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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시절 자행된 치부가 속속 들어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설전이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여당과 진보진영이 '적폐청산'을 앞세워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자, 보수야당은 '정치보복'이라며 강하게 맞서고 있다.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이냐를 두고 이른바 '프레임'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정치보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좀 어이가 없다, 이렇게 생각해요. 과거의 이명박 정권이 요즘 이야기가 많이 되고 있는데요. 보면 민주공화국을 사찰공화국, 댓글공화국, 이렇게 만든 거 아닙니까? 이런 것들을 제대로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라고 하는 게 적폐청산을 하자고 하는 건데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것을 퇴행적 시도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정말 적반하장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제가 두 가지만 지적할게요. 첫째는 이 적폐청산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이 굉징히 타겟화 돼있고. 지금 나오고 있는 정보들이 청와대에서 나온 정보라든지, 적폐청산 TF에서 나오는 정보들에 이건 정치 공세일 수밖에 없거든요. 적폐청산을 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게 있으면 검찰에서 수사를 해서 해야 되는데. 지금은 사실상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있거든요.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게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이라는 얘기고. 저는 한풀이식 정치보복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 하나의 사안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다르게 인식된다. 한 사람은 파랑 렌즈로 다른 한 사람은 빨강 렌즈로 세상을 보고 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2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권이 국정원은 물론이고 군대까지 동원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여론을 조작했다고 성토했다. 불법적인 정치 공작이 정권 차원에서 자행된 만큼 철저하게 수사해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장제원 의원은 정부여당의 적폐청산 및 개혁 작업이 기획된 표적 수사이며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청와대 행정관이 500명이 넘는다는 점을 주지시킨 뒤, 누가 어떤 의도로 작성한 것인지 불분명한 문건들을 청와대와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리고 있다고 반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한풀이 차원에서 청와대와 여당이 이명박 전 대통에게 정치보복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창과 창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전형적인 프레임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프레임은 사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틀'이다. 대중의 직관을 건드려 인식을 고착시키는 방법론이다. 그런 점에서 프레임은 논쟁적인 이슈의 본질을 휘발시켜 버리는 막강한 수단이자 도구다. 프레임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이슈를 선점하느냐에 있다. 프레임을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서 참이 거짓이 될 수도, 그 반대의 경우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주 전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소개된 배우 김규리씨의 경우가 프레임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비근한 예일 터다. 그는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지난 10년 동안 견딜 수 없는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이날 방송에서 김규리씨는 "청산가리 하나만 남게 해서 글 전체를 왜곡했던 누군가가 있을 거예요. 10년 동안 가만히 있지 않았고 제가 열심히 살고 있는 틈 사이사이에서 계속 왜곡했어요"라며 오열했다.

방송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김규리씨의 글을 왜곡한 당사자는 다름 아닌 국정원이었다. 당시 국정원이 음지에 숨어서 벌인 공작이 바로 프레임을 설정하는 일이었다. 국정원은 국민주권과 건강을 도외시한 졸속적인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김규리씨의 글을 사실과 완전히 다르게 보여지도록 본질 자체를 왜곡시켜 버렸다. 국정원은 그렇게 김규리씨의 지난 10년을 송두리째 강탈해 버렸다.

첨예하고 논쟁적인 정치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프레임을 작동시켜온 건 보수정권이었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프레임을 적극 활용하며 국면을 타개해 나갔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은 불법선거 사무실 운영 의혹과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의혹으로 선거판세가 요동치자,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며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다.

비슷한 시기에 일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사초폐기 공방'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조선일보의 악의적인 왜곡 보도를 문재인 후보에 대한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삼았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지자 돌연 그를 특별사면시킨 참여정부 책임론을 들고나왔던 것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정진석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나, 댓글 정치 원조는 참여정부라며 견강부회한 것 역시 목적은 프레임을 전환시키는 것에 있었다.

프레임 싸움은 인식의 틀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작업이다. 실제로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동안 개별 사안에 대한 본질은 희석되거나 증발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왜곡된 가공의 이미지로 치환되어 간다. '청산가리', 'NLL 포기', '사초폐기', '특별사면', '노무현 뇌물' 같은 이미지 말이다. 보수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 규정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수사해야 한다며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고도의 정치적 계산 하에 익숙한 프레임을 또 다시 가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언어심리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라는 책에서 상대방이 쳐놓은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이슈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가 하면 알베르 카뮈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라며 범죄를 단죄할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프레임 이론의 대가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작가가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이처럼 단호하고 명쾌하다.

국정원 댓글 사건, 방송 장악,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군 사이버사령부와 기무사 댓글 공작 등이 민주주의의 근간과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중대범죄 행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권력을 시민을 통제하고 체제와 정권을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철저하게 악용했다. 특히, 국가안보를 천금 같이 여긴다는 보수정권이, 극한 남북대치 상황에서 군을 정치공작에 동원한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다. 보수야당이 어떤 논리와 주장을 편다 해도 달리지지 않을 적폐청산의 본질이며, 당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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