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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최정명씨와 한규협씨가 기아차 화성공장 내 사무실에서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무실은 정규직으로 구성된 기아차노조 사무실안 구석 한 칸을 사용하고 있다. ⓒ 권우성
☞ [인터뷰①] 바퀴벌레도 못사는 곳에서 1년을 버텼지만...

최정명·한규협씨는 363일 만에 땅을 밟았다. 2016년 6월 8일이었다. 처음엔 석 달만 버티자고 생각했지만, 시나브로 1년이 지났다. 건강이 크게 나빠졌고,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다. 최정명씨의 말이다.

"그곳에 있으면 죽을 생각을 한두 번씩은 꼭 해요. '내가 언제 떨어져 죽을지도 모른다', '언제 침탈될지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죠. 또 '마음먹은 대로 안 되네. 내가 더 바쳐야할 게 뭘까? 목숨밖에 없는데...' 하는 생각도 하고요. 120일까지는 웃으면서 지냈는데, 150일이 넘으니까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가족과 동료들은 이제 그만 땅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비정규직 특별 채용과 관련한 재협의도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최씨는 "몇 달 더 버틴다고 해서, 크게 바뀔 건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래에 있는 동지들이 저희에게 내려오라고 계속 설득했어요. 그래서 내려오게 됐죠"라고 전했다.

땅을 밟자마자, 경찰이 강제로 그들을 구급차에 태웠다. 두 사람은 녹색병원 6층 격리병동으로 옮겨졌다.

"며칠 뒤 늦은 밤, 형사들이 떼거지로 몰려왔어요. 저희를 연행하겠다면서 몸으로 막는 병원 관계자들을 밀고 올라왔죠. 다행히 연행은 안 됐어요."

두 사람은 두 달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두 사람의 구속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 5월 두 사람을 공동주거침입, 공동재물손괴, 업무 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두 사람은 현재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서울 중구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한규협씨가 농성시작 363일만인 2016년 6월 8일 오후 농성을 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경찰이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두 사람을 강제로 구급차로 끌고 가고 있다. ⓒ 최윤석
고공농성 그 후

두 사람의 고공농성은 기아차에 큰 압박이 됐다.

고공농성이 끝나고 4개월이 지난 2016년 10월 회사와 노조(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1049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특별 채용하겠다고 합의했다. 고공농성 직전인 2015년 5월 465명 특별채용 합의와 비교하면 진일보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합의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1049명은 기아차 직·간접 생산라인 비정규직 3400여 명 가운데 1/3도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법원의 판결보다 못한 합의다.

법원은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으로 일하고 있고, 이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꾸준히 내리고 있다.

2012년 대법원은 2년 넘게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라인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한 최병승씨를 정규직 직원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2015년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4명에 대해서도 똑같은 판단을 내놓았다.

기아차의 생산라인에도 불법파견 딱지가 붙었다. 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2014년 9월과 2017년 2월 1·2심 법원 모두 이들 노동자가 불법파견으로 일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이 판결을 확정하면, 모두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해야 한다.

최정명씨는 특별채용 합의를 언급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관련 소송에서 거의 다 이겼어요. 일부만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합의는 대의에 맞지 않아요. 정당성도 우리에게 있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특별채용 합의에 반발하며 세 차례 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직·간접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3400여 명의 정규직화를 요구했고, 역시 비정규직인 청소·식당·경비노동자 600여 명의 직접 고용도 강조했다.

정규직 조합원이 다수인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노조는 지난 4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조에서 쫓아냈다. 정규직·비정규직 노조가 분리된 것이다. 현재 회사는 특별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직접적인 생산라인인 조립·도장 라인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은 현재 100% 불법파견이에요. 법원 판결이 그래요. 회사는 특별채용한 노동자들을 이 라인에 밀어 넣고 있어요. 그렇게 되니, 이곳에서 10년 이상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른 자리로 밀려나게 되죠. 회사는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 폐업과 같은 압박 수단을 활용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동의를 강제로 받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해고자 복직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회사와 노조는 최정명·한규협씨의 복직을 구두로 합의했다. 하지만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분리 이후, 합의는 휴지 조각이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섰지만...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한규협씨와 최정명씨. ⓒ 권우성
불법 파견 문제를 다룬 인터뷰 중반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그만큼 기아차 비정규직이 처한 현실이 답답한 탓이다.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다른 질문을 던졌다. 

- 문재인 정부에서는 지난 정부보다는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요.
"불법 파견이 아니라는 현대·기아차의 주장은 더 이상 정당성이 없죠. 법원의 판단이 계속 나오잖아요. 문재인 정부는 이를 쉽게 바로 잡을 수 있어요.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의지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겁니다. 지난 7월 청와대 관계자가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을 만나기도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인터뷰는 2시간을 넘겨 끝났다. 공장을 빠져나오면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 친 천막을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23일 종로구청이 천막을 철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같은 시각 기아차 화성공장에서는 파업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 출입을 막은 회사 관계자들과 거센 몸싸움을 벌였다.

최정명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답답함을 숨기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네요. 공장에서는 불법파견 흔적 지우기와 강제 전적이 이뤄지고 있고, 청와대 앞에서는 농성장이 철거당하고. 참 개탄스럽네요."

최정명씨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어쩌면 대법원 판결뿐일 것이다. 문제는 대법원 판결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저는 2007년 기아차에 입사한 뒤, 쭉 쏘렌토 등을 생산하는 화성1공장 의장1·2반에서 일했어요. 안전벨트를 조립하는 일이었는데, 일하는 120명 가운데 제가 유일한 사내하청 비정규직이었죠. 이곳은 이미 그 전에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는데, 아직까지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네요.

대법원 판결이 늦어질수록, 비정규직이 겪는 고통의 시간은 길어지는 거예요. 사실 7월 22일을 기다렸어요. 그때까지 대법원이 심리를 하지 않으면, 2심 판결이 확정되는 거였죠. 하지만 그 직전 경총 등이 탄원서를 냈고, 대법원은 심리를 하기로 했어요. 대법원이 재벌을 봐준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판단을 내려줬으면 좋겠네요."
태그:#기아차 불법파견, #최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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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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