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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여명의 황새울'은 새벽 5시에 시작됐다. 구름처럼 몰려든 진압경찰과 미군기지 안에서 '작전상황'을 지켜보는 군경 지휘관들.
▲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은 새벽 5시에 시작됐다. 구름처럼 몰려든 진압경찰과 미군기지 안에서 '작전상황'을 지켜보는 군경 지휘관들.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은 새벽 5시에 시작됐다. 구름처럼 몰려든 진압경찰과 미군기지 안에서 '작전상황'을 지켜보는 군경 지휘관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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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4일,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로 남아 있는 이름이다. 당시 참여정부는 군과 경찰을 동원해서 대추 초등학교 철거를 막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강제로 연행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으로 수많은 시민이 다쳤다. 주민들이 몸소 벽돌을 짊어져 나르고 한푼 두푼 모아서 만들었던, 유리창마다 당시 마을 주민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정성스레 그려져 있던 그 학교는 결국 경찰의 폭력 진압이 휩쓸고 간 뒤 부서진 건물 잔해의 폐허로 남겨졌다.

2017년 9월 6일 꼭두새벽, 경북 성주의 작은 마을 소성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 시민들을 경찰이 강제로 해산 시키고 사드 포대 4기를 추가 반입해서 임시 배치를 완료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여명의 황새울 때와 이번 소성리 사드배치는 다르지 않으냐고. 물론 다르다. 당시 대추리에는 13000여 명의 경찰과 3000여 명의 군인이 동원됐고 약 500명의 시민이 연행되거나 부상당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뒤통수가 찢어지는 사람들이 다수 발생하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반면 소성리에는 군대가 출동하지 않았고, 시위대를 연행하기보다는 주로 해산 시켰으며,그 과정에서 시위대가 다치기도 했지만 부상자의 숫자나 부상의 정도가 대추리보다 덜하다.

하지만 과연 10년 전 대추리보다 고작 이만큼 좋아진 것에 만족해야 하는가? 국가가 공권력을 앞세워 작은 시골마을을 파괴하는 본질은 그대로인데, 경찰의 폭력이 좀 누그러진 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인가?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바라던 것이 이 정도였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 전체회의장에서 열린 '제3차 동방경제포럼 전체 세션'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 전체회의장에서 열린 '제3차 동방경제포럼 전체 세션'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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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문재인에게 걸었던 기대

나는 그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통령 문재인에게 기대가 큰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나 같은 사람들의 기대도 반영된 수치다.

내가 그에게 기대를 건 이유는 그가 참여정부의 실질적인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참여정부 시절 이라크 파병,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한미FTA 등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특히 용산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대추리 주민들이 겪은 심각한 국가폭력과 공동체의 붕괴를 보면서 참여정부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참여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후 강정에서, 밀양에서 똑같은 일들이 반복됐다. 이건 특정 정부의 실패라기보다는 아직 한국 사회가 이런 류의 사회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권변호사였고 서민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면 그런 식은 아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압박이 너무나 거세서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성공한 것들은 그대로 계승하면서, 실패한 것들은 참여정부를 거울삼아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복잡한 방정식인 사드 문제 또한 최소한 참여정부 시절 대추리 때보다는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주 소성리에 사드 배치 과정을 보면 이런 기대를 심하게 배반한다. 국가가 안보를 핑계 삼아 국민들의삶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반성하고 성찰하길 바랐는데, 작은 마을 몇 안 되는 힘없는 주민들을 세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잊은 건 아닌지,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7일 사드배치를 앞둔 성주에서 경찰이 스크럼 짜고 있는 시민들을 한 명씩 뜯어내고 있다.
 7일 사드배치를 앞둔 성주에서 경찰이 스크럼 짜고 있는 시민들을 한 명씩 뜯어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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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함과 소통, 왜 소성리에는 예외였나

대통령 문재인에게 특별한 기대를 걸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보여준 신중함과 소통 능력 때문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은 무척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 박근혜 후보의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가만히 들어주는 모습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깊게 남겼다. 올해 대통령 선거 때도 전보다는 단호해졌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타인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보여준 모습은 더더욱 감동적이었다. 광주 5.18민주화운동 유가족을 위로하는 모습, 길을 지나다 시민들을 만날 때의 태도 등을 볼 때면 그의 가장 큰 장점이 탈권위주의에 기반한 소통과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충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생후 3일 만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 생후 3일 만에 아버지 잃은 김소형씨,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생후 3일 만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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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자연인 문재인이 가진 능력으로서 대통령 업무 수행에 장점이 되리라고 생각한 것은 몸에 밴 신중함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속 시원함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중함은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대통령의 업무를 수행할 때 불확실성을 줄이고 실수할 확률을 줄여 실보다 득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사드 배치에서는 특유의 소통과 공감 능력, 신중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공약집에 명시한 사드 배치에 대한 국회의 비준 동의 추진은 청와대의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김천, 성주 주민들이 대선 기간 보낸 사드 질의서에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대답했지만, 동의는커녕 설명이나 설득도 부족했다.

상황이 바뀌거나 입장이 바뀔 수는 있다. 그랬다면 적어도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고 입장이 어떤 식으로 달라졌는지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소통과 공감을 잘하는 대통령이라면 더더욱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설득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성소수자들의 외침에 '사회적 합의'를 외치는 '신중한' 모습은 사드 배치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드야말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김종대 의원을 비롯한 합리적인 자주국방론자들조차도 사드 배치의 절차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드 자체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더더욱 사회적인 합의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사안 아닌가.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왜 이렇게 막무가내로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가지는,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모습들이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에 의해 배반당하는 것 같다는 거다.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가 강행된 7일 오전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앞에서 열린 규탄 기자회견 도중 한 주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눈물 흘리는 성주 주민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가 강행된 7일 오전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앞에서 열린 규탄 기자회견 도중 한 주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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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얻는 자와 피해 보는 자, 논의 시작해야 할 곳

평화주의자들은 종종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나는 오히려 군사 안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들이야말로 현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드만 보더라도 그 효용성 자체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 마치 그것이 있어야만 우리의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전에서 한 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는 사드의 효용성을 점쟁이 점치듯 장담하는 태도야말로 현실주의와 가장 거리가 멀다. 평화와 안보를 오직 군사적 수단에만의 존하겠다는 생각이야 말로 가장 비현실적이다.

사실 사드 효용성에 관한 논쟁은 다소 뜬구름 잡을 수밖에 없다. 한 번도 실전에서 사용된 적이 없으니 각자의 추측과 예상으로 토론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사드 배치는 사람들 눈 가리고 한밤중과 꼭두새벽에 도둑놈 담 넘듯 후다닥 해치울 일이 아니라, 신중하고 진지한 사회적 토론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가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이런 토론은 현실주의에 입각했을 때 더 생산적으로 진행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드와 관련해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현실주의에 입각한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한반도 사드 배치로 이익을 얻는가? 반대로 사드 배치로 피해를 보는 건 누구인가?" 이익을 얻는 건 사드의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이고 피해를 입는 건 성주 주민이다. 사드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사드 배치 찬성론자든 반대론자든 이견이 있기가 힘들다. 여기서 토론이 시작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것

국민의 삶을 망가뜨리는 건 안보도 국익도 아니다. 과거 보수정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정권에서도 국가안보나 국익 같은 거대한 이데올로기로 국민들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때마다 정부는 그 사업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 떨었지만, 그토록 중요한 안보와 국익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은 없다. 혹은 안보와 국익을 얻기 위해 다른 방법이 있는지를 검토하거나 고려한 적도 없다. 늘 뜬구름 잡는 안보와 국익을 위해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해왔다.

아무리 소수라도 하더라도, 아무리 평범한 시골 주민이라고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안보를 깨뜨리는 일이다. 북한 미사일만이 국민의 안보를 위협하는 게 아니다. 백남기 어르신을 돌아가시게 했던 공권력, 세월호 참사 때 보여줬던 정부의 무능함과 무책임함 모두 국민의 안보를 심하게 해쳤다.

나는 이번 사드 배치가 내용과 절차 면에서 모두 굉장히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 아직 문재인 정부에게 한 번의 잘못을 만회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임시'로 배치한 만큼 즉각 배치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와 토론을 시작하길 바란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이 국민이라는 것을, 그 국민에는 성주 소성리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포함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보수정부가 하는 것처럼 뜬구름 안보 불안을 자극하고 공포를 확산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안심하고 평화를 누리며 일상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진짜 안보를 위한 정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용석씨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입니다.



태그:#사드 배치 , #여명의 황새울,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랍니다 , #성주 소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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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게 되고, 평화주의자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출판노동자를 거쳐 다시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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