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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도쿄를 여행하겠다고 하면 땀으로 샤워할 각오를 해야 한다. 햇빛은 강하지 않다. 다만 습도가 한국보다 높아 어느새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습한 도쿄 날씨에 익숙한 현지인들도 "아쯔이(덥다)"를 입에 달고 산다. 습도 80%를 가뿐히 넘는 도쿄가 우스운 나라의 음식으로 몸보신하기로 했다.

카레는 '3분 요리'만 있는 게 아니다

흔히 일본에 오면 일식을 맛보겠다고 다짐한다. 생각을 뒤집어보자. 일본에서 다른 나라 음식을 맛보는 건 어떨까. '카말풀'은 도쿄 고토구 키바에서 인도 음식을 파는 곳이다. 키바역에서 5분여 떨어져 있고, 도로와 붙어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오후 1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도착하니 이미 두 세 팀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맛집이 분명했다. 직원은 입구에서 미리 주문 받았다. 고르곤졸라 쿠루챠, 램 믹스, 고등어 카레, 옐로우 라이스 그리고 망고 라시를 부탁했다.

가게는 4인용 테이블 네 개와 6인용 테이블 하나 그리고 카운터석을 갖췄다. 작은 가게를 채운 손님들은 테이블에 놓인 인도풍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카운터석에 앉자마자 망고 라시가 나왔다. 요구르트를 기본으로 한 음료수로 달짝지근하고 달콤했다. 인도풍 피자인 고르곤졸라 쿠루챠는 갓 구워져 겉은 바삭하고 속은 달고 고소했다. 먹을수록 짭짤했다. 생지 안에 고르곤졸라 치즈와 꿀만 넣어 만들었을 뿐인데, 맛은 고급 이탈리아 피자 못지않았다.

고등어 카레는 걸쭉한 카레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향이 독특한 고등어 매운탕을 먹는 느낌이다. 칼칼한 것이 한국의 맛이 났다. 의외로 인도 가정집에서 먹는 음식이다. 마지막으로 나온 램 믹스는 두 종류의 양고기를 맛볼 수 있는 요리다. 고기는 꽤 탄력 있어 이를 밀어낸다는 느낌이었다. 지지 않고 씹으니 맛이 점점 입 안으로 들어왔다.

테이블에 펼쳐진 인도 요리 한상. 모든 메뉴가 각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테이블에 펼쳐진 인도 요리 한상. 모든 메뉴가 각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 임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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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를 갓 넘기니 직원들이 포크와 나이프 통을 채우며 주방과 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북인도 요리를 파는 카말풀은 지난 2011년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인도인 요리사 넷이 일한다. 네 평 남짓한 좁은 주방에서 철저히 분업한다. 간단한 일본어도 구사해 손님이 나갈 때 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인사한다. 커플뿐 아니라 학생과 동네 할머니도 찾는 이곳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인도'다. 동네도 한적해 날씨가 좋다면 소화도 시킬 겸 가볍게 산책하는 것도 좋다.

나쓰메 소세키도 사랑한 에비스 맥주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씨에는 시원한 맥주 한잔이 최고다. 도쿄 시부야구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는 에비스 맥주 기념관이 있다. 투어 보다 인기있다는 테이스팅 살롱은 프리미엄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 빈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군데군데서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다. 늦게 가면 세 종류의 에비스 맥주를 맛 볼 수 있는 메뉴를 시키지 못한다. 맥주를 주문하면 완두콩과 살라미 두 점을 주니 안주발을 세울 게 아니라면 맥주만 시키는 게 이득이다.

에비스 갤러리에서는 에비스 맥주 역사를 맥주병과 함께 설명한다. 1899년 긴자에 일본 최초로 만들어진 맥주홀에서는 안주로 슬라이스한 무를 즐겼다고 한다. 작은 새우나 머위도 곁들였다. 맥주홀이 성황리를 이루자 전국에 맥주 애호가들이 생겼다. 메이지 시대가 끝날 무렵 맥주의 인기는 높아져서 문학에도 등장한다.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이백십일>을 보면 주인공이 "우리는 맥주를 갖고 있지 않지만, 에비스는 갖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갤러리를 나오는 길에 1920년대 일본인이 에비스 맥주를 마시는 사진을 보니 당시 일제에 핍박받는 조선인이 겹쳐져 저급 맥주 맛처럼 씁쓸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비음주가였지만, 자신의 작품에 맥주를 넣었다. 에비스 맥주가 등장한 소설 <이백십일> 옆에 고양이 한마리가 있다. 소세키의 저서 가운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가장 유명하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비음주가였지만, 자신의 작품에 맥주를 넣었다. 에비스 맥주가 등장한 소설 <이백십일> 옆에 고양이 한마리가 있다. 소세키의 저서 가운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가장 유명하기 때문이다.
ⓒ 임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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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쵸, 보라쵸, 보라쵸!

저녁 먹을 식당으로 굴 그라탕이 주력 메뉴인 '보라쵸'를 선택했다. 소화시킬 겸 시부야 역에서 30여 분 걸어 도착했지만, 불이 꺼져 있었다. 문에는 당일부터 18일까지 휴가임을 알리는 문구가 적힌 종이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그라탕의 부드러움을 맛보고 싶었는데. '보라쵸 보라쵸 보라쵸!' 속으로 아쉬움을 삼켰다.

밤 10시를 목전에 두고 오키나와 요리를 파는 '소카보카'(도쿄 메구로구 나카메구로)에 갔다. 건물의 2층을 쓰는 이곳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역시 카운터 석에 앉아 곧바로 소키소바 오오모리를 외쳤다. 기다리는 동안 생맥주로 목을 축였다.

주문한 지 5분도 안 돼 나온 소키소바는 과연 훌륭했다. 우선 맛본 국물은 한마디로 맛있다. 고기 육수의 진한 맛이 일품이다. 고명으로 얻은 고기는 등갈비 부위 가운데서도 물렁뼈를 써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두툼한 것 두 덩이 나 들어있어 부족함이 없다. 면발은 덜익은 칼국수 면발인, 파스타로 치면 알 단테(Al dente)였다.

도쿄에 제주도 고기국수가?

소키소바는 생김새나 맛이나 제주도 고기국수를 닮았다. 섬 요리는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오키나와의 명물인 소키소바는 남는 고기를 아까워 한 정육점 주인이 오키나와 소바 위에 돼지갈비찜(소키)을 올려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고된 바닷일을 마치고 돌아와 고기 고명을 듬뿍 얹은 소키소바를 먹었을 것이다.

"후루룩." 면발 넘기는 소리에 여행 중 쌓인 스트레스가 풀린다. 푸짐한 양도 만족스럽다.
 "후루룩." 면발 넘기는 소리에 여행 중 쌓인 스트레스가 풀린다. 푸짐한 양도 만족스럽다.
ⓒ 임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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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오키나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소카보카는 손님과 친한 식당이다. 카운터석에 앉은 아저씨의 얘기를 들어주고, 화장을 짙게 한 20대 여성 손님 둘과도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눈다. 이 식당의 분위기 메이커인 남자 직원 둘은 각각 주방과 홀을 맡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님이 오면 힘차게 '이럇사이맛세'를 외친다. 신나게 일하는 이들은 보니 덩달아 흥이 올랐다. 비 맞았다 우산 사니 비가 그쳐 써보지도 못한 656엔짜리 우산이 잊혀 질 뻔했다.

덧붙이는 글 | '아, 배고프다.' 식욕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행복입니다. 임형준 기자는 8월 11일부터 17일까지 6박 7일 동안 도쿄를 여행하며 보고 먹고 느낀 점을 씁니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처럼 맛집을 찾아다닙니다. '고독한 대식가'가 되어 먹고 싶은 음식을 즐기며 도쿄를 맛봅니다.



태그:#도쿄, #고독한 미식가, #고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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