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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꿈꾸는 책방 내부
 청주 꿈꾸는 책방 내부
ⓒ 정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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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후광이 뿜어 나오는 절대 미모의 여성 손님 한 분이 들어오셨다. 때마침 매장에 손님이 한 분도 안 계셔서 단 둘이 서점에 있게 되었는데 어찌나 어색하던지. 가서 서점 설명도 하고 책 추천도 해드릴까 말까, 할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며 혼자서 죽상 쓰고 있었는데 알아서 책을 한 아름 들고 계산하러 온다.

<풍성한 먹거리 비정한 식탁>, <대한민국 치킨전>, <먹는 인간>, <미각의 비밀>. 오오! 뭐 하시는 분일까, 최근 살충제 달걀 뉴스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지신 분일까? 궁금해서 말을 걸어볼까 했지만 너무나 미인이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계산해드릴게요"라고 말하려 했는데 "계산해드릴꺼요"라고 말까지 헛나온 거다. 땀이 삐질삐질, 정신이 비실비실하는 와중에 손님은 가버렸고, 나는 자괴감이 들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이렇게 내성적이어서 어떻게 책방에서 일 해?"라고 말할 분이 계실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시라. 보통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을 수밖에 없다. 서점에 있으면 정말 다양한, 아니 어떻게 이런 분들이 있을까 싶은 사람들을 셀 수 없이 만나게 되니까.

특이하든, 이상하든, 나쁘든, 좋든, 가난한 손님이든, 부자 손님이든 우리에겐 다 같은 손님이다. 모든 종류의 손님들과 적절한 대화를 나누고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를 우리 책방지기들은 가지고 있다. 내성적이었던 나도 서점에서 이렇게 다양한 손님들을 겪고 나니 결국엔 능구렁이 같은 유들유들한 성격의 소유자로 변모하게 되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다양한 서점 손님들을 몇 분 소개하자면 이렇다.

먼저 씩씩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손님이다.

"도대체 왜 난중일기 저자는 신간을 내지 않는 거요?"
"네, 손님. 이순신씨는 돌아가셨으니까요."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네) 휘리릭"

"책 좀 찾아주세요"
"네, 손님 어떤 책을 찾으시죠?"
"오래전에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읽고 싶어서요. 근데 제목과 작가가 생각 안 나요. 겉표지가 초록색이고 아주 재밌었는데 어떤 책인지 아시겠어요?"
"......"

"안녕하세요. 제가 책을 사서 읽고 난 후 다시 가지고 오면 다른 책으로 교환 가능한가요?"
"아니요... 그럼 저흰 돈을 못 벌지요."
"아!"

"서점에 웬 책이 이렇게 많아?"
"(속으로) 수영장에 웬 물이 이렇게 많아? 산에 웬 나무가 이렇게 많지?"

"이 책 환불 좀 하려고요(노르웨이의 숲)"
"아, 손님 무슨 일로 환불하시는 거죠?"
"이상한 게 예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와 내용이 비슷한 것 같아요. 환불해주세요."
"......"

"82년생 공지영 좀 찾아주세요.(원제는 <82년생 김지영>)"
"나미야 백화점의 기적 좀 찾아주세요.(원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아프리카 청춘이다 좀 찾아주세요.(원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삐꾸씨의 행복여행 좀 찾아주세요.(원제는 <꾸뻬씨의 행복여행>)"

이렇게 재밌는 손님들이 있는 반면 이런 진상손님들도 있다.

"이놈의 월간지 왜 또 가격을 올린 거야?"
"손님, 가격은 출판사에서 정하는 거예요. 저희는 붙여진 가격에 팔 수밖에 없습니다."
"됐고, 전에 가격으로 팔아"
"죄송합니다, 고객님. 붙여진 정가를 주셔야 해요."
"이 놈의 새끼가 어른이 말하는데 어디서 따지고 들어 호로새끼야."
"(마음을 가다듬고)후.. 할아버지. 할아버지 손주들이 여기서 일해도 이렇게 대하실 거예요?"
"내 손주들은 이깟 곳에서 일 안 해!"
"....."

또 눈물이 또로로록 흐르게 하는 고마운 손님 분도 계시다.

"(어린이용 선덕여왕을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고 계시는 어르신께) 손님, 왜 애들 책을 이렇게 또박또박 읽고 계세요?"
"으응. 작년에 처음 한글을 배웠거든. 칠십 평생 이 책이라는 걸 얼마나 읽고 싶었는지 몰라. 얼른 읽는 연습해서 늦둥이 손자한테도 읽어주려고 그래."

서점은 작은 우주와 같다. 살면서 도무지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고 겪는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서점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어느 순간 그 사연들은 내게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곤 한다. 어쩌면 서점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빈껍데기일 수도.

이제 이렇게 다양한 손님들이 꿈꾸는책방에서 8월 한 달 동안 제일 많이 구매하신 책을 순위별로 공개하고자 한다.

꿈꾸는책방에서 8월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 순위입니다.
▲ 베스트셀러 꿈꾸는책방에서 8월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 순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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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바닷마을 다이어리> 요시다 아키미 지음, 애니북스
바닷가 마을에서 함께 살던 세 자매가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던 아버지의 부고를 듣게 된다. 그리움과 배신감이 공존하는 존재 아버지. 고민하던 자매는 결국 장례식장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가족 해체의 원흉이 된 바람난 여자의 딸, 즉 이복동생인 '스즈'를 만나게 된다. 마땅히 살 곳이 없어진 그녀에게 맏언니 '사치'는 함께 살자고 제안하는데...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가족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대에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책. 자매의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가족관과 우리가 잊고 지내던 가족의 정서가 책장 곳곳에서 눈물을 핑 돌게 한다.

3위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류정환 지음, 고두미
충북의 자연과 인문, 문화유적들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기행문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충북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작가는 책에서 호기롭게 말한다. 충북 작가들을 빼놓고는 한국문학사를 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책에 나와 있는 면면을 살펴보니 호기를 부릴 만도 하다. 격정적인 여름을 보낸 우리, 이제 한 템포 내려놓고 책을 따라 충북지역을 여행하는 것도 썩 괜찮을 것 같다. 이 책은 충북지역 동네서점에서만 판매 된다.

9위 <이매진> 존레논 지음, 장 줄리앙 그림, 사파리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이 작사·작곡한 음악 '이매진'의 가사를 장 줄리앙 작가가 세련된 그림으로 풀어놓은 그림책이다. 평화와 자유 그리고 평등의 메시지를 그림으로 한껏 더 고양시켰다.

10위 <을지로 순환선> 최호철 지음, 거북이북스
아마,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있는 서점은 꿈꾸는책방 밖엔 없을 듯하다. 책방지기가 정말 아끼는 책이며 손님들에게 곧잘 권한다. 이 책은 책방지기가 만든 매우 사적인 베스트셀러이다. 우리 삶의 고단함과 정겨움을 '현대 풍속화'란 독특한 장르로 구현하고 있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그림 안에서 우리가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음이 아닐까.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구입해보시면 아실 것!

그 외에도 좋은 책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많이 올라있는데 다 소개하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꿈꾸는책방 및 동네서점으로 직접 오셔서 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 정도선 시민기자는 청주 꿈꾸는책방 책방지기입니다.



태그:#꿈꾸는책방, #청주서점, #청주책방, #청주여행, #청주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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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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