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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허탕 쳤다. 1인 스키야키를 먹으러 도쿄 토요시마구 니시스가모에 있는 '샤브타츠'에 갔지만, '휴가 다녀오겠다'는 안내말만 문에 붙어있었다. '텐푸라 나카야마'와 '보라쵸'에 이은 3연타였다. 성수기가 지났다지만 사장님들은 지금이 휴가철인가 보다. 스키야키를 먹으며 몸보신하려 한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속마음 모르고 흩뿌리는 비가 야속했다.

돈카츠야, 아이스크림이야?

소고기 못 먹은 한을 풀기 위해 돼지고기를 먹으러 갔다. 돈카츠로 유명한 도쿄 아라카와구 니시오구에 있는 '돈베이'에 들어섰다. 가게 안은 아주 깔끔했다. 연한 베이지색의 나무 테이블이 정갈함을 더했다.

카운터석으로 안내받았다. 돈카츠 정식 오오모리(곱배기)를 부탁했다. 카운터석에서는 주방이 훤히 보여 조리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식당을 둘러보다보니 돈카츠가 나왔다.

돈베이의 부드러운 돈카츠. 이것은 돈카츠인가 아이스크림인가.
 돈베이의 부드러운 돈카츠. 이것은 돈카츠인가 아이스크림인가.
ⓒ 임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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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카츠에는 데미그라스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종업원은 그 위에 돈카츠 소스를 뿌려 먹으면 더 맛있다고 알려줬다. 돈카츠는 훌륭했다. 이렇게 부드러운 돈카츠는 처음이었다. 씹자마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이곳 돈카츠는 돼지 삼겹살을 6~7시간 삶아 흐물흐물하게 만든 뒤, 하룻밤 냉장고에 재워뒀다 만든다. 돼지고기 카쿠니(일본식 장조림)를 만드는 듯한 과정이다. 푹 삶은 돼지를 튀겼다는 느낌도 있었다. 보통의 돈카츠와는 조금 달랐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돈카츠 맛

부드러운 돈카츠를 만드는 돈베이는 1959년 문을 열었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2대째 영업 중이다. 사장 안도(43)씨는 대학 졸업 후 스물셋에 가업을 물려받아 20년 째 돈카츠를 만든다. 열네 살 어린 아내도 이곳에서 함께 일한다. 아내를 소개하며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고 멋쩍어 했다.

이 가게의 트레이드 마크인 자전거를 탄 아저씨 그림은 1대 사장인 안도 씨의 아버지다. 안도씨는 "아버지는 대머리였어요. 자전거도 실제 아버지 것이예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돈베이의 메뉴. 1대 사장을 재미나게 그린 그림이 있다. 자전거 깃발에는 'やってま(영업합니다)'라고 적혀있다.
 돈베이의 메뉴. 1대 사장을 재미나게 그린 그림이 있다. 자전거 깃발에는 'やってま(영업합니다)'라고 적혀있다.
ⓒ 임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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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장은 호노노 사케 나베(불꽃 술 전골 세트)가 이곳의 추천 메뉴라고 알려줬다. 술이 들어간 전골에 불을 붙이는 쇼를 하는 독특한 요리다. 돼지고기 샤브샤브와 모둠전골을 코스로 즐길 수 있는데, 보통은 예약제라고 한다. 마즙 보리밥을 먹는 손님도 많으니 돈카츠와 함께 먹는 것도 좋은 조합일 것 같다. 색다른 돈카츠를 먹고 싶다면 돈베이가 답이다.

"덜컹덜컹" 도쿄 골목 누비는 '친친전차'

돈베이의 돈카츠를 먹으려면 도덴아라카와선 노면 전차를 타 미야노마에역에서 내려야 한다. 도덴아라카와선은 아라카와구 미노와바시에서 신주쿠구의 와세다까지 서민 지역을 연결하는 도쿄도 내의 유일한 노면 전차다.

노면 전차는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전 세계 약 50개국의 400여 개 도시에 있다. 일본에서는 도쿄를 포함해 삿포로와 히로시마 등에 있다. 도덴아라카와선 노면 전차는 한량짜리 작은 전차다. 시속 30km 정도로 느리게 달린다. 일본에서는 노면 전차를 전차가 달리는 소리에 빗대 '친친전차'라고도 부른다.

노면 전차가 미야노마에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노면 전차가 미야노마에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 임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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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탄 노면 전차는 운치 있었다. 느릿한 쇳덩이에 몸을 실어 창밖을 봤다. 도쿄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작고 소박한 집이 지나갔다. 덜컹덜컹할 때마다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전차가 도로 한 가운데 멈춰서 자동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자 호기심 많은 아이는 가까이에서 보려 창문에 얼굴을 댔다. 빗방울이 창문을 '투둑투둑' 때리는 소리에 몸이 노곤해졌다.

비오는 날에는 '지글지글' 오코노미야끼

한국에서는 비 오는 날이면 으레 전을 부쳐 먹는다.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비 오는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도쿄 거리를 걸으니 오코노미야끼가 먹고 싶어졌다. 폭우를 뚫고 곧장 도쿄 세타갸야구 시모키타자와에 있는 오코노미야끼 전문점 '히로키'에 갔다.
시모키타자와 역에서 5분 거리지만 식당 입구가 크지 않아 눈에 띄지 않았다. 두 번이나 그냥 지나쳐 일대를 빙빙 돌았다. 저녁 7시가 돼서 도착했는데, 맛집답게 7명이 줄 서 있었다. 내 앞에 있던 커플은 못 기다리겠다는 듯 돌아갔다. 기다리는 동안 16번 히로키 스페셜과 나마비루(생맥주)를 주문했다.

오코노미야끼를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코노미야끼를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 임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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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나오기까지 20분 정도 걸리지만, 카운터석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오코노미야끼 만드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곳 오코노미야끼는 히로시마풍이다. 오코노미야끼는 히로시마풍과 오사카풍으로 나뉘는데 히로시마풍은 재료를 차례대로 쌓아올린 다음 눌러 굽고, 오사카풍은 재료를 전부 섞어서 굽는다. 소바나 우동 같은 면을 넣는 것도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끼의 특징이다. 이곳에선 소바와 우동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히로키 오코노미야끼, "다이스키"

히로키 스페셜은 푸짐했다. 소바를 밑에 깔고 그 위에 계란, 삼겹살, 히로시마 파, 가리비, 새우, 문어 등을 얹었다. 문어는 질기지 않고 부드러웠다. 가리비는 거대하고 두툼했다. 아주 탱글했다. 관자는 질기듯 질기지 않은 듯 씹는 맛이 있었다. 새우는 통통했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가득 올려진 히로시마 파와 양배추는 달았다. 소스 역시 달짝지근했다. 이 가게 특제소스인 '오리즈멜 소스'를 쓴다고 했다. 마요네즈를 뿌려 먹으니 부드러움이 배가 됐다. 오늘부터 오코노미야끼를 많이 좋아하게(大好き: 다이스키) 됐다.

신선한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히로키의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끼.
 신선한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히로키의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끼.
ⓒ 임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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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인기메뉴는 '16번 히로키 스페셜'이다. 손님 대부분이 이 메뉴를 주문하다 보니 종업원은 6개를 동시에 만들었다. 오코노미야끼를 뒤집는 솜씨가 능숙했다.

34년 전 문을 연 이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해산물 철판야끼도 많이 주문한다. 문어, 가리비, 굴 같은 해산물을 고르고 굽는 방법도 히로시마 파와 유자 폰즈, 마늘구이, 향신료버터구이 등에서 선택한다. 재료는 가장 신선한 것을 쓴다고 한다. 다 먹으면 절로 '고치소사마데시타(잘 먹었습니다)'가 나오는 곳이다. 오코노미야끼 한 판을 헤치우고 나오니 비가 잦아들었다. 배를 두드리며 시모키타자와역으로 걸어갔다.

덧붙이는 글 | '아, 배고프다.' 식욕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행복입니다. 임형준 기자는 8월 11일부터 17일까지 6박 7일 동안 도쿄를 여행하며 보고 먹고 느낀 점을 씁니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처럼 맛집을 찾아다닙니다. '고독한 대식가'가 되어 먹고 싶은 음식을 즐기며 도쿄를 맛봅니다.



태그:#돈카츠, #오코노미야끼, #도쿄 여행, #도쿄 맛집, #고독한 미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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