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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화산으로 생긴 하얀 부석이 덮여 산 자체가 흰머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노래가 입에서 맴돌 듯 백두산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민족의 명산'이라고 불려 정서적으로도 낯설지 않다. 특히 2470m에 달하는 장엄한 높이와 용트림하듯 정기를 내뿜는 천지는 그 자체로 흥분을 주기에 충분하다.

비록 중국을 통한 여정이었지만 백두산은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했다. <삼국유사>는 백두산을 '태백산'으로 소개했고, <고려사>에는 '여진족을 쫓아내 백두산 바깥에 살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대한독립군과 대한신민단 등 2천여 명의 독립투사들이 결의를 다진 곳이다. 백두산 동북쪽 백운평 계곡은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가 일본군 200여 명을 전멸시킨 장소로 유명하다. 지금은 분단이라는 이유로 국민들이 마음 놓고 갈 수 없어 두고두고 아쉬운 땅이다.

정치적인 이유도 있지만 날씨 탓에 오르지 못할 때도 있다. 백두산 일대는 한반도에서 기후 변화가 가장 심하다. 연평균 기온은 섭씨 6~8도다. 남한이 섭씨 13도임을 감안할 때 두 배가량 차이 난다. 7~8월에는 안개 끼는 날이 무려 30여 일을 넘는다. 산을 오르다 헛발질로 사고가 날 우려도 크다. 이런저런 이유로 백두산의 풍광을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 100일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다행히 짐을 꾸린 날은 일기 예보가 나쁘지 않았다. 가이드는 현지에 안개가 서서히 걷혀 천지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은 들떴고, 발은 한층 가벼웠다. 민족과 역사에 대한 예우로 나는 다과를 준비했다.

'중국화'가 한창인 백두산

백두산 서파 입구.
 백두산 서파 입구.
ⓒ 최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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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2004년 '중국 10대 명산'으로 선정됐다. 연간 관광객이 200만 명을 넘어서며 국가적 명소로 거듭났다. 현지에는 한국인을 겨냥한 백두산 전용 여행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산이다. 그러나 민족의 명산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백두산은 '중국화'가 한창이다. 안내소와 셔틀버스, 편의시설 등에는 이미 중국어가 장악했다.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막대한 돈을 들여 백두산 관광 사업을 벌인 탓이다. 최근에는 621억 위안(한화 약 10조 2천억 원)을 투입해 북중접경지역인 랴오닝성 선양부터 백두산을 잇는 직통 고속철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길이만 무려 436.5㎞에 달한다. 관광자원을 개발해 돈을 끌어모으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남북한은 금강산 개발을 놓고도 말이 많은데 중국의 과감한 투자에 혀를 내두를 만하다.   

백두산 여정은 크게 북파와 서파, 남파, 동파 네 가지로 구분된다. 관광객이 가장 찾는 길은 서파와 북파다. 동파는 북한 땅이어서 통일 이후에 갈 수 있을 듯하다. 참고로 파(坡)는 언덕이나 고개를 뜻한다.

1400계단, 40분 만에 거뜬히 올라

한 관광객이 인력거를 이용해 백두산을 오르고 있다.
 한 관광객이 인력거를 이용해 백두산을 오르고 있다.
ⓒ 최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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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업이 발달한 덕분에 백두산 등반은 어렵지 않았다. 매표소에 들러 입장권을 구입해 셔틀버스로 이동하면 된다. 승차한 후 20여 분간 포장길과 가파른 언덕 몇 개를 넘으면 중턱에 도착한다.

지하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듯 습한 날씨에 안개가 서려 있었고, 다소 찬바람이 일행을 반겼다. 눈 앞에 펼쳐진 1400개 계단이 백두산의 장엄함을 말해줬다. '오르지 못할 산은 애초에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듯 천지로 향하는 길은 까마득해 보였다. 그러나 "두 발이 멀쩡하면 40분 내에 거뜬히 오를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됐다. 숨이 차면 계단 곳곳에 마련된 작은 쉼터에서 몸을 풀면 된다. 초코바와 음료를 가져온 나는 이곳에서 일행과 허기를 채웠다. 

눈길을 끄는 건 천지로 향하는 인력거들이었다. 편도 3만 원만 내면 누워서 백두산을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지만 인력거를 든 사람들의 몸에는 구슬땀이 맺혔다. 이처럼 중국의 시장화는 어느덧 일상 속으로 다가왔고, 화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하지 않았다. 

칼데라호 천지, 희귀 동물 서식

희귀 동물들이 서식하는 백두산 천지.
 희귀 동물들이 서식하는 백두산 천지.
ⓒ 최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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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의 말대로 40분 만에 칼데라호인 천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칼데라호는 화산 분출 후 산 꼭대기가 폭발돼 없어진 것을 말한다. 천지는 한반도에 유일한 칼데라호로 면적 9.165㎢, 평균수심 213m에 달한다. 천혜의 자연을 보유하고 있어 이곳에는 곰과 수달이 생활한다. 백두산 전체로는 표범과 호랑이를 비롯해 수달과 검은담비 등 다양하고 희귀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자연과 문명의 절묘한 조화로 중국과 북한에서는 백두산의 화산과 지진을 다룬 학술대회가 시시때때로 열린다고 한다.

천지의 물은 높이 67m의 장백폭포가 돼 중국 쑹화강으로 흐른다. 주변에는 백두와 형제, 사기문 등 이름만 들어도 장구한 역사가 담길 듯한 폭포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숨죽이며 조용한 호숫가로 보이지만 천지는 밑바닥에 뜨거운 기체가 분출돼 관광 사업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백두산 주변에는 백암온천을 비롯해 백두온천, 장백온천 등이 들어서며 관광객들에게 둘도 없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드넓게 펼쳐진 백두산 서파의 모습.
 드넓게 펼쳐진 백두산 서파의 모습.
ⓒ 최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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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백두산에도 분단의 아픔이 서려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투사들이 만주를 넘보며 위풍당당함을 보였지만 지금은 한이 맺힌 땅이 되었다. 일촉즉발의 군사적 위기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 우리 국민은 쉽게 오갈 수도 없다. 행정적으로는 북한과 중국이 관리하지만 관광업으로 기상을 펼치는 쪽은 중국이다. 민족의 땅으로 불리지만 어찌할 수 없는 곳이 백두산인 셈이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백두산 16개 봉우리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태그:#백두산 탐방, #백두산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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