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집앞에 사는 치즈냥. 이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 버림 받았다. 그런 탓인지 눈빛은 늘 슬퍼 보인다. ⓒ 지유석
길고양이들은 엄연히 도시 생태계의 일원이자 우리의 이웃이다. ⓒ 지유석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주변엔 길고양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전국 어딜 가도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들은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새삼 이들의 존재가 특별하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 동네엔 유난히 태어난 지 5개월이 안 되어 보이는 새끼 고양이들이 많다. 몇몇 녀석들은 어미가 돌보지만, 대부분이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녀석들이다.

길고양이들에게 먹을거리를 챙겨주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선배 캣맘으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듣는다. 그런데 그 캣맘 하는 말이 "고양이는 모성이 강하지만 어미가 기르기 힘들면 새끼들을 버리고 간다"고 했다.
집 주변엔 유독 어미에게 버림 받은 새끼 고양이들이 많다. ⓒ 지유석
집앞에 사는 치즈냥. 이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 버림 받았다. 그런 탓인지 눈빛은 늘 슬퍼 보인다. ⓒ 지유석
마침 엄마에게 버림 받은 치즈냥이(노란 빛깔의 고양이 - 글쓴이) 형제가 바로 집 앞에 산다. 이 둘의 얼굴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기가 막혔다. 두 녀석들의 식탐이 대단해서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면 서로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투다가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그 중 한 녀석은 덩치 큰 고양이에게도 덤벼들어 하루도 성한 날이 없다고 했다.
한 번은 심하게 병든 새끼 고양이가 처연하게 우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갔지만 오래 살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놓아줘야 했다. 이 녀석은 오래가지 않아 고이 잠들었다. ⓒ 지유석
한 번은 새끼 고양이 한 녀석이 아파트 입구에서 처연하게 우는 모습도 봤다. 보기에도 확실히 심하게 아파 보였다. 그래서 경비원 아저씨의 도움으로 붙잡아 동네 주변의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녀석의 상태를 보던 수의사는 복막염 같다며, 병들어 어미한테 버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래 살지 못하니 잘 놓아 주라는 말을 건넸다. 그 사이 이 녀석은 가쁜 숨을 몰아 쉬었고, 놓아 준 지 얼마 안 가 고이 잠들었다.
집앞에 사는 치즈냥. 이 녀석은 식탐이 대단해서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 지유석
길고양이들이 밥 먹을때 만이라도 경계하지 않고 마음껏 먹기를 바란다. ⓒ 지유석
마침 아파트 입구엔 주민들이 놓고 간 참치캔, 사료, 물 등이 가득했다. 신문, 방송을 통해 길고양이 학대 소식이 심심찮게 불거지는데, 아직 우리 동네 인심은 그렇지 않구나 하며 안도했다.

반면 엄마가 돌보는 새끼들은 참 반듯하고 귀엽다. 처음에 먹을거리를 놓아주면 내가 자취를 감추고 나서야 먹으러 왔다. 한 달 가량 지나고 나니 이제는 먹을거리를 가져오면 어슬렁 어슬렁 주위를 맴돌다 밥그릇을 깨끗이 비운다. 어미는 그 모습을 야산에서 말똥말똥 지켜보기만 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치즈냥 형제의 눈빛은 언제 봐도 슬픔 가득하다. 길고양이에게 사료나마 가져다 주면서 참 소중한 무엇인가를 건져 올린 것 같다.
집앞에 사는 치즈냥 형제. 이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 버림 받았다. 그런 탓인지 눈빛은 늘 슬퍼 보인다. ⓒ 지유석
길고양이들은 먹을거리를 주면 허겁지겁 먹다가도 인기척이 들리면 얼른 피한다. 먹는 동안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지금은 그나마 바로 한 걸음 앞까지는 갈 수 있다. 한 번은 혹시 한 번 만져 봐도 좋지 않을까 하고 가까이 다가가니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피했다.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야속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사람에게 쉽게 곁을 내주는 길고양이가 학대에도 노출되기 일쑤다. 그래서 야속한 마음은 접고 그저 먹는 모습만 먼 발치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져다 준 음식을 잘 먹는 녀석들을 보면 그냥 흐뭇한 마음뿐이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의 다정한 한 때 ⓒ 지유석
이따금씩 어미의 돌봄을 받는 새끼들을 본다. ⓒ 지유석
길고양이들이 한가로이 오후를 즐기는 세상이 오기 바란다. ⓒ 지유석
9월 9일은 한국의 '고양이의 날'이다. 인터넷 매체 <길고양이 통신>을 운영하는 고경원씨의 제안으로 2009년부터 행사가 열려왔다. 고 작가는 이날을 제안하면서 "그날 하루만큼은 고양이를 미워하는 사람도 고양이를 한 번쯤 생각하길 바란다"는 취지를 전한 바 있다.

좋든 싫든 길고양이는 도시 생태계의 일원이고, 무엇보다 살아 숨쉬는 생명체다. 이들이 먹을거리를 찾아 떠돌지 않도록 끼니때마다 먹을거리를 챙겨주는 건 이웃에 대한 작은 배려 아닐까?

거창하게 '고양이의날'이 아니더라도 길고양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니 매일 밥 먹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주변을 경계하지 않고, 다른 녀석들과 싸우지 않고 맛나게 잘 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식사를 해결한 뒤,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부지런히 자기 몸을 핥았으면 좋겠다.

또한 길고양이에게 부지런히 먹을거리를 배달하는 캣맘, 캣대디들도 행복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가끔씩은 어미의 돌봄을 받는 새끼 고양이들이 보인다. ⓒ 지유석
태그:#길고양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