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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장마로 인한 탄저병으로 작황이 나쁘다며 말릴 고추가 별로 없다는 김월춘 농민. 단양군 적성면 하리에서 50년째 농사짓고 있다.
▲ 고추를 갓 말려낸 김월춘 여성농민 올해 장마로 인한 탄저병으로 작황이 나쁘다며 말릴 고추가 별로 없다는 김월춘 농민. 단양군 적성면 하리에서 50년째 농사짓고 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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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윗집 살면서 장모님 50년 지기인 우리 아랫집 김월춘 아주머니는 30년 넘게 살아 온 다 쓰러져가는 집을 허물고 멋진 집을 새로 지었다. 평생 농사짓고 식당하며 모은 돈을 털어 넣었다. 평생의 소원을 칠순이 넘어서야 이루었다. 올해 열 살인 우리 마을 막내 한결이는 이 집을 '우리 마을 드림하우스'라 부른다.

얼마 전 새 집 옆에 건조기 비가림 시설을 짓고 고추를 따서 말려내고 있다. 건조기에서 말린 고추를 자루에 담고 있다. 어째 50근짜리 자루가 반도 안찼다.

"뭐, 탄저병 나서 딸 게 있어야지. 한 마끼 (400평) 좀 넘게 했는데 팔 게 몇 근 되지도 않아."
"그래도 고추금이 요새 다락 같이 오르던데요."
"오르면 뭐 해? 강 건너 불구경이지. 백 근이나 건질까? 이거 가지고는 품값에, 자재값에, 말린 기름값이나 건지겠나?"

김월춘 아주머니는 고추를 저온에서 바람으로 열흘에서 2주일 동안 말린다. 일명 바람초다. 일반 화건보다 건조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색이 좋고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아 값이 좀 더 나간다.

평생 농사 짓고 식당 하며 모은 돈으로 올 봄 새집을 지었다.
▲ 김월춘 할머니의 드림하우스 평생 농사 짓고 식당 하며 모은 돈으로 올 봄 새집을 지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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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년엔 같은 면적에서 못해도 4~5백 근은 따는데 올해는 대부분의 고추농가들처럼 기나긴 장마 탓에 탄저병 피해를 크게 입었다. 자연재해 수준인데도 농가들은 속수무책이고 정부의 지원은 없다.

가뭄과 장마에 따른 흉작으로 감자값, 채소값이 다락같이 오르지만 농민도 도시 소비자도 모두 울상이다. 정부의 수급 조절, 가격안정조절, 농가최저 소득보장이 전무하니 날씨에 따른 작황 널뛰기와 가격 폭·등락에 무대책이다.

건고추의 경우 지난해 산지에서는 600g 한 근 당 5천원 대까지 떨어졌다. 고추 농민은 생산비를 보전하는 건고추값을 1만원으로 보고 있다. 생산비에 한참 밑도는 건고추값이 몇 해째 지속되자 실망한 농민들은 고추 농사를 포기했다. 고추 농사는 가뜩이나 일손이 많이 들고 자재값이 많이 드는 고투입 작물이어서 고령화에 이은 가격 폭락세로 재배면적이 주는 추세다.

긴 장마로 인해 올해 전국적인 탄저병 발병으로 건고추값이 산지에서 근당 1만 5000원을 넘어서고 있다. 전년에 비해 두 세배 높은 시세가 형성되고 있다. 날씨에 따른 작황불량으로 농산물 시세가 폭등하는 건 고추뿐이 아니지만 가격 폭등과 폭락을 농민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가격 폭등은 농민들이 팔 농산물이 없음을 뜻한다. 가격 폭락은 공급과잉으로 생산비 보전을 못함을 뜻한다.

50근짜리 고추 포대에 말린 건고추가 절반 뿐이다. 올해 작황이 나빠 수확량이 1/4로 줄었다.
▲ 홀쭉한 건고추 포대 50근짜리 고추 포대에 말린 건고추가 절반 뿐이다. 올해 작황이 나빠 수확량이 1/4로 줄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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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농민들은 개헌 흐름에 발맞추어 농민헌법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노동자에게 헌법으로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것처럼 가격 폭·등락이 없이 농민의 생계를 보장하는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농민수당 등을 헌법에 담기를 바라는 것이다.

농업을 나라의 근간이자 공공재로 여기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농민이 안정적으로 농사짓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도시인도 먹을거리 걱정 없이 각자의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

칠순을 훌쩍 넘긴 김월춘 여성 농민이 뼈 빠지게 고추농사 짓고도 울상이 되지 않는 나라라야 온 농민이, 온 국민이 행복할 수 있다.

50년 넘게 농사지으며 산전수전 다 겪은 김월춘 아주머니가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지만 농민을 천대하는 세월 앞에서 속마음이야 어디 그럴까?

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에서 10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유기농민, 블로그 단양한결농원으로 농사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농민회총연맹 단양군농민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초저비용 유기농법과 천연농약을 연구하는 <자연을닮은사람들>에도 게재합니다.



태그:#건고추, #농민헌법,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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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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