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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에 있는 ‘시문학파 기념관’. 입구에 용아 박용철·영랑 김윤식·정지용 시인의 동상이 서있고, 정인보·이하윤·변영로·김현구·신석정·허보등 시문학파 9인의 얼굴이 동판 부조로 새겨져 있다. 뒤편에 보이는 초가집은 영랑 김윤식 시인의 생가이다
 전남 강진에 있는 ‘시문학파 기념관’. 입구에 용아 박용철·영랑 김윤식·정지용 시인의 동상이 서있고, 정인보·이하윤·변영로·김현구·신석정·허보등 시문학파 9인의 얼굴이 동판 부조로 새겨져 있다. 뒤편에 보이는 초가집은 영랑 김윤식 시인의 생가이다
ⓒ 시문학파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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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란 인류가 야생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습득되는 생활양식을 말한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풍습·종교·학문·예술 및 각종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21세기는 결국, 정신적 소산인 '문화와 예술'이 삶의 질을 높이는 결정적 요소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밥만 먹고사는'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흔히들, 광주를 일컬어 '문화중심 도시', '예향(藝鄕)의 도시'라고 부른다. 광주의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문화와 예술의 중심에는 '문학'이 있다. 문학은 문화·예술의 기초 학문과도 같은 것이다. 예향 광주에는 문학의 산실(産室) 역할을 하는 문학관이 하나도 없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문학관이 없는 도시는 새로 생긴 신도시인 세종시와 광주광역시 단 두 곳뿐이라고 한다. '문화수도(文化首都)'라는 말이 민망하다. 광주시민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도 부끄러울 뿐이다. 예향 광주의 정체성과 위상을 높여줄 문학관 건립을 서둘러야 할 때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작가나 문학을 콘텐츠로 하는 문학관이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지역마다 들어서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자기 지역 출신 저명 작가의 작품이나 창작정신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도시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관광상품으로써 역할을 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문학관의 건립과 운영을 통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으며 일정 부분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학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문학의 본래 취지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어쨌거나, 문학관은 늘어가는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매개체임은 분명하다. 문학을 브랜드로 지역을 알리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양평과 강진군에서 배우자

많은 문학관 중에서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은 특별하다. 황순원 문학관이 양평에 들어서게 된 계기는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마지막 부분에 있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이 모티브가 되었다. 이문장 하나에 양평군은 124억 원을 투자하여 3층짜리 문학관 '소나기마을'을 조성하게 되었다. 문학의 힘은 세다. 아니다. 문학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양평군의 문화정책이 위대한 것이다.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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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문학관 소나기 마을은 문학작품을 토대로 지역에 '테마파크형 문학관'을 조성하여 호평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황순원이 경희 대학교 교수를 지낸 인연으로 양평군과 경희대학교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지방자치 단체와 대학'이 공동으로 테마공원형 문학관을 건립하고 운영해가는 모범적인 사례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9년 건립된 소나기 마을은 양평군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북한강변을 따라 황순원 문학촌 가는 길은 미술관·전원주택 등이 늘어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양평 소나기마을은 서울과 인접하여 접근성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문학관이 주변 환경과 결합하여 관광 상품화되는 사례다. '문학관 건립시 입지 선정의 중요성'을 역설해주고 있다

우리 고장 전남 강진으로 가보자. 지난 3월 강진에 경사가 났다. 한국문학관 협회에서 강진 '시문학파 기념관'을 2017년 '대한민국 최우수 문학관'으로 선정했다. 이로서 강진이 문학의 고장으로 당당하게 인정받은 셈이다. 시문학파 기념관은 특정 작가나 작품에 한정하지 않고 한 시대를 조망하는 국내 유일의 '문학유파' 문학관이다. 1930년대 창간된 <시문학>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했던 시인들을 '시문학파'라고 한다. 핵심 인물은 용아 박용철·영랑 김윤식·정지용을 중심으로 정인보·이하윤·변영로·김현구·신석정·허보등 9명의 시인이다.

2012년에 개관한 시문학파 기념관이 대한민국 최우수 문학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문학관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들과 쌍방향으로 소통했다는 점이다. 토크쇼 형태의 '화요일 밤의 초대 손님'이나 '영랑생가 감성 콘서트' 등은 관람객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요소이다. 문학관 운영의 '롤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시문학파 기념관의 성공적 배경에는 강진군의 행정적 뒷받침이 컸다. 강진군은 문학관 설계 단계에서부터 박사급 문학콘텐츠 전문가를 관장으로 임용해 2년여 동안 전국 문학관의 사례조사 결과를 꼼꼼히 분석해 '맞춤형 모델'을 구축했다. 전문인력의 튼튼한 기획력과 행정적인 뒷받침 그리고 다양한 문학적 콘텐츠가 결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로서 강진군은 '지역문화지수'가 가장 높은 도시로 선정되어 '감성여행 1번지'가 되었다.

2017년 ‘대한민국 최우수 문학관’으로 선정된 전남 강진의 '시문학파 기념관' 전경
 2017년 ‘대한민국 최우수 문학관’으로 선정된 전남 강진의 '시문학파 기념관' 전경
ⓒ 시문학파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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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문학관이 있어야 할 광주'의 현실은

'한국 문학관 협회'에 따르면 전국에는 68곳의 문학관이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15개·강원지역 8·충청권 10·영남권 20·호남권 14·제주 1곳이 있다. 이 중에서 문학관의 명칭을 강원도 인제의 '박인환 문학관'이나 경북 안동의 '이육사 문학관'처럼 지역의 대표 작가의 이름을 딴 작가 중심의 문학관이 제일 많다. 다음으로는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박경리의 토지문학관'처럼 작품과 테마를 결합한 문학관이 있다. 또한, 대전 문학관·마산문학관·목포문학관 같이 지역의 명칭을 그대로 문학관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

'문학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이들 도시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광주광역시 인구 150만 명 중에서 문학 동호인이나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공부하는 학생들 그리고 작가 지망생들을 헤아려 본다면 그수가 적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미술관·음악당·체육관을 보면서 문학인들을 너무 홀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광주는 수많은 '문학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 시문학파의 실질적 창시자였던 용아 박용철과 한국 문단에서 걸출한 작가를 배출했던 다형 김현승 시인의 숨결이 들리지 않는가. 작년 5월, 소설 <채식주의자>로 노벨문학상·프랑스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역시 광주의 딸이 아니던가. 한국 문학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광주 문학의 소중한 자산을 담아 놀 그릇이 없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물 들어올 때 배 띄우자

그동안 광주 문학관 건립에 관한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광주 문인 들을 중심으로 20여 년 전인 1996년에 전국에서 최초로 문학관 건립을 논의했다. 그 뒤 2009년 타당성 조사에 이어 2010년 용역보고서까지 나왔다. '빛고을문학관'이라는 이름으로 122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동구 운림동 무등 현대미술관 건너편에 2012년 말까지 완공할 예정이었다. 광주 문협을 중심으로 '빛고을 광주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러던 중 광주시가 해당 자치구인 동구와 상의 없이 빛고을 문학관을 남구에 있는 광주공원 어린이 놀이터에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해당 자치구인 동구 의회의 반발로 문학관 건립은 좌초되었다.

지난 7월 17일 광주시와 광주시 의회·광주 문인협회·광주전남 작가회의 주제로 ‘광주문학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 간담회’가 열렸다
 지난 7월 17일 광주시와 광주시 의회·광주 문인협회·광주전남 작가회의 주제로 ‘광주문학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 간담회’가 열렸다
ⓒ 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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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건립이 좌초된 지 4년째인 올해 광주문인협회 임원식 회장의 주도로 문학관 건립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7월 17일 광주시와 광주시 의회·광주 문인협회·광주전남 작가회의 주제로 '광주문학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4명의 공동위원장을 선임했으며 광주문학관 건립을 촉구하는 4가지 결의사항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또 있다. '광주의 힘'으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 중에 광주문학관 건립이 포함되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시인(詩人)이다. 절호의 기회가 왔다. 문대통령과 도종환 장관, 광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지 않은가.

이번만큼은 문학계와 광주시가 '사분오열' 되지 말고 힘을 합하여 '광주 문학의 진수'를 담아낼 아름다운 문학관을 만들어주길 시민의 한 사람으로 간절히 소망한다. 물 들어올 때 배 띄우자.


태그:#광주 문학관, #문화수도, #예향의 도시, #시문학파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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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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