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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등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5년형을 선고 받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등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5년형을 선고 받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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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5일, 온 나라의 눈과 귀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1심 판결에 쏠렸다. 법원은 450억 원이 넘는 뇌물공여 혐의 중 204억 원에 달하는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지원 부분이 "대통령의 적극적 지원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대가성이 없다"고 보아 무죄로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징역 5년이라는, 양형기준을 벗어난 최저형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의 하루 전인 8월 24일, 부산고등법원은 2010년 현대차비정규지회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 파업을 지원한 4명의 노동자에게 현대차에 대한 20억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항소심 판결(부산고등법원 2017.8.24. 2013나9475, 재판장 조용현)을 내렸다.

이 판결이 나오고 나서 며칠 후, 당사자 중 한 명인 최병승씨에게서 "20억 판결 받았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순간 머리가 멍멍해진 나는 "상고하실 수 있나요?"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그는 "돈 문제로 아마 포기해야 할 듯합니다"라는 답문을 보내왔다. 짧은 메신저 대화였지만 수많은 울분이 오고 간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짧게 잡아도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로 일하다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벌였다는 이유로 2005년 해고된 최병승 등 2명의 부당해고 사건에서,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원심 파기환송을 선고하였다.

노조원 압박하는 도구가 된 손해배상청구

지난 2013년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비정규직노조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
 지난 2013년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비정규직노조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
ⓒ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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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가 월차휴가를 신청하려다가 사내하청 관리자에게 칼로 찔리는 폭력을 당하고 나서, 노동착취에 저항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아산공장과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지회를 결성하였다.

비록 사내하청노동자가 '하청'업체와 근로계약서를 쓸진 몰라도, 실제 일하며 지휘감독을 받는 곳은 '원청'인 현대자동차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현대차가 파견법을 위반한 위장'하도급'을 사용하고 있으며 사내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한다.

2004년 11월, 노동부는 현대차의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임을 확인했고, 비정규직지회는 2005년 1월부터 현대차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쟁의행위를 진행했다. 이 일로 인해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수십 명의 조합원이 해고를 당했고, 해고자들이 생활고로 인해 부당해고 소송을 포기하고 떠난 후 남은 2명의 노동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2010년에 나온 것이다.

2010년 대법원 판결로 2004년부터 비정규직지회가 주장해왔던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의 정당성이 확인되었고, 판결 이후 지회는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현대차 사측과의 특별교섭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현대차 사측은 자신들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지회의 교섭요구를 거절했고, 오히려 조합원이 소속된 사내하청업체의 폐업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격분한 조합원들이 2010년 11월 15일부터 25일간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이 2010년 파업 참여자에 대해서 현대차 사측이 청구한 손해배상액만 어림잡아도 220억 원을 넘는다. 이후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다양한 투쟁을 계속 이어나갔다. 현대차 사측도 추가적으로 손해배상 청구·가압류를 진행하여, 노조에서 잠정집계한 것만으로도 청구액이 374억 원을 넘는다. (관련 기사 : "평생 벌어도 못 만질 돈... 한마디로 살인적인 판결")

이는 이제까지 노동자 파업에 사용자가 청구한 손해배상액 규모로도 최대이지만, 현대차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노조 탄압에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새로운 모델(?)을 창출했다. 사측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이나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소송을 취하하거나 비정규직지회를 탈퇴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를 선별적으로 취하해주는 방식으로, 투쟁을 계속하려는 조합원들을 압박해 갔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현대차가 고용해야 할 근로자임을 법적으로 인정받고도 장기화된 해고로 인한 생활고, 파업참가를 이유로 한 월급 압류, 도대체 언제쯤 소송이 확정될지 알 수 없는 불안감 등에 시달렸다. 결국 소송을 취하하거나 아예 현대차를 떠났다.

결국 끝까지 현대차를 상대로 한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노동자 5명(1심 청구대상은 27명이었음)에 대해 90억 원의 손해배상 인용 판결(부산고등법원 2017.1.25. 2014나1119)이, 최병승 외 3명(1심 청구대상은 29명이었음)에 대해 20억 원의 손해배상 인용 판결이 올해 나온 것이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를 비롯한 노동법률가단체들은 그동안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헌법상 기본권 행사로서 정당할 뿐 아니라, 파견법 위반의 사내하청을 계속 사용하고 비정규직 노조를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해온 현대자동차 사용자의 처벌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정당한 쟁의행위에 참여한 노동자들에 대한 현대차의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는 법원에서 인용해서는 안 되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무기로 활용하여 사측을 상대로 한 소송 취하, 노조 탈퇴 등을 압박하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임을 주장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아 노동부와 검찰에 고소·고발도 진행하고 법원에 전문가 의견서도 제출했다.

수십 년 치 연봉에 이르는 손배, '권리남용' 아니라는 법원

지난 2014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단식농성 돌입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사측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조속히 판결해줄 것을 촉구했다.
 지난 2014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단식농성 돌입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사측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조속히 판결해줄 것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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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고등법원 판결의 피고인 4명을 살펴보면, 불법파견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이자 2010년 파업 당시 금속노조 미조직 비정규사업국장이었던 최병승, 당시 금속노조 단체교섭국장이었던 박점규,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연대하며 대체인력 저지를 하였던 정규직 현장간부가 포함돼 있다.

현대차의 사내하청 활용이 파견법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당사자이자 상급단체 간부로서 비정규직 투쟁을 지원하는 것이 임무인 사람들과,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한 정규직 노조의 간부에 대해서만은, 현대차가 끝까지 고통을 주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부산고등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시하며 너무도 '간단히' 사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피고 엄길정, 박점규, 최병승, 김형기는, 이 사건 청구금액이 천문학적 금액의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거액의 당기순이익을 벌어들이는 원고에게는 그다지 큰 금액이 아니지만 피고들에게 있어서는 수십 년 치의 연봉에 해당하는 거액으로 이 사건 청구는 피고들을 비롯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임이 분명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중략) 위 피고들의 불법적인 업무방해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에게 거액의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였다. 원고는 매출이익의 손해를 모두 제외하고 손해의 일부분인 고정비만을 전보받기 위하여 이 사건 청구를 하는 이상 이를 권리남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위 피고들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쉽게 말하자면 '파업을 주도하였더라도 사측이 요구한 소송 취하 등을 수용한 노동자는 손해배상에서 빼 주고, 5명의 비정규직에게서 90억 원을, 4명의 연대자들에게서 20억 원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노동자를 괴롭히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법원은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 노동법률가들을 분노하게 한 것은 바로 법원의 이러한 맹목성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 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자의 쟁의행위는 기본적으로 사용자에 대한 업무방해이자 불법행위라고 전제하며 헌법을 무시한다.

노동자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사용자의 괴롭힘, 노동자 연대의 파괴, 노동조합 파괴에 대해서는 전혀 살펴보지 않는 무심함,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파업에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가 죽을 때까지 갚아도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인권 무시... 모두 나열하기도 힘든 사법부의 맹목성에 다시금 치를 떨게 된다.

돌이켜보면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공장의 사내하청 전원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내리고, 2010년 대법원 판결이 나고, 지금까지 현대차의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현대차 사측의 그 누구도 처벌 받은 바 없다. 불법파견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노동부는 현장의 노동자파견을 폐쇄할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를 비롯한 대기업 불법파견에 이를 이행한 적이 없다.

검찰은 2006, 2007년 계속 파견법 위반에 관해 현대차 사측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2010년 금속노조의 고발과 2013년 국민고발단의 고발에 대해서 모두 혐의없음 내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지난 연말 현대기아차그룹이 삼성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액수인 128억 원을 미르·케이 재단에 지원했음이 밝혀졌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법을 우롱하는 재벌 사용자는 처벌받지 않지만, 법에 따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운 노동자들은 해고에 징역살이에 이제 평생을 벌어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손해배상을 홀로이 감당해야 한다. 현대차비정규지회는 각종 소송의 인지대만으로도 수억 원을 지불해야 했다. 올 초 90억 원의 손해배상을 판결을 받은 5명은 1억 원에 가까운 상고심 인지대를 감당할 수 없어 상고를 포기하였다.

이번에 20억의 손해배상을 맞은 4명 역시 1500만원이 넘는 인지대를 9월 11일까지 마련할 수 있어야만 대법원에 상고를 할 수 있다. 의리와 원칙을 지킨 노동자들이 인지대가 없어 자본과 정부·법원의 부당한 탄압을 홀로 감내하도록 둘 수 없어 이들의 소송비용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진행되었고, 모금운동 7일 만에 목표액을 채웠다.

동료 노동자들, 시민들, 학계와 법조계에서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주셨다. 이제 의리와 연대를 택한 노동자 4명은 다시금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불법을 자행하는 현대차가 노동자에 대한 괴롭힘을 중단하도록, 노동부와 검찰이 법에 따라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사용자를 처벌하도록,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원천적으로 불법이라고 보는 사법부의 맹목성이 깨질 수 있도록, 우리는 함께 싸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윤애림 교수는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소속입니다. 이 글은 필자가 작성한 <매일노동뉴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노동자 4명에게 20억원 물어내라는 법원' 칼럼(2017.8.31)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추가하여 보완한 글입니다.



태그:#현대차, #비정규직, #사내하청, #최병승, #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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