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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반도에는 냉전적 담론이 음습하다. 김정은의 예측불가능성 탓에 한국 언론과 정보 당국은 24시간 북한의 동향을 파악하고 뉴스를 쏟아낸다. 통신사 <연합뉴스>는 북한 전담팀을 꾸려 매일 관련 사안을 심층 보도한다. <KBS>와 <TV조선>, <YTN> 등도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주체적인 담론 생산자들이다.

그러나 매체가 많다고 해서 현안에 대한 시각과 입장이 다양하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오랫동안 한국사회에 내재한 북한에 대한 적대적 인식은 언론보도에도 고스란히 들어났다. 대부분 군사, 안보 사안으로 극단의 공포심을 유발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게 문제다. 

지난 9월 3일 함경북도 풍계리에서 강행한 북한의 제6차 핵실험을 다룬 언론 보도만 해도 그렇다. 한국과 미국 등이 일제히 북한에 비난 성명을 발표를 한 가운데 언론은 전쟁의 공포를 극대화 시켰다.

<연합뉴스>는 지난 9월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한국의 피해규모를 다뤘다. 지난 2010년 미국 랜드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10㏏급 핵폭탄이 서울에 떨어지면 최대 23만5천명이 사망할 것"이라며 "부상자까지 합한 사상자 수는 28만8천∼41만3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았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서울경제>도 지난 2016년 국가정보원이 내놓은 데이터를 공개하며 "핵폭발 효과 시뮬레이터(HYDESim)를 돌린 결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21㏏)과 비슷한 20㏏의 폭발력을 갖는 핵폭탄이 국회 상공에서 터질 경우 반경 약 4㎞ 이내 건물이 완파된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를 통해 "100㏏ 탄두가 여의도에 떨어지면 목동의 건물까지 파괴되고 서울의 서쪽은 방사능에 완전 오염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 언론도 말 폭탄을 쏟아내며 위협을 가했다. <조선중앙TV>는 지난 10일 "괴뢰 호전광들은 래년에 미국으로부터F-35A스텔스 전투기를 8대 도입한다"고 보도했고, <노동신문> 역시 사설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의 기치를 들고 반미 결전의 최후 승리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화와 제재라는 투 트랙에 나선 정부는 북한에 적극적인 평화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강대 강으로 치닫는 가운데 전쟁의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분위기다. 물론 언론이 과도하게 위기를 부추기는 점도 있지만 안보강화를 통해 북한의 도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한반도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해보면 북미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자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위기를 확대 재생산하거나 말 폭탄 보도를 늘여놓기 보다 역사적 상황을 조목조목 따져봐야 하는 까닭이다.

미국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 파국 낳아 

지난 9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있는 모습.
 지난 9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있는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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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후반 사회주의 국가들이 일제히 몰락한 가운데 북한은 최악의 경제난을 겪게 된다. 북한 당국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는 구호를 통해 주민들의 단합을 강조했고 사회적 이탈을 막았다.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빨치산이 100여 일 간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만주에서 기나긴 굶주림을 견디며 행군한 데서 유래했다.

그러다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데탕트 분위기를 적극 활용해 국제사회에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금강산 관광 개발(1998)을 비롯해 조미공동코뮤니케(2000), 개성공업지구법 공포(2002) 등으로 '열린사회'로의 국가정체성을 모색했다.

그러나 2001년 강경일변도의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 잠시 주목받았던 북한의 이미지는 순간 변화를 겪게 됐다. 힘과 경제력 우위로 상대를 제압하는 부시 정부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고립과 군사적 경고를 이끌었다. 

9·11테러가 결정적이었다. 미국은 북한을 역사상 가장 극단적 표현인 '악의 축'으로 명명했다. 국제사회에서 보여준 위협은 크지 않았지만 북한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미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주변 국가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되는 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라크 전쟁' 역사의 과오 새겨야

김진명 작가는 소설 <사드>에서 '미국은 전쟁을 필요로 하는 나라'라고 일컬었다. 위기를 부추겨 사드와 핵 잠수항, 전투기 등 미국의 전략무기를 판매함으로써 이득을 챙기는 나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부터 전쟁에 대한 광적인 증상을 보였고 주변국가에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안겼다는 점은 널리 알려졌다.

강정구 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라크전쟁과 파병>이라는 논문을 통해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함으로써 민간인 학살은 극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한국전쟁에서는 B-29, 베트남에서는 B-55 전략폭격기에 의한 대량학살이 비무장 민간인에게 무차별 전개됐다"며 "미국의 파나마 침공과 그라나다 침공, 리비아 침공 등에서도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새로 개발된 무기의 시험으로 비무장 민간인은 끊임없이 학살에 노출됐다"고 비판했다.

이라크전 역시 미국의 과도한 내정간섭과 힘의 외교, 전쟁광을 보여준 사례다. 전쟁 초기 참여정부는 파병 찬반을 놓고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한국전쟁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주장과 침략전쟁은 부인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최근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해를 놓고 언쟁을 벌이는 척화파와 주화파의 모습과 무척 닮았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도시 기반시설과 농촌 재건, 치안유지 등을 명분으로 이라크 에르빌 일대에 3000여 명의 국군 장병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법적 근거와 명분이 약했다. 유엔안보리는 미국의 무력사용에 대해 결의를 하지 않았다. 미국은 유엔헌장 51조 자위권 발동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 이어 안보리 결의를 전쟁 개시 이전에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미국은 자의적으로 전쟁을 벌였고, 국제법을 어긴 불법적인 침략전쟁이라는 오명을 낳았다.

이후 이라크전쟁을 치른 미국의 대가는 혹독했다. 2002년 발효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처벌규정한 집단살해죄, 타국에 대한 침략범죄, 국가 간 무력충돌에 적용되는 법과 관습의 중대한 위반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무장관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라크 전쟁은 불법이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강 전 교수는 "어떤 논쟁이나 토론에도 6·25전쟁 때 '우리를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만 나오면 미국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작아진다"며 "이제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되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반도에 전쟁의 꽃이 피고 있는 사이 우리 사회는 문제의 원인을 조목조목 분석하는 시간은 소홀함을 보였다. 미국에 대한 맹목적 사대주의, 언론의 위기부추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태그:#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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