은 유리 천장과 유리 절벽을 깨트려야 한다. 여성 스스로 갇힌 차별의 벽에서도 탈출해야 한다. 여성은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다름이 차별이 되지 않도록 만들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 터리스 휴스턴 / 문에출판사/ 15,800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

터리스 휴스턴 지음, 김명신 옮김, 문예출판사(2017)


태그:#여성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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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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