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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1일 평양주민 김련희 송환촉구모임의 주최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김련희 씨가 소감을 말하고 있는 모습.
▲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기념회 2017년 8월 31일 평양주민 김련희 송환촉구모임의 주최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김련희 씨가 소감을 말하고 있는 모습.
ⓒ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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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분단의 장기화로 크게 달라진 남북의 언어문화는 통일을 해도 그 차이를 극복하기 힘들 거라고. 이후 '진짜 그럴까?'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줄곧 박혀있었는데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참 답답했다.

알고 보니 언어표현은 처음부터 달랐다. 그야 남쪽의 기준에서 북쪽의 문화어(표준어를 이르는 북한말)는 사투리니까 당연한 이야기.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도 정답이 아니더라. 외래어를 적극 차용하고 있는 한국어와 그렇지 않은 문화어는 살짝 다르지만 그 '약간'을 제외하면 대화에는 전혀 막힘이 없었다.

1969년 11월 21일 평양시 동대원구역 삼마동 태생.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의 저자, 스스로 탈북자가 아닌 평양시민임을 자처하는 김련희 씨는 국정원과 긴밀하게 연계된 '탈북 브로커'에 속아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게 됐으니 자신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북한)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참 이상한 일 아닌가. 내가 군사 훈련소에 있을 적 훈련생 교육(?)을 위해 방문한 탈북자(를 자처한) 남성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으로 와서 정말 살기 좋다'는 취지의 강연(인지 악쓰기인지 모를 거친 발언)을 했다. 그 남성에 따르자면 지옥도가 펼쳐진 북한으로 김련희씨는 굳이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 도대체 김련희씨에게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을까?

김련희씨는 북이 남과 체제가 다를 뿐 비슷한 사람 사는 동네라고 전한다. 한국의 기성 언론은 주로 북한을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위험한 동네'로 묘사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김련희씨는 고향을 떠올리며 장마당(시장)이 펼쳐지고 자유연애도 이뤄지며 학교에서는 다채로운 동아리 활동을 즐겼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해 동무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었노라고 회상한다. 그동안 기성 언론을 통해 북한을 바라봐 온 이들은 큰 충격과 혼란에 휩싸일 수 있겠다. 그러나 무척 구체적이고 일목요연한 김련희씨의 주장은 도무지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 기념회 행사 식순
▲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기념회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 기념회 행사 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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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주도한 간첩 조작과 국가보안법 관련사건을 추적해 온 최승호 <뉴스타파> PD, 허재현 <한겨레> 기자, 장경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등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한국에 억류된 김련희씨를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김련희씨가 고문을 통해 '나 간첩이요'라는 거짓 자백을 이끌어내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의 '대표적 피해자'임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9년 동안 상식이 통하지 않는 보수정권을 견뎌야 했던 우리는 이제 한껏 기지개를 펴고 김련희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감각을 예리하게 갈고 닦아야 한다.

이 책은 둔해진 통일감각을 일깨워주는 솜씨 좋은 설명서이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간첩 조작이라는 몰상식한 혐의를 받는 국정원 등의 적폐가 말끔히 걷히지 않고 있음을 제시하는 소상한 보고문이다. 설명서이니 보고문이니 거창한 말을 덧붙였지만 사실 한 평양시민이 소중한 딸과 가족친지에게 살아있음을 전하는 가슴을 울리는 편지글이기도 하다(종합하자면 김련희씨의 자전적 에세이와 인터뷰, 대담이 어우러진 기록문학에 가깝다).

'대구에 온 평양시민'을 주제로 한 1부와 '그리운 평양'을 주제로 한 2부로 나눠 각각 1부에서는 한국으로 온 김련희씨가 조력자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정부에 귀향을 요구하게 된 경위, 2부에서는 고향 생활, 추억, 첫사랑 등 사사로운 개인 김련희의 삶 속에서 북한의 이모저모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한 장(章)이 끝날 때마다 앞서 언급한 최승호 PD가 김련희씨를 취재한 극적인 후일담을 비롯해 대학생들(예정, 지영, 현우)이 김련희씨에게 질문을 던지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이런 짜임새는 독자가 글의 내용을 머릿속에 쏙쏙 집어넣을 수 있게 도움을 주려는 영리한 전략으로 보인다.

코너를 살짝만 소개하자면 북한의 중학생들은 중2병을 겪지 않는다는 놀라운 소식에 이어 남동생이 밤새도록 컴퓨터게임을 즐겼다는 고자질(?)과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 등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북한의 민감한 진풍경이 김련희씨를 통해 쏟아져 나온다.

뿐만 아니라 "사상 학습이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세뇌' 작용을 하는 것 같다"는 대학생 현우의 물음에 대해 어느 국가나 교육, 방송 등을 통해 국민을 세뇌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국가 차원에서 알리고 싶은 정보들을 전파하고 그게 대부분 구성원들의 생각을 결정하는데 그것이 좋게 이야기하면 '교육'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세뇌'"라고 가감 없이 답하는 김련희씨의 솔직한 모습까지. 북한을 바라보는 기존의 상식을 뒤흔드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이런 대화를 진득하게 읽어가다 보면 통일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와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안도감과, 아득히 저 멀리 있어서 정말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교차 체험을 겪게 된다.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 기념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기념회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 기념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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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북한자료센터라는 곳이 있다. 북한 학계에서 작성된 논문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한국의 유일한 정식통로. 그런데 북한 연구자가 자신의 소속을 적은 서류를 센터에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야 자료 일부를 복사 출력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복잡하다(북한을 연구하지 않는 일반인들은 열람만 가능). 책을 펼치자마자 '이 자료를 외부로 유출하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통일부장관의 도장(으름장)이 떡 하니.

이런 현실은 참 이상하다. 통일을 지향한다면서 북한발 소식(막상 읽어보면 그리 무시무시한 내용도 아니다. 웬만하면 다 사전에 짐작할 만한 내용)을 차단하는 통일부의 규제가 쓸 데 없다는 확신도 든다. 어쩌면 우리 모두 김련희씨가 말한 '분단의 죄'에 사로잡혀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6.15, 10.4정신 계승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조차 김련희씨의 요구를 못들은 척 묵살하고 있다.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생생함이 담긴 이 책은 분명 여러분이 그 죄를 더는 데 일조할 것이다. 더불어 한국사회의 구조적 어둠을 간명하고 설득력 있게 해설하는 데도 손색이 없으니 꼭 한 번 손에 들어보시는 것이 어떨지.

"이 길고긴 시간, 그토록 울고 힘들어하면서도 나는 왜 끊임없이 버티고 또 싸워야먄 했는가. 나를 돌려보내주지 않은 국정원, 7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 많은 형사들과 경찰들, 침묵했던 통일부…. 그 사람들 개별의 성격 문제로 내가 고통을 겪을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분단의 죄'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297쪽 김련희씨의 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권방송>에도 실렸습니다.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김련희 지음, 615(육일오)(2017)


태그:#김련희, #국정원, #평양시민, #최승호,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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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일본의 동향에 큰 관심을 두며 주시하고 있습니다. 적폐를 깨부수는 민중중심의 가치가 이땅의 통일, 살맛나는 세상을 가능케 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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