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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폰>
 <캐빈 폰>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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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부터 한국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했습니다. 열심히 경쟁하라고 부추기기도 했죠.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성공하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늦게까지 일하는 삶도 원하지 않습니다."

나영석 CJ E&M 프로듀서의 말입니다. 그는 <삼시세끼>나 <윤식당> 같은 새로운 장르의 예능을 개척해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이런 그가 지난 6월 18일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지루함의 힘'이라는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세계 최고 광고제'라는 칸 라이언즈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담을 공유하는 자리였습니다.

나영석 피디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경쟁이나 미션 등을 제거하고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라고 포장한 먹고 노는 경험을 선보였습니다. 집세나 전기요금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걱정이 없는 장면들 말입니다. 그는 프로그램을 통해 판타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이를 가리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판타지'(Affordable Fantasy)라고 불렀습니다.

바쁜 도시를 벗어나 시골의 느긋한 삶을 꿈꾸는 판타지의 정점에 '내 손으로 집짓기'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고 '버킷 리스트' 어딘가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겠지요. 꿈과 현실은 백지장 한 장 차이일 수 있어 마음먹기에 따라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남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나도 할 수 있는 판타지로 변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속에 품은 집

<캐빈 폰>에 소개된 집 가운데 하나
 <캐빈 폰>에 소개된 집 가운데 하나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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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언제든 짓기만 하면 되는 통나무집 한 채를 마음속에 품고 삽니다."

<캐빈 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무, 바람, 흙 그리고 따뜻한 나의 집'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비메오'의 공동 설립자 자크 클라인이 기획했습니다. "최대한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 근처에서 자재를 구해 수작업으로 지은 1만2000채가 넘는 나무집에 대한 사연과 사진"을 모아 그 가운데 열 가지의 특별한 이야기와 사진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렇다고 화려한 주택만을 소개한 것은 아닙니다. 포털 사이트 부동산 섹션에 등장하는 그림 같은 집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자동차로도 갈 수 없는 오지에 아버지와 아들이 지은 농가 주택이나 다 쓰러져 가는 사막의 소형주택을 뜯어고친 부부 이야기 같은 현실적인 집들이 주를 이룹니다. 유명 건축가의 멋진 전원주택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관심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원시원한 사진이 눈길을 끕니다. <캐빈 폰>(Cabin Porn)이라는 제목을 직역하면 '오두막 포르노'인데 그만큼 시각적으로 강렬한 사진이라는 의미입니다. 번역하면서 차마 그 단어를 한국어로 쓸 수 없어 고육지책으로 원제를 소리 나는 대로 쓴 듯합니다. 의미를 잘 살려 말맛이 살아있는 우리말 제목으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보다 더 직관적인 단어를 찾는 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책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내미는 다양한 집들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잊었던 버킷 리스트를 꺼내 들게 하는 안내서로서 제격이지요. 혹시라도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판타지'가 자극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구호가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들리는 대한민국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덧붙이는 글 | 캐빈 폰 - 나무, 바람, 흙 그리고 따뜻한 나의 집, 자크 클라인(기획), 스티븐 렉카르트(글), 노아 칼리나(사진), 김선형(옮김), 판미동 펴냄, 340쪽, 2017년



캐빈 폰 - 나무, 바람, 흙 그리고 따뜻한 나의 집

스티븐 렉카르트 글, 김선형 옮김, 노아 칼리나 사진, 자크 클라인 기획, 판미동(2017)


태그:#캐빈 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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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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