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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걱정 반, 긴장 반, 마음은 급하고, 몸은 분주하기만 하다. 일단 풍선을 넉넉히 불어놓고, 현란한 오색 테이프와 함께 거실과 아이 방을 꾸민다. '아이폼'(작은 알갱이 스티로폼이 뭉쳐있는 공작재료)으로 '해피버스데이'를 만들어 벽에 붙이니 아쉬운 대로 파티 분위기가 난다.

다시 빠른 손놀림으로 수제 케이크를 완성하고, 데코레이션용 간식까지 차려놓으니, 그때서야 아이들이 하나 둘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2학년을 맞은 큰아이의 생일 풍경이다.

아이의 파티에 부모는 '파김치'가 된다

독일 아이들의 생일잔치는 유별나다. 사전에 생일초대장을 일일이 만들어야 하고, 초대받은 아이들 숫자만큼의 선물꾸러미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당일에 진행할 프로그램도 짜야 한다.
 독일 아이들의 생일잔치는 유별나다. 사전에 생일초대장을 일일이 만들어야 하고, 초대받은 아이들 숫자만큼의 선물꾸러미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당일에 진행할 프로그램도 짜야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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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이들의 생일잔치는 유별나다. 사전에 생일초대장을 일일이 만들어야 하고, 초대받은 아이들 숫자만큼의 선물꾸러미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당일에 진행할 프로그램도 짜야 한다. 보통 서너 시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아이들이 어린 경우는 정원이나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을 준비해서 놀아주고, 조금 큰 아이들은 극장이나 트램폴린 같은 놀이장을 이용한 후, 저녁식사를 하는 게 보통이다.

말이 아이들 생일이지, 그 준비는 오롯이 부모 몫이다. 아무리 애들이라도, 남을 집으로 초대한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런 일인가. 손발이 바쁜 건 둘째 치고, 초대받은 아이들이 초라한 살림살이를 보고 우리 아이들을 무시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고, 아이들 앞에서 어눌한 독일어를 구사하며 몇 시간 진 뺄 생각을 하니 뒷골까지 당겨왔다. 독일식 파티분위기를 익히 알면서도, 몇 년간 한국식 생일잔치를 고집했던 이유도 그래서다.

그동안 케이크 하나 만큼은 성의껏 직접 만들었다. 거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 몇 가지 곁들이면 부모로서 성의를 표한 것 아닌가 싶었다.

'이 정도면 만족하겠지….'

그런 생각은 어른들 입장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친구들 생일파티를 다녀오면 노골적으로 부러움을 드러냈다. 자기들도 친구들을 초대하여 (독일식)생일파티를 하고 싶단다.

그렇게 준비한 첫 번째 도전. 기본적인 건 우리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빙 둘러 앉아 촛불 키고, 노래 부르고, 불 끄고, 선물 공개하고, 왁자지껄 떠들고.

문제는 그 이후다. 부모가 준비한 본격적인 '놀이'시간이다. 이 시간은 올곧 남편 몫이다. 남편은 아파트 공용 뒤뜰에서 게임을 진행했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 한번쯤 해봤던 놀이 위주다. 열중쉬어 자세로 반환점을 돈 후, 밀가루 접시에서 입으로 사탕 찾기, 나무막대에 실로 매단 과자 따먹기 같은 것들.

'호응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따라 주고 재미있어 했다. 역시 게임은 문화를 가리지 않는 듯 하다. 그렇게 아이들이 바깥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소시지와 포테이토로 저녁을 준비한다.

게임이 끝나면 준비된 음식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게 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파티 종료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초인종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미리 준비한 선물봉지를 하나씩 받고 마중 온 부모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거사(?)를 치르기 전 사전예고는 '필수'

이런 거사(?)를 치르기 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예고다.

"다음 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생일파티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 시간만큼은 소란해도 이해해 주세요. 프라우 권"

아이 생일파티에 앞서, 같은 라인의 주민들에게 반드시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웃들에게 경고장이 날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행복을 위한 일이지만, 이래저래 어른들 손이 참 많이 간다. 첫 번째 (독일식) 생일 파티 이후, 어김없이 돌아오는 생일은 늘 고민거리였다. 한 살 더 먹은 아이들에게 똑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도 없다. 한 해는 대학교에서 빔 프로젝트를 빌려 영화를 보여주기도 했고, 또 한 해는 수영장(입장료 2천 5백 원 정도)을 섭외하기도 하지만 가성비를 고려해 다양성을 일궈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아이는 "마마! 파파! 당케 쉔(Danke schoen)"을 외치며 엄마, 아빠 목에 매달린다.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안기는 이 모습을 보자고 부모라는 이름으로 죽자고 고생한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에 연재된 글의 일부를 기초로 하였습니다.



태그:#독일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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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키일대학(Christian-Albrechts-Universitat zu Kiel)에서 경제학 디플롬 학위(Diplom,석사) 취득 후 시골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21년, 독일 교육과 생활의 경험을 담은, 독일 부모는 조급함이 없다(이비락,2021)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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